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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2일 (토) 23:18 판
二十六日,晴,大風,沙塵漲天,且不能開,順風而行,過要兒渡口、下馬頭、納鈔廳、天妃廟、中馬頭、車榮兒、上馬頭、河西務、土門樓、葉青店、王家木罷渡口、魯家坞、攀繪口,至泊蕭家林里前河之越岸,臣船相對處,有十餘人乘桴,架屋榜上,亦來泊,有賊人來劫奪,乘人亦强健者,相與搏擊,陳萱曰:“盗肆行國掠若此,其分付你來,各自相警,小心過夜”云云,自天津以北,白沙平鋪,一望無際,曠野無草,五穀不生,人煙鮮少,即曹操征烏丸時,遣其將,自洱沱河入路沙,路沙即此地也.
맑았습니다.
큰바람이 불어 모래 섞인 먼지가 하늘에 가득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순풍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 요아도구(要兒渡口), 하마두(下馬頭), 납초청(納廳), 천비묘(天妃廟), 중마두(中馬頭), 거영아(車榮兒), 상마두(上馬U), 하서무(河西務), 토문루(土門樓), 엽청점(葉靑店), 왕가파도구(王家木混渡口), 노가오(魯家烏), 반증구(攀繪口)를 지나서 소가림리(蕭家林里) 앞 강가의 건너편 언덕에 이르러 정박하였습니다.
신의 배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에 10여 인이 위에 지붕을 얹은 뗏목을 타고 와서 대었습니다.
도적이 와서 겁탈하니 뗏목을 탄 사람도 또한 건장한 자라서 서로 치고 때렸습니다.
진훤은, “도적이 멋대로 때리고 빼앗기를 이와 같이 하니, 당신의 무리에 게 분부하여 각자가 경계하도록 하고 조심스럽게 밤을 지내도록 하십시오"라 운운하였습니다.
천진위(天津衛)로부터 북쪽은 고르게 깔린 흰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빈 들판에 풀이 없고 오곡(五穀)이 자라지 않았으며 인가가 드물었습니다.
조조(曹操)가 오환(烏丸)을 정벌할 때 그 장수를 보내어 호타하(滹沱河)로부터 노사(路沙)로 들어가게 했었는데 노사가 곧 이곳이었습니다.
26th Day. Fair. High winds; dust and sand filled the sky, and we could not open our eyes.
[We went from Yao-erh-tu-k’ou to Hsiao-chia-lin Village and stopped there.] In the place across from my boat were more than ten men on rafts that had shelters on top of them. They, too, had come and stopped. Bandits came to rob them, but the men on the boats were also strong and fought back. Ch’en Hsüan said, “That is how outrageously the bandits beat people and rob them. You had better warn your people to be on guard, and let us pass the night cautiously.” From T’ien-chin Garrison north, white sand lay flat as far as the eye could see. There was no grass in the waste land. The five grains did not grow, and settlements were few and far apart. When Ts’ao Ts’ao subjugated the Wu-wan, he sent his generals from Hu-t'o River into Lu-sha. Lu-sha was that plac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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