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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2일 (토) 21:13 판

初六日,到杭州,是日陰,興驛之西北,平衍廣闊,即錢塘,江水潮壯則為湖,潮退則為陸,杭州人每於八月十八日潮大至,觸浪觀潮之處也,臣等自曝前舍舟登岸,乘車而行可十餘里,至浙江,復乘紅而渡,江流曲折傍山,又有反濤之勢,故謂之浙江,浙一作潮,江闊可八九里,江長西南直抵福建路,東北通海,華信所築捍潮之塘,自團魚嘴至范村,約三十里,又至富陽縣,共六十餘里,石築尚完固如新,故又謂江為錢塘江也,臣至其塘,復緣岸步行,則西望六和塔,臨江畔,行過延聖寺、浙江驟,至杭州城南門,重城疊門,門有三層樓,入其城,過文魁門、靈順宮、肅憲門、澄清門、南察院、祐聖殿、土地廟、芝松坊鋪,至武林驛,自城門至此驛,約十餘里矣.霍勇伴臣等,因雨留一日外,無留滯,或夜行遠涉千有餘里之地,鎮守太監張慶,猶責勇以遲緩之罪,杖之,夕,驛丞楊秀祿,以餵物來惠,

항주[1][2][3][4]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서흥역의 서북방은 평탄하고 넓었는데 곧 전당(錢塘)15이었습니다.

강물은 조수가 불어나면 호수가 되고 조수가 빠지면 육지가 되었습니다.

항주 사람들이 매년 8월 18일에 조수가 크게 밀려오면 파도에 맞부딪치기도 하며16 [5], 조수를 구경하던 곳이었습니다.17 [6][7]

신 등은 서흥역 앞에서 배를 버려두고 언덕에 올라 수레를 타고 10여 리를 가다가 절강(浙江)에 이르러서는 다시 배를 타고 건넜습니다.

강의 흐름이 산을 끼고 구불구불 굽이치고, 또 거꾸로 물결치는 형세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절강이라 부르는데 절(浙)은 또 절(制)이라 쓰기도 하였습니다.

강의 너비는 8-9리이고 길이는 서남쪽으로 복건로(福建路)에 이르고, 동북쪽은 바다로 통하였습니다.

조수를 막기 위해 화신(華信)18 이 쌓은 제방은 단어취(團魚嘴)로부터 범촌(范村)까지 대략 30리이고, 또 부양현(富陽縣)까지 합계 60여 리입니다.

석축(石築)이 새것처럼 아직 견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또 강을 전당강(錢塘江)[8][9]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신은 그 제방에 이르러 다시 언덕을 따라 걸어가니 서쪽으로 강가에 세워진 육화탑(六和塔)19[10]이 보였습니다.

걸어서 연성사(延聖寺)와 절강역(浙江驛)을 지나 항주성의 남문에 이르니 겹성에다 이중문이었고 문에는 3층의 누각이 있었습니다. 그 성에 들어가 문괴문(文魁門)·영순궁(靈順宮)·숙헌문(肅憲門)·징청문(澄淸門)·남찰원(南察院)20 ·우성전(佑聖殿)·토지묘(土地廟)·지송방포(芝松坊鋪)를 지나서 무림역(武林驛)에 이르렀습니다.

성문으로부터 이 역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10여 리쯤 되었습니다.

적용(望勇)은 신 등을 이끌고 비로 인해 하루를 머무른 것 이외에는 지체한 적이 없고 밤길을 가기까지 하면서 천여 리의 땅을 거쳐 왔지만, 진수태감(鎭守太監) 장경(張慶, 장칭)[11]은 오히려 적용에게 더디게 왔다는 죄를 물어 곤장을 쳤습니다.

저녁에 역승(驛丞) 양수록(楊秀祿)이 찬거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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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h Day. Arrival at Hang-chou. This day was cloudy.

Northwest of Hsi-hsiang Station was a broad, level plain, which was the Ch’ien-t’ang River. In flood tides it is a lake, but when the tide ebbs, it is land. On the 18th Day of every Eighth Month there is a big tide with great waves, and the people of Hang-chou watch the bore.5 We left the boats in front of the station, went ashore, got into carriages, and went on. In about ten li we came to the Che River. We got into boats again and crossed. The river twists and turns, and the mountains on the side also have the effect of deflecting its waves; that is why it is called Che-chiang, Twisting River ... The width of the river is about eight or nine li. In length, it extends from Fuchien-lu in the southwest and enters the sea in the northeast. The wall built by Hua Hsin to hold off the tide extends from T'uan-yü-tsui to Fan Village, approximately thirty li, and then goes to Fu-yang County, making a total of over sixty li. Of stone construction, it is still as good as new. For that reason, the river is also called the Coin Wall (Ch’ien-tang) River.6 I came to that wall, landed again, and continued on foot. In the west we saw Liu-ho Pagoda, overlooking the river bank. We went past Yen-sheng Temple and Che-chiang Station and came to the south gate of the wall of Hang-chou. The wall was double, the gate multiple, and the gate had a tower of three stories. We went inside the wall, passed Wen-k’uei Gate, Ling-shun-kung, Suhsien Gate, Ch'eng-ch'ing Gate, Nan-ch'a-yuan, Yu-sheng Hall, T’u-ti Shrine, and Chih-sung-fang Stop, and came to Wu-lin Station. It was approximately ten li from the gate of the wall to that station. Chai Yung had accompanied us for a great distance, over one thousand li, in which, except a one-day stop because of rain, we had not delayed and had sometimes travelled at night. Nevertheless, the Grand Defending Overseer, Chang Ch’ing," charged Yung with being dilatory and had him flogged. In the evening, Yang Hsui-lu, the Station Master, came with food and paid his respects.

