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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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0월 17일 (목) 12: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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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日,過滄州,是日晴,早過三鎮道、馮家口、楊橋口、磚河南、戴河南口等鋪,至河驛,又過王家圈口·羅家圈口紅披口·南關等鋪、長盧巡檢司、鹽運司、遞運所、睡武科門,到滄州搬夫廠,州城臨河之東岸,即漢之渤海郡也,河邊有望上懸人頭以示眾,傅榮謂臣曰:“彼乃强盗首也,漢之巢遂以單車,入此地平墓盜,有賣買牛之說,此地盗多劫殺人,自昔猶然,”又過聯芳、應奎、司練等門,至泊長蘆遞運所前,臣問諸傅榮曰:“自過淮河以後,若兵部、刑部、吏部等各司之官之紅,絡繹不絕,何也?”榮曰:“今天子聖明,朝臣以舊日所為,或致小過者,皆降貶之,河路中帶錫牌而歸者,皆見貶下鄉朝士也,前日在紹興府,問你所從來之總兵官黃宗,亦貶罷歸,”臣曰:“朝臣貶秩者多,何以不斥官寺之徒,使得意以行?”榮曰:“宦官見殺降貶者,亦不可勝計,今在河進京者,皆先帝所差,回則亦難保,前日相見太監羅公、公,皆因回遲,貶作奉御之職,”臣曰:“當今天下,再得堯舜之君,學元凱,點四匈,朝廷肅清,四海安帖,不亦賀乎?”榮曰:“正是正是,我皇帝遠之者,小人與宦官也,日親經筵,與閣老學士講詩書、論政事,疊疊不已,以今三月初九日,躬幸國子監,釋奠先聖,崇儒重道之意亦至矣.”臣戲之曰:“天子亦拜於列國之臣乎?”榮曰:“孔子,萬世之師,豈以人臣之禮待之乎?但天子當釋奠時,贊禮官曰:“鞠躬拜,天子欲拜,傍又有一贊禮官曰:孔子會為魯司寇,贊禮官又唱曰:平身,禮當拜而實不拜,此尊先師尊天子之禮,兩不悖也,”臣曰:“孔子之道,大於天地,明於日月,信於四時,達之天下萬代而無窮,卿、大夫、士、庶人學其道,以修其身,諸侯學其道,以治其國,天子學其道,以平治天下,則自天子以至於庶人,皆當事以先聖先師之禮,又何舉魯司寇之稱,當拜而不拜乎?若舉司寇以稱孔子,則孔子是一小國陪臣,又安可屈天子之學以記之乎?”榮嘿然,夜間榮又來語臣曰:“方才中來者言:有一尚書與一學士對立,不知所言,校尉拿告于天子,命下錦衣衛,監問所言何事,學士身居內(閣)(閣], 至尊有大小事,皆與議,今與尚書相對言,尤恐有私囑,故問之!”

창주(滄州)를 지났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아침 일찍 삼진도(三鎭道)·풍가구(馮家口)·양교구(楊橋口)·전하남(磚河南)·전하남구(磚河南口) 등 포를 지나서 전하역(III河驛)에 이르렀습니다.

또 왕가권구(王家圈口)·나가권구(羅家圈口)·홍피구(紅技口)·남관(南關) 등 포와 장로순검사(長蘆巡檢司)·염운사(鹽運司)453. 체운소(遞運所)·종무과문(腫武科門)을 지나서 창주발부창(滄州撥夫__)에 도착하였습니다.

창주성(滄州城)은 강의 동쪽 언덕에 접하여 있으니 곧 한(漢) 나라 때의 발해군(渤海郡)이었습니다.

운하가에는 장대 위에 사람의 머리를 매달아 놓고 여러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바라보였습니다.

부영이 신에게 말하기를,

“저것은 강도의 머리입니다. 한(漢)나라의 공수(襄遂)454가 단거(單車)로 이 지방에 들어와서 도적 떼를 평정하여 '칼을 팔아 소를 산다'455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지방 도적이 사람을 약탈하고 죽이는 일이 많은 것은 옛날부터 그러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연방문(聯芳門)·응규문(應奎門)·사간문(司諫門) 등을 지나서 장로체운소(長盧遞運所) 앞에 이르러 정박하였습니다.

