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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2일 (토) 08:29 판

十二日,遇贼于寧波府界,是日,午陰乍雨,海色還白,哺,至巨島,連綿如屏,望有中船二艘,皆帶懸居,直指臣船而來,程保等羅跪臣前,曰:“凡事有經有權,請解喪服,權着紗帽團領,以示官人之儀,不然則彼必哄我為劫賊,加以修辱矣.”臣曰:“漂流海上,天也,屢經死地而復生,天也,到此島而遇此船,亦天也,天理本直,安可違天以行詐乎?”俄頃,二船漸近相值,一船可十餘人,人皆穿黑橘榜芒鞋,有以手帕裏頭者,有着竹葉笠棕皮囊者,喧麼叫噪,渾是漢語,臣度其乃是中國人,全程保書紙以遺曰:“朝鮮國臣崔溥奉王命,往海島,奔父喪過海,遇風漂到,不知是何國邑地也?”

其人復曰:“此乃大唐國浙江寧波府地方,”又曰:“要到本國去,润到大唐好.”程保以手指其口,其人以陸水二桶來遺,掉丹東去,臣令人嚮入一島以依,又有一艘亦帶懸居,有軍人可七八人,其衣服語音,亦與前所見同.來逆臣船,曰:“你是何國人?”臣又使程保答如前,因問曰:“此何國?”其人指其島,曰:“此即大唐寧波府地下山也,風水好,二日可回去,”臣又復:“他國人遭風萬死之餘,幸到大國之境,喜得復生之地,又問渠姓名謂誰,其人答曰:“我是大唐林大,你若大唐去,帶你進去,你有寶貨,可遺我:”臣答日:“僕奉使臣,非商賈者流,且漂流浮沈之後,安有寶貨乎?”即减米粮以之,其人受而復曰:“此山繫船,不怕西北風,但南風不好,隨我繫船,”引臣船指一泊舟島,曰:“此可泊可泊,”臣如其言,即往泊之,果無風風,環島中可藏船處也,其西岸有二草屋,如鮑作于家者,其人等泊舟于屋下,臣之同舟人,久久渴久勞久不寝寐之極,得食以食,得風定處以泊,困億支贏,相與 枕藉乎舟中,夜二更,所謂自稱林大者,率其黨二十餘人,或執鎗或帶刀而無弓箭,秉炬擁至,闖入臣船,賊魁書曰:“我是觀音佛,你有金銀,便須看,”臣答曰:“金銀非本國所產,初無有賣,”賊魁曰:“你若官人,豈不費來?

我當看看,”初臣及程保、李植、金重、孝子等,以濟州海外地,往來無期,具四節衣服數套而往,至是賊魁即叫其黨,窮搜臣及陪吏等包中衣裝、舟人糧物,輸載其船,其所遺者,若衣之濃沾鹹水者及諸般書册而已,賊中

p. 360 __一目者,惡之尤甚,程保謂臣曰:“賊之始至,示若從容,見我勢弱,剛成大賊,請一奮擊,以決死生:”臣曰:“我舟人皆以飢渴垂死之後,奪氣於賊,故賊乘勢肆暴,若與相搏,則我輩皆死於賊手,莫如盡付行李,以乞生活耳,” 賊魁又奪臣所賣印信、馬牌,納之懷袖,程保尾其後請還不得,臣曰:“船中有物,可盡取去,印與馬牌,乃國之信,私無可用,可還我.”賊魁以印牌還.繼出篷,與其黨列立船舷,喧嚣良久,旋入舟中,先脱程保衣榜,細而枚之,次以研刀,截臣衣紐,赤身脫,背手曲脚以綁之,以杖杖臣左臂七八下,曰:“你若愛生,便出金銀,”臣大號曰:“身可彎骨可碎,何所得金銀乎?”