15. 府城의 남쪽에 있다. 海水를 막기 위하여 東漢代에 華信이 만든 塘이다. 土石 1__을가져온 자에게 千錢을 주겠다고 하니, 10일 만에 塘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錢塘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 萬曆《紹興府志》 권4, 山川. 16.《民國杭州府志》 권23, 山水 4, 江潮. “每年八月十八日數百里士女共觀, 人漁子派 濤觸浪, 謂之弄潮, 秋中潮兪怒, 吳人輕生者, 乃無故以身試怒潮, 名爲弄潮, 往往沈 沒.” 여기서 ‘浪'이란 강 속에 뛰어 들어 직접 몸을 파도에 부딪치는 행위임을 알수 있다. 17. 海寧潮·浙江湖·錢塘 등으로 불린다. 매년 음력 8월 18일 錢塘江에는 潮水가 역류하며, 커다란 파도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특이한 자연현상이 일어난다. 평균 2-3미터, 최고 9미터에 달하는 파도가 역류하는 이 장관을, 明代 馮夢龍은 《三言》에서 '天下四 '로 꼽았다. 18. 華信은 東漢代에 郡議曹를 역임하며 錢塘을 수축했다. 관련 기록은 아래와 같다. “錢塘,今杭州縣也.錢塘記云 昔郡議曹華信議立此塘, 以防海水, 始開募, 有能致 土石一, 與錢一千, 旬 日之間, 來者雲集, 塘未成而論不復取, 皆遂土石而去, 塘以之成也.”《後漢書》권71, 列傳 第61, 皇甫崇朱. 19. 전당강의 潮水를 누르고자 하는 기원을 담아 北宋 開寶 3년(970)에 세워졌다. 불교 六和敬'의 뜻을 취하여 '六和塔'이라고 이름 지었다. 밖에서 볼 때는 13층이나 내부는 7층으로 설계되어 있다.

20. 察院은 명대 都察院의 약칭이지만 외지에 파견된 巡按御史가 근무하는 아문도 찰원이라 하였다. 항주에는 北察院과 南察院 2곳이 있었다. 전자는 紀家橋 서측에 있는데 후에 按察分司가 되었고, 후자는 鳳山門 북측에 있는데 이곳이 巡按察院이 되었다. 萬 《杭州府志》권37, 公署.
  1. [1]
  2. [2]
  3. [3]
  4. [4]
  5. [https://www.youtube.com/watch?v=hAUXp8A5nk8 中, 해일 같은 '첸탕강 파도'에 인산인해, YTN NEWS, 2014.09.13]
  6. 음력 8월 18일 中 첸탕강 밀물 장관, CCTV 한국어방송, 2016.09.20
  7. 이것이 대륙의 서핑이다 : 항주 전단강의 역류를 이용한 서핑대회를 보라!, 허프포스트, 2015.09.30
  8. [중국 도읍지 이야기 33 첸탕장대교와 마오이성,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2019.05.01]
  9. 용비어천가 67장
  10. 육화는 왜 전당강에 돌을 던졌을까, 오마이뉴스, 2006.01.10
  11. [5]
  12. 明朝 前期 宦官 勢力의 推移와 機能, 충북대, 全淳東
  13. 중국 환관의 특징 :: 환관의 역사 및 종류 그리고 사마천
  14. 거세된 남성… 환관, 그들을 위한 변명, 경향신문, 2014.12.16
  15. [중국부자열전-1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명나라 환관 갑부 ‘류근’, 매일경제, 2017.03.15]
  16.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5/2018070500036.html [숨어 있는 세계사] 조공 무역 위해 대규모 항해… 아프리카 해안까지 갔죠, 조선일보, 2018.07.06]
  17. ‘9900세’의 환관, 위충현魏忠賢, 제주누리, 2017.05.08
  18. [6]
  19. 조선시대 왕 보다 장수한 '내시'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