신은 부영에게 묻기를, “회하를 지난 뒤부터 병부 · 형부 · 이부 각 관사(官司) 관원의 배가 계속 이어지고 끊이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자께서 영명하시어 조신(朝臣)들 중 지난날의 잘못된 행위나 작은 과오를 범한 자들도 모두 강직(降職)하거나 폄출(貶點)시키고 있습니다. 운하에서 석패(錫牌)를 차고 돌아가는 사람은 모두 폄직되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조신들입니다. 전일에 소흥부에서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심문했던 총병관 황종도 평직되어 돌아갔습니다.”

“조신들 중에는 폄직된 사람이 많은데, 어찌하여 환관의 무리들을 물리치지 않아 마음껏 행세하게 합니까?”

“환관들 중에도 죽임을 당하고 강직되고 폄출된 사람 또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 운하로 경사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선제(先帝)께서 파견하셨던 자들이지만 돌아가면 또한 보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일에 만났던 태감 나공(羅公)과 섭공(公)도 모두 늦게 돌아갔다는 이유로 봉어(奉御)456의 직으로 평직되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다시 요순(堯舜) 같은 군주를 만나서 원개(元凱)457 같은 이가 등용되고 사흉(四凶)458 같은 이가 폄출되어 조정은 맑아지고 사해(四海)는 편안해졌으니 또한 경하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고 말고요. 우리 황제께서 멀리하시는 자는 소인과 환관입니다. 날마다 경연(經筵)459에 몸소 나아가 꾸준히 각로학사(__老學士)460들과 시서(詩書)를 강론하고 정사(政事)를 의논해 마지 않으십니다. 지난 3월 9일에는 몸소 국자감(國子監)에 행차하여 선성(先聖)462에게 석전례(釋奠禮)를 거행하셨으니 유교를 숭상하고 도학(道學)을 존중하는 뜻이 또한 지극합니다.”

신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천자께서도 열국(列國)의 신하에게 절을 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만세의 스승인데 어찌 신하의 예절로 대우하겠습니까? 다만 천자가 석전례를 거행할 때에 찬례관(贊禮官)463이 몸을 굽혀 절하시오'라 하면 천자께서 절하시려 합니다. 그럴 때 옆에 있는 또 다른 찬례관이 공자는 일찍이 노나라 사구(司寇)였습니다'라 하면, 찬례관이 또 소리를 높여 몸을 펴시오(平身]라고 합니다. 예(禮)로는 당연히 절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절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선사(先師)를 높이고 천자를 높이는 예로서, 양 쪽 모두 어긋나지 않은 것입니다.”

“공자의 도(道)는 천지보다 크고 일월보다 밝으며 사시보다 믿음성이 있어 천하 만세로 두루 미쳐서 다함이 없습니다. 경대부(卿大夫)와 사서인(士庶人)은 그 도를 배워서 몸을 닦고, 제후는 그 도를 배워서 나라를 다스리고, 천자는 그 도를 배워서 천하를 다스리니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땅히 선성(先聖)과 선사(先師)를 대하는 예절로 섬겨야 할 것인데, 또한 노나라 사구란 칭호를 들어서 당연히 절해야 할 것인데도 어찌 절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사구를 들어서 공자를 일컫는다면 공자는 한 소국의 배신(臣)465인데 또한 어찌 천자의 존엄함을 굽혀서 그에게 제사하겠습니까?”

부영은 말이 없었습니다.

밤에 부영이 또 와서 신에게 말하기를,

“방금 북경에서 온 사람이 하는 말이 "어느 상서(尙書)와 어느 학사(學士)가 마주서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데, 교위(校尉)467가 천자께 알리니 천자께서 금의위(錦衣衛)에 내리어 무슨 말을 했는지 심문하도록 명하셨다고 합니다. 학사는 몸이 내각(內閣)에 있으며 지존(至尊)468께서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그와 더불어 의논하시는데, 지금 상서와 서로 마주 서서 말하니 사사로운 청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여 이를 심문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21st Day. Passing Ts'ang-chou. This day was fair.