賊不曉臣言,解臣轉,許以寫意,臣即寫之,贼魁怒,嗔目張喙,指程保而叫,指臣而叫,即更臣頭髮,還轉倒懸,荷刀指臣頸斷之,刀遍誤下右肩偶,刃舔在上,賊又荷刀將斬臣,有一賊來把荷刀之臂以泪之,賊黨齊聲大叫,莫知所謂,是時,舟人喘惧失常,奔竄無地,唯金重、巨伊山等,攤手拜跪,冀活臣命,俄而,賊魁蹂躏臣身,喝嚇人,引其黨而出,截去臣船牆諸緣,投諸海,遂以其船導緯臣船,指放大洋,然後乘其船遁去,夜已蘭矣.

영파부(寧波府)[1][2] [3] [4]에서 해적 [5] [6] [7] [8] [9]을 만났습니다.

이 날은 흐렸다가 비가 오기도 하더니, 바다 빛깔이 도로 희게 되었습니다.

해질 무렵에 큰 섬에 이르렀는데, 섬이 병풍처럼 잇닿아 있었습니다.

바라보니 중선(中船) 두 척이 모두 거룻배를 매달고서 신의 배를 향하여 똑바로 왔습니다.

정보 등이 신의 앞에 빙 둘러 꿇어앉아 말하기를, “무릇 일에는 경상(經常)도 있고 권변(權變)[10]도 있는 것이니, 청컨대 상복[11]을 벗고[12] 임시로 사모(紗帽)단령(團領)을 착용하여 관인(官人)의 위의(威儀)를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도적이라고 떠들어 대며 욕을 보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해상에서 표류하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고, 여러 번 사지(死地)를 거쳤지만 다시 살아난 것도 하늘의 뜻이고, 이 섬에 도착하여 이 배를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다. 천리(天理)는 본래 곧은 법인데, 어찌 천리를 어기면서 거짓을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뒤에 두 배가 점차 가까워져서 서로 만났습니다. 한 배에 약 10여 명이 타고 있었는데 사람마다 모두 검은 솜바지를 입고 짚신을 신었으며, 그중에는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 맨 사람도 있었고, 대나무 잎으로 만든 삿갓과 종려(綜) 껍질로 만든 도롱이를 입은 사람도 있었는데,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모조리 중국말이었습니다. 신은 그들이 중국 사람인 줄 짐작하고 정보를 시켜서 종이에 글을 써서 건네기를, 조선국(朝鮮國)의 신(臣) 최부는 왕명을 받들고 해도(海島)에 갔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바다를 건너가던 도중, 바람을 만나 표류해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이 어느 나라 고을의 땅인지 모르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회답하기를, “이곳은 곧 대당국(大唐國) 절강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13] 지방이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본국으로 돌아가려면 대당(大唐)으로 가는 것이 좋소”라고 하였습니다.

정보가 손으로 자기의 입을 가리켜 보이니, 그 사람들은 먹을 물 두 통을 가지고 와서 주고는 노를 저어 동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신은 배 안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노를 저어 한 섬에 들어가서 대게 하였습니다. 또 다른 배 한 척도 거룻배를 달고 있고 군인 7-8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의복과 말소리는 또한 앞에 보았던 자들과 같았습니다.

신의 배에 다가와서 말하기를,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또 정보에게 전과 같이 대답하게 하고는 이어서 물어보기를, “이곳은 어느 나라 땅이오?”라고 하니,

그 사람은 그 섬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곧 대당(大唐) 영파부의 하산(下山)[14]이오. 바람과 물길이 좋으면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타국 사람이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던 나머지 다행스럽게 대국(大國)의 땅에 이르러 다시 살아날 길을 얻게 되어 기쁘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의 성명이 누군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대당의 임대(林大)요. 당신이 만약 대당으로 간다면 데리고 갈 터이니 보화(寶貨)가 있으면 내게 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나는 봉명사신(奉命使臣)5이지 장사하는 무리가 아니며 또 바다에 표류하여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한 뒤인데 어떻게 보화가 있겠소?”라고 하고, 쌀을 덜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받고 나서 다시 말하기를, “이 산은 배를 매기에 서북풍은 걱정되지 않지만, 다만 남풍이 좋지 않으니 나를 따라와 배를 매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배를 인도하더니 배 댈 만한 섬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댈 만하오, 댈 만하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그의 말대로 곧 가서 배를 대었는데 과연 바람이 없었으며, 온 섬 안을 둘러보아 배를 매어 둘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 서쪽의 물가에는 초가집 두 채가 있었는데 보자기의 집 같았습니다. 그들은 배를 초가집 아래에 매었습니다.

