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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初二日,至永平府城南,是日晴,過沙河,至濠河,其間所過,有沙窩、色山、赤宰、白佛院、石梯子等鋪,藻河源自口北開平而來,北方諸山之水,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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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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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沙河)를 지나서 난하(漠河)<ref>[http://blog.daum.net/manjumongol/293]</ref>에 이르렀는데, 중간에 지난 곳으로 사와(沙窩), 색산(色山), 적봉(赤峯), 백불원(白佛院)'이, 석제자(石梯子) 등의 포(鋪)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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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沙河)를 지나서 난하(漠河)<ref>[http://blog.daum.net/manjumongol/293]</ref>에 이르렀는데, 중간에 지난 곳으로 사와(沙窩), 색산(色山), 적봉(赤峯), 백불원(白佛院), 석제자(石梯子) 등의 포(鋪)가 있었습니다.  
  
 
난하는 원류가 장성 이북의 개평(開平)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북방 여러 산의 물이 합류하여 하나가 되고 하류는 정류하(定流河)가 되어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난하는 원류가 장성 이북의 개평(開平)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북방 여러 산의 물이 합류하여 하나가 되고 하류는 정류하(定流河)가 되어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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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등은 배를 타고 건넌 뒤 다시 7-8리를 가서 또 칠하(漆河)를 건넜습니다.  
 
신 등은 배를 타고 건넌 뒤 다시 7-8리를 가서 또 칠하(漆河)를 건넜습니다.  
  
칠하는 비여하(肥如河)와 합류하여 영평부성 서남쪽을 감아 돌아 난하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호성하(護城河)라고도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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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하는 비여하(肥如河)와 합류하여 영평부성 서남쪽을 감아 돌아 난하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호성하(護城河)'''라고도 불렀습니다'''.  
  
 
백이(伯夷)·숙제(叔齊)<ref>[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onhdu&logNo=220955360993&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ref>의 사당은 칠하의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2리를 가서 영은문(迎恩門)·세영문(世英門)·관영문(冠英門)·상의 문(尙義門) 등을 지나서 난하역(豫河驛)에 이르니, 난하역 북쪽 2리에 성이 있었습니다.  
 
백이(伯夷)·숙제(叔齊)<ref>[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onhdu&logNo=220955360993&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ref>의 사당은 칠하의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2리를 가서 영은문(迎恩門)·세영문(世英門)·관영문(冠英門)·상의 문(尙義門) 등을 지나서 난하역(豫河驛)에 이르니, 난하역 북쪽 2리에 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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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는 영평부치(永平府治)와 노룡현(盧龍縣), 영평위(永平衛), 노룡위(盧龍衛), 동승좌위(東勝左衛)의 치소가 있었습니다.  
 
성안에는 영평부치(永平府治)와 노룡현(盧龍縣), 영평위(永平衛), 노룡위(盧龍衛), 동승좌위(東勝左衛)의 치소가 있었습니다.  
  
부(府)는 곧 금(金)나라<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5/2014062503300.html 고려를 부모로 모시던 여진족, 금나라 건국 후에는...조선일보, 2014.06.26]</ref> 남경(南京)이고, 노룡이 옛날의 비자국(肥子國)으로서 이른바 노룡새외(盧龍塞外)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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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府)는 곧 금(金)나라<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5/2014062503300.html 고려를 부모로 모시던 여진족, 금나라 건국 후에는...조선일보, 2014.06.26]</ref> 남경(南京)이고, 노룡이 옛날의 비자국(肥子國)으로서 '''이른바 노룡새외(盧龍塞外)란 곳'''입니다.  
  
 
용산(龍山)·동산(洞山)·쌍자산(雙子山)·주왕산(周王山)·마안산(馬鞍山)·양산(陽山)·회산(灰山)·필가산(筆架山) 등 여러 산이 길게 잇달아 둘러싸고 있었으니, 또 하나의 절경이었습니다.  
 
용산(龍山)·동산(洞山)·쌍자산(雙子山)·주왕산(周王山)·마안산(馬鞍山)·양산(陽山)·회산(灰山)·필가산(筆架山) 등 여러 산이 길게 잇달아 둘러싸고 있었으니, 또 하나의 절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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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승(驛丞) 백사경(白思敬)이, “이곳이 개원사(開元寺)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역승(驛丞) 백사경(白思敬)이, “이곳이 개원사(開元寺)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금의위(錦衣衛)의 관인 이 강도를 잡아 역 뒤에 있는 청사(廳舍)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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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금의위(錦衣衛)의 관인이 강도를 잡아 역 뒤에 있는 청사(廳舍)로 왔습니다.
  