[We went from San-chen-tao Stop to a workers' quarters of Ts’ang-chou.] The wall of the department overlooked the east bank of the river. [The place] had been the Po-hai-chün of Han. At the edge of the river, a man's head fastened on top of a pole was displayed to all. Fu Jung said to me, “That is the head of a notorious bandit. Kung Sui of Han came to this land in a single carriage and subdued all the bandits. 93 There is a story that they sold their swords and bought oxen. “The bandits here plunder much and kill people, and it has been so since olden times.” We passed Lien-fang, Ying-k’uei, and Ssu-chien gates, came to Ch’ang-lu Transfer Station, and stopped in front of it. I asked Fu Jung, “Ever since we passed the Huai River there has been a steady line of boats of officials from the various bureaus of the Ministries of War, Punishments, and Personnel. Why?” Fu Jung said, “Because some of the ministers of the Court may have made small errors in what they did in former days, the present Emperor in his wisdom is dismissing them all. All those who are carrying pewter tablets and going the other way in the river are ministers of the Court who have been dismissed and are going to their homes. Even Huang Tsung, the Regional Commander who asked you about your past the other day at Shao-hsing Prefecture, has been dismissed and gone home.” I said, “If many court ministers are being degraded, why does [the Emperor] not dismiss the eunuchs instead of letting them have their way?” Fu Jung said, “Eunuchs are also being executed and dismissed beyond number. All those now going to the capital on the river were commissioned by the previous Emperor. It is difficult to say what will happen to them when they go back. Both his Excellency Lo and His Excellency Nieh, the Overseers you met previously, have been degraded to the position of valet because they were slow in returning.” I said, “Now the Empire has got again a ruler like Yao and Shun. He elevates good men and dismisses wicked ones. The Court is calm, and the Four Seas are steady. Shall we not give praise ?”' Fu Jung said, “Quite so, quite so. The ones our Emperor keeps at a distance are the petty men and the eunuchs. He attends the exposition of the Classics daily and discusses literature and government with the chief ministers and scholars. He keeps it up without tiring. On the 9th Day of the Third Month he attended personally the National University and sacrificed to Confucius, which shows indeed that he honors the Confucian scholars and the Way.” Joking, I said, “Does the Emperor bow to a subject of a feudal state?” Fu Jung said, “Confucius was the teacher of all ages; how could the Emperor treat him like a subject? But when the Son of Heaven attends the sacrifice to Confucius, a master of ceremonies says, 'His Majesty will bow.' The Son of Heaven is about to bow when from the side another master of ceremonies says, 'Confucius was Criminal Judge of Lu.' The master of ceremonies then calls out, ‘His Majesty is excused from bowing.' He is supposed to bow but actually does not. Thereby the ceremony honors Confucius and the Son of Heaven with slight to neither.” I said, “Confucius' Way is greater than heaven or earth, brighter than the sun or moon, and