신과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은 오랫동안 굶주리고 목말랐으며 지치고 잠자 지 못한 끝에 먹을 것을 먹게 되고 바람 잔 곳에 배를 대자 피로가 몰려들어 사지가 풀려서 배 안에서 서로를 베개 삼아 이내 곯아 떨어졌습니다.

밤 2경에 자칭 임대(林大)란 자가 그 무리 20여 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창을 쥔 자도 있고 칼을 찬 자도 있었지만 활과 화살은 없이 횃불을 잡고 들이닥쳐 신의 배 안으로 마구 들이닥쳤습니다.

해적의 괴수가 글로 써 보이기를, "나는 관음불(觀音佛)이라 네 마음을 뚫어본다. 네가 금은을 가지고 있으니 찾아보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금은은 본국에서 생산되지 않아서 처음부터 가져온 것이 없소”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벼슬아치라면 어찌 금은을 가지고 오지 않았겠는가? 내가 찾아보아야겠다.”

당초 신 및 정보 · 이정 · 김중·손효자 등은, 제주도는 바다 밖의 땅이라 갔다 오는데 기약할 수 없다고 해서 사철 의복 몇 벌을 갖추어 갔습니다.

이 때 와서 해적의 괴수는 곧 그 무리들을 큰 소리로 불러서 신 및 배리(陪吏)들의 보자기 속에 있는 의류와 뱃사람의 양식 등을 샅샅이 뒤져 가지고 가 그들의 배에 실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것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옷과 여러 종류의 서책(書冊)뿐이었습니다.

해적 가운데 애꾸눈인 자가 특히 악독하였습니다.

정보가 신에게 말하기를, “해적이 처음 이르렀을 적에는 얌전하였는데, 우리의 형세가 약한 것을 보더니 차츰 날강도로 변하였습니다.

청컨대 한 번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여 사생결단을 내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우리 일행은 모두 굶주리고 목말라 거의 죽게 된 뒤이라 해적에게 기를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형세를 이용하여 포악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 서로 싸운다면 우리들은 모두 해적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행장을 모조리 주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비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해적의 괴수가 또 신이 가졌던 인신(印信)과 마패를 빼앗아 그의 소매 속에 넣었습니다.

정보가 그 뒤를 따라가서 돌려주기를 청했으나 받지 못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배 안에 있는 물건은 죄다 가져 가도 되지만, 인신과 마패는 나라의 신표(信標)라 사사로이 쓸 곳이 없으니 나에게 돌려주면 좋겠소”라고 하였습니다.

해적의 괴수는 인신과 마패를 돌려주었습니다.

봉창(蓬窓)을 나서더니, 그 무리들과 뱃전에 죽 늘어서서 한참 동안 떠들다가 배 안으로 도로 들어왔습니다.

먼저 정보의 웃옷과 바지를 벗기고 묶어놓고 매질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칼로 신의 옷고름을 끊고 옷을 벗겨서 알몸을 만든 뒤, 손을 뒤로 젖히고 무릎을 굽혀 결박하더니, 몽둥이를 가지고 신의 왼팔을 일곱 여덟 차례 때리고 난 뒤에 말하기를, “네가 만약 목숨이 아깝다면 얼른 금은을 내 놓아라” 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몸뚱이가 문드러지고 뼈가 가루가 될지라도 어디에서 금은을 가져온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해적은 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으므로, 신의 결박을 풀어주고는 그 의미를 글로 쓰게 하였습니다.

신이 즉시 썼더니 해적의 괴수는 노하여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정보를 가리키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신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나서 곧 신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도로 묶어 거꾸로 매달고는 칼을 메고 신의 목을 베려고 하였지만, 칼을 마침 오른쪽 어깨로 잘못 내렸고 칼날이 뒤집혀져 있었습니다.