 
2nd Day. Arriving South of the Wall of Yung-p’ing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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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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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풍경
 
*불교
 
*불교
*지리(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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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2019년 10월 18일 (금) 13:09 판

初二日,至永平府城南,是日晴,過沙河,至濠河,其間所過,有沙窩、色山、赤宰、白佛院、石梯子等鋪,藻河源自口北開平而來,北方諸山之水,合流為一,下流為定流河,入于海,臣等舟渡行七八里,又渡漆河,河與肥如河合流,繞永平府城西南,流入藻河,故又名護城河,伯夷、叔齊廟,在河之岸上,行二里,過迎恩、世英、冠英、尚義等門,至藻河睾,睾北二里有城,城上列建成樓,其一乃望高樓也,城中有府治及盧龍縣、永平衛、盧龍衛、東勝左衛治所,府即金之南京,盧龍即古肥子國,所謂盧龍塞外者也,有龍山、洞山、雙子、周王、馬鞍、陽山、灰山、筆架諸山,聯綿回抱,亦一形勝之地,購之南阜有景致,其上有寺,驛丞白思敬曰:“此開元寺也”時有錦衣衛官人拿的强盗來驛後廳,

영평부성(永平府城)[1]의 남쪽에 이르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사하(沙河)를 지나서 난하(漠河)[2]에 이르렀는데, 중간에 지난 곳으로 사와(沙窩), 색산(色山), 적봉(赤峯), 백불원(白佛院), 석제자(石梯子) 등의 포(鋪)가 있었습니다.

난하는 원류가 장성 이북의 개평(開平)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북방 여러 산의 물이 합류하여 하나가 되고 하류는 정류하(定流河)가 되어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신 등은 배를 타고 건넌 뒤 다시 7-8리를 가서 또 칠하(漆河)를 건넜습니다.

칠하는 비여하(肥如河)와 합류하여 영평부성 서남쪽을 감아 돌아 난하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호성하(護城河)라고도 불렀습니다.

백이(伯夷)·숙제(叔齊)[3]의 사당은 칠하의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2리를 가서 영은문(迎恩門)·세영문(世英門)·관영문(冠英門)·상의 문(尙義門) 등을 지나서 난하역(豫河驛)에 이르니, 난하역 북쪽 2리에 성이 있었습니다.

성 위에는 많은 누각이 죽 늘어서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망고루(望高樓)였습니다.

성안에는 영평부치(永平府治)와 노룡현(盧龍縣), 영평위(永平衛), 노룡위(盧龍衛), 동승좌위(東勝左衛)의 치소가 있었습니다.

부(府)는 곧 금(金)나라[4] 남경(南京)이고, 노룡이 옛날의 비자국(肥子國)으로서 이른바 노룡새외(盧龍塞外)란 곳입니다.

용산(龍山)·동산(洞山)·쌍자산(雙子山)·주왕산(周王山)·마안산(馬鞍山)·양산(陽山)·회산(灰山)·필가산(筆架山) 등 여러 산이 길게 잇달아 둘러싸고 있었으니, 또 하나의 절경이었습니다.

역 남쪽 언덕은 풍경이 좋았는데 그 위에 절이 있었습니다.

역승(驛丞) 백사경(白思敬)이, “이곳이 개원사(開元寺)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금의위(錦衣衛)의 관인이 강도를 잡아 역 뒤에 있는 청사(廳舍)로 왔습니다.

2nd Day. Arriving South of the Wall of Yung-p’ing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From the Sha and Luan rivers we came to Luan-ho Station, near the wall of Yung-p’ing Prefecture.] The wall was two li north of the station, and a line of towers was built on top of it. One was Koryo-Lookout [Wang-kao] Tower. Inside the wall were the prefectural capital, the seat of Lu-lung County, and the headquarters of Yung-p’ing Garrison, Lu-lung Garrison, and Tung-sheng Left Garrison. The prefecture had been a Nan-ching of Chin.32 Lu-lung had been old Fei-tzu-kuo and is the same Lu-lung that is often used to mean the land beyond the Wall. Lung, Tung, Shuang-tzu, Chou-wang, Ma-an, Yang, Hui, and Pi-chia mountains were there, linked one to the next and curving round in a natural barrier. South of the station a mound dominated the scenery, and on top of it was a Buddhist temple. Pai Ssu-ching, the Station Master, said “This is K’ai-yuan Temple.” At that time, an official of the Imperial Bodyguard, coming to arrest bandits, came to the office behind the station.


  • 기후
  • 지명
  • 지리
  • 제도(교통)
  • 인명
  • 유학(백이,숙제사당)
  • 고증
  • 언어(어원)
  • 역사
  • 풍경
  • 불교
  • 사건
  • 단군조선의 수도를 찾았다. 야호야호야호야호야호 야호 야호^o^
  • [1]
  • [2]
  • 고려를 부모로 모시던 여진족, 금나라 건국 후에는...조선일보, 201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