more constant than the four seasons. It persists endlessly through all ages of the world. If the officials, gentry, scholars, and common people study his Way to train themselves; and the nobles study his Way to govern their states; and the Emperor studies his Way to put the world to order, all, from the Emperor to the common people, must pay homage through the Rite to Confucius. Why do you say the name ‘Criminal Judge of Lu,' and, ‘His Majesty need not bow?' If you use Criminal Judge to designate Confucius, that makes Confucius the secondary minister of a minor state. Then how can you humble the Emperor with such a sacrifice?" Fu Jung was silent. | At night Fu Jung came again and spoke to me. “Someone who recently came from the capital says that a minister (shang-shu] and a grand secretary [hsüeh-shih] were standing face to face and talking, it was not known about what. A captain of the police arrested them and reported it to the Emperor. They were ordered to be sent down to the Superintendent of the Imperial Bodyguard94 for questioning on the subject of their talk. The grand secretaries are in the Cabinet [Nei-ko], and the Emperor discusses all matters, large and small, with them. When this one talked intimately with a minister, then, it was greatly feared that there might be collusion for selfish ends. That is why they were questio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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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원명은 長蘆都轉運鹽使司로 滄州治의 서남쪽에 있다. 嘉靖《河間府志》 권4, 宮室. 454. 漢나라 南平陽 사람으로, 자는 少卿이다. 宣帝 초 渤海에 도적이 일어나 郡守가 잘 제압하지 못하였다. 선제는 龔遂를 渤海太守에 임명하여 결국 도적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후에 중앙으로 발탁되어 水衡都尉를 지냈다. 455. 漢 宣帝때 발해 지역은 도적들이 掠하고 농사를 기피하는 풍조가 심했는데 遂가 太守로 부임한 뒤로 도적이 없어지고 권농 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어 백성들이 다투어 무기를 팔아 耕牛를 샀다는 고사를 말한다. 《前漢書》 권89, 〈循吏傳59) 참조. 456. 奉御는 본래 隋代 殿內省과 唐代 中書省의 예하기구인 六合局의 長官이다. 六尙局 즉 食·尙藥·尙衣·尙舍·尙乘·輦에 각각 奉御가 2인씩 배치되어 사무를 관장했다. 隋代에는 5品이었고, 唐代에는 正5品 이하였다. 이후 奉御직은 송대와 명대를 거치며 계속 유지되었고 隋·唐때와 유사하게 궁궐내의 제반 실무를 담당했다. 457. 元라고도 한다. 《左傳》에 의하면 高辛氏의 才子 8인을 八元이라 하고, 高陽氏才子 8인을 八體라 하였다고 한다. 후에 元는 황제의 輔佐대신을 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458. 고대 4대 囚人으로 舜에 복종하지 않은 4개 부족의 수령 즉 敦, 窮奇, 饕餐을 말한다. 一說에는 궁기를 共工, 혼돈을 驩兜, 도철을 三苗, 도올을 縣으로 보기도 한다. 459. 황제가 經史를 講讀하는 儀制, 처음에는 시간과 장소가 유동적이었으나 正統元年(1436) 3월에 매월 2일, 12일, 22일에 文華殿에서 거행했는데 酷暑期와 酷寒期는 피하였다. 460. 內閣의 學士를 가리킨다. 461. 명대의 國學, 처음에는 南京에 京師國子學을 두었는데 洪武15년(1382)에 國子監으 로 바꾸었다. 永樂元年(1403) 北京에도 두었는데 18년에 천도 후 원래의 경사국자감 을 남경국자감, 북경의 국자감을 국자감으로 바꾸었다. 弘治年間에 국자감 내에 東西樓를 만드는 등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462. 先世聖賢 즉 孔子를 가리킨다. 463. 國家祭禮時 황제의 儀禮를 도와주는 관리. 464. 孔子를 가리킨다. 唐初에 孔子를 先師로 추존했다. 465. 重臣이라고도 하는 臣은 원래 아래의 아래 단계의 신하를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天子의 배신 즉 諸侯 밑의 卿大夫급임을 말한다. 《史記》〈孔子世家)에 의하면 孔子는 卿급에 해당하는 司空·大司寇 등을 역임했다. 466. 六部의 장관이다. 洪武元年(1368)에 처음 두었는데, 정3품이었으나, 13년에 中書省 | 을 없애면서 그 品을 정2품으로 높였다. 또한 황제에 직속시켜 전국의 정무를 나누어 관장하였다. 467. 明代의 層從衛士이다. 원래는 共衛司儀열司에 예속되었다가, 洪武15년(1382)에 錦衣衛에 예속되었다. 회簿의 儀杖을 떠받들어 잡거나 御駕 앞에서 관원을 宣召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였는데, 민간의 壯丁 가운데 악질과 과실이 없는 자를 선발하여 치任 하였다. 468. 황제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