다시 칼을 메고 신의 목을 베려고 할 때 한 해적이 와서 칼을 멘 자의 팔을 잡아 이를 저지시켰습니다.

해적의 무리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러 크게 떠들어 댔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에 뱃사람들은 두려워 제정신을 잃고 쥐새끼처럼 구석구석 숨어버렸습니다.

김중과 최거이산 등만은 손을 모아 절하고 꿇어앉아서 신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해적의 괴수가 신의 몸뚱이를 짓밟고, 뱃사람들을 공갈 협박하고는 그 무리들을 이끌고 나가면서 신의 배의 닻, 노 등 여러 가지 기구를 끊어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배로 신의 배를 끌어 큰 바다 가운데 놓은 다음 배를 타고 도망가 버렸는데 밤은 이미 깊었습니다.

  • 기후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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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천
  • 유학 경세사상 '경상(經常)'과 '권변(權變)'
  • 도덕
  • 심리(공포)
  • 핍박

12th Day. An Encounter with Pirates at the Boundary of Ning-po Prefecture. This day was cloudy and sometimes rainy. The sea was again white. At dusk we came to large islands that lay opened out like a screen. We saw that there were two boats among them. Both carried small boats. They pointed directly at my boat and came toward us. Chòng Po and others knelt round me and said, “In all things there are rules and exceptions to the rules. Please take off your mourning clothes and, as an exception, wear your silk gauze cap and round collar and thus display the signs of an official. If you do not, they will make us out to be pirates and humiliate us.” I said, “We have drifted at sea by the will of Heaven. We have repeatedly approached death and regained life by the will of Heaven. We have also arrived at these islands and met these boats by the will of Heaven. Heaven's principles are just. How can I go against Heaven to practice deceit?" Very quickly, the two boats drew near and met us. In each boat there were about ten men, all of whom wore black, padded trousers and straw boots. Some had towels wrapped round their heads, and some wore bamboo-leaf rain hats and coir-bark raincoats. They clamored and shouted loudly. It was all in Chinese, and I judged them to be men of China. I ordered Chòng Po to write sa message] on a piece of paper and send it to them. It said, “I, Ch'oe Pu, a minister of Korea, received the King's order to go to an island in the sea. I was hurrying to mourn for my father, and, crossing the sea, met a wind and drifted here. I do not know what land or district this is.” The men answered, “This is the region of Ning-po Prefecture, Chekiang, China.” They also said, “If you want to reach your own country, it would be well for you to go to China [first].” Chong Po pointed to his mouth with his hand. The men brought two buckets of fresh water and gave them to us. They rowed their boats away to the east. I commanded the boatmen to scull into an island and seek shelter. There was another boat, which also carried a small boat and had about seven or eight soldiers. Their clothes and speech were the same as those of the men we had previously seen. They came to meet my boat and said, “What country are you from?” I had Chòng Po answer again as before. Then we asked, “What country and place is this?” The men pointed to the island and said, “This is Hsia-shan,21 in Ning-po Prefecture, China. If the wind and water are right, you can return home in two days." I replied, “We, men from a strange land, have encountered a storm and, despite ten thousand brushes with death, have been fortunate enough to reach the shores of China. We are happy to have reached a place where our lives are saved.” Then I asked them what their names were. A man answered, “I am Lin Ta of China. If you are going to China, I shall accompany you. If you have valuables, you should give them to me.” I answered, “I am an official on a mission, not a merchant. After drifting and bobbing about, furthermore, how could I have valuables?”' I took rice from our rations and gave it to him. The man accepted it and replied, “If you moor your boat to this island you need not fear the northwest wind, but the south wind is not good. Follow me to moor it.” He led my boat to an island anchorage. He said, “Here, this is where you should moor.” I did as he said. We went and moored the boat, and there was, true enough, no wind. It was a place ringed by the island, in which boats could find shelter. On the west shore were two thatched huts that looked like houses in which salt fish were prepared. The other men moored their boat below the huts. The men in my boat, at the extremity of prolonged hunger and thirst and having toiled without sleep for a long time, had got food and eaten and had got a place protected from the wind and moored. Then, exhausted, they dropped down in a jumble of limbs in the boat. In the second watch of the night, the one who had called himself Lin Ta came at the head of his band of over twenty men, some carrying spears, some carrying swords, but without bows and arrows, and holding torches. They came without leave into my boat. The pirate chief wrote [a message] that said, “I am the Buddha Kuan-yin. I see through to your heart. You have gold and silver, and I am going to look for it.” I answered, “Gold and silver are not produced by my country. I have not had any from the first.” The pirate chief said, “If you are an official, how can you not have brought any? I'll take a look.” Now I, Chòng Po, Yi Chong, Kim Chung, and Hyo-ja, because it was uncertain how long a voyage to Cheju and places at sea would take, had sailed with several pieces of clothing for all seasons. This pirate chief, now, shouted to his band to make a thorough search for clothes in my portmanteau and those of my secondary officials and for the boatmen's rations and to load them into his boat. They left behind only such things as the clothes drenched in salt water and all the books and documents. Among the pirates there was a one-eyed one who behaved especially badly. Chong Po said to me, “When the pirates first came, they showed something like courtesy. When they saw that we were weak, they gradually came to show their true colors. I suggest that we make one strong attack to decide who should die and who should live.” I said, “Our boatmen, after being on the brink of death from hunger and thirst, have lost their courage before the pirates. The pirates, therefore, take advantage of the circumstances and inflict on us their violence. If we fought with them, our men would all die at the pirates' hands. It is better to give up all our baggage and beg for our lives.” The pirate chief also seized the seal and horse permit that I had and put them into his sleeve. Chòng Po followed after him and asked him to return them but did not get them. I said, “Take away everything in the boat, but the seal and horse permit are symbols of state and of no use to unauthorized persons. You had better return them to me.” The pirate chief returned the seal and permit. Then he went out the door of the shelter and stood lined up with his band on the gunwale of the boat. They argued noisily for some time and then came back into the boat. First, they took off Chòng Po's clothes, bound him and beat him. Next, they cut the frog of my gown with a sword and stripped me naked. They put my hands behind me, bent my legs, and bound me. They beat my left arm with a stick seven or eight times and said, “If you love life, better bring out the gold and silver.” I shouted, “You can cut my body and break my bones, but where am I to get gold and silver?” The pirates did not understand what I said. They untied my bonds to let me write what I meant, and I wrote it. The pirate chief was angry. He stared ferociously, his mouth wide open. He pointed at Chòng Po and shouted, pointed at me and shouted. He pulled me by the hair and again bound me. He raised his sword and aimed it at my throat to cut it, but the sword happened to miss and struck something by my right shoulder, the blade glancing off. The pirate again raised the sword and was about to behead me, when one of the pirates came, took hold of the arm that raised the sword, and restrained it. The pirate band all raised great shouts, but I do not know what was said. | At the time, the boatmen were beside themselves with fright. They scurried about to hide, but there was no place. Only Kim Chung and Kõisan clasped their hands and begged on their knees that my life be spared. Then, after torturing me and terrifying the boatmen, the pirate chief led his band off. They cut away the boat's anchor, oars, and all ropes and threw them into the sea. Then with their boat they towed my boat toward the open sea and turned it loose. By the time they boarded their boat and disappeared, it was already late at night.

89. 항상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 道義와 法則. 90. 임기응변의 조치. 91. 비단실로 짠 모자로서 魏晉시대에서부터 유래한다. 紗帽에는 황제가 쓰는 白紗帽와 文人 및 관료가 쓰는 烏紗帽 등이 있다. 원문에서 紗帽는 물론 烏紗帽를 가리키는데 明代에는 官帽의 대명사가 되었다. 92. 깃을 둥글게 만든 옷으로 圓領, 員領, 上領이라고도 한다. 漢魏 이전의 西域에서 기원한다. 六朝 이후 점차 中原에 들어와 隋唐 이후에 많이 입게 되었는데, 특히 官吏의 常服으로 사용되었다. 후에는 官服의 대명사가 되었다. 93. 중국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 유래에 대해서는 《漂海錄》 3월 8일의 내용을 참조할 수 있다. 94. 三門縣의 地方志辦公室 金賢德 副主編은 최근 《漂海錄》에 나오는 下山이라는 섬은 府山列島의 ‘山’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9일자. 95. 임금의 명을 받고 파견된 사신. 96. 원문은 鮑作干(포작한)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우리말 '보자기' 대신 漢字를 빌어다 쓴 말이다. '보자기' 즉 포작한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 조개, 미역 등 해물을 채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편 《朝鮮中宗實錄》 35년 1월 10일조와 《朝鮮宣祖實錄》 33년 1월 3일조 등의 기사를 보면 포작한은 배를 능숙하게 부리므로 格軍 등으로 동원되고 있다. 97. 觀音은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보살로서 단독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불교의 여러 神 가운데 가장 널리 숭상되어 왔다. 浙江省 山群島에 속한 이 섬 부근에 있는 普陀山(보타산, 푸퉈산)[15][16][17] 7. 해상실크로드와 함께한 관음신앙]</ref>[18]은 五臺山·峨眉山·九華山과 더불어 중국불교 4대 名山 가운데 하나로서, 五代 때에 지은 不肯去觀音院을 비롯한 觀音道場이 특히 많다. 특히 潮音洞이란 동굴에 관음보살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宋代에 만들어진 이래 觀音信仰의 중심이 되었다. 해적 두목인 林大가 스스로 ‘觀音佛'로 칭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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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강성 영파[41]
  • 제주 동정귤, 고려 때 국제적 해상 교류 통해 유입 제주일보, 2017.02.08[42]
  • 저지앙 닝보에 있는 고려사관 유적지 [43]
  • 황해 건너온 '스파이' 번화한 개경에 '깜짝', 인천일보, 2018.08.24[44]
  • 영파
  • [1]
  • [2]
  • [3]
  • 황해 해양문명의 징검다리 저우산(舟山)군도, 중앙시사매거진, 201706호 (2017.05.17)
  • 중국해적, 명(明) 해금정책에 왜구와 결탁, 아틀라스뉴스, 2019.05.29
  • 영파부지변
  • 해상실크로드의 중국 거점, 영파 (6), 광주매일신문, 2018. 01.09
  • 대운하가 中國의 문화와 英傑을 낳았다!, 월간조선, 2007.12
  • [4]
  • 최부 뜻밖의 중국 견문
  • 위기의 시대에 벌어진 조선의 예송논쟁, 아틀라스뉴스, 2019.08.10
  • 동북아 국제무역의 중심지 寧波 樂賓館에서는 고려 상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월간조선, 2018.12
  • 의문풀린 崔溥의 첫 중국 상륙지점, 한국경제, 2004.02.09
  • 이제현
  • 해상 실크로드를 가다
  •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5 중국 보타도 관음신앙의 진실 / 이동식 사색과 성찰 [48호], 2011.09.01일]
  •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
  • 중국인들의 새해 일출 명소, 주간조선, 2019.01.07
  • [5]
  • [6]
  • http://blog.daum.net/gaundekr/15793871]
  • [7]
  •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4/12/1507926/ 세계사 이야기 - 제1차 아편전쟁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2014.12.09]
  • [8]
  • [9]
  • []http://mnews.imaeil.com/NewestAll/2006073108514227709
  • 심청전의 “심청”은 과연 실존인물이었을까?
  • [⑧ 효녀 심청과 실크로드 효녀 심청, 한·중 해로를 건너다, 전북일보, 2017.05.05]
  • 경향신문, 2006.06.25
  • [10]
  • 중국인의 상술<5> 꽃중의 꽃, 닝보상인, 강효백 중국학 전문가, 2002.11.25
  • 장보고, 동아시아 경제권의 허브를 만들다
  • [11]
  • [강원구 칼럼 강원구박사의 중국여행 20, 광주일등뉴스, 2018.07.18]
  • [12]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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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 [16]
  • 절강성 영파의 모든것 정리
  • [17]
  • [18]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