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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와서 묻기를,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D%83%9C 경태(景泰)] 연간에 우리나라 [http://esillok.history.go.kr/front/glossary/properNouns/ProperNounsList.do?pageIndex=338&lang=ko 급사중(給事中) 벼슬을 한 장녕(張寧)]<ref>[http://sillok.history.go.kr/id/kga_10608019_002 세조실록 21권, 세조 6년 8월 19일 임술 2번째기사, 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주문사 윤자운·부사 윤길생 등이 명으로 가다]</ref>이 귀국에 사신으로 가서 <각금정시(却金亭詩)〉<ref>[https://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6BSKe3EUO2sJ: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OrteServHistIFrame.kci%3FsereArticleSearchBean.artiId%3DART002024716%26sereArticleSearchBean.orteFileId%3DKCI_FI002024716+&cd=12&hl=ko&ct=clnk&gl=kr 장녕(張寧) ≪봉사록(奉使錄)≫ 詩文硏究]</ref><ref>[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359649 장녕(張寧) ≪봉사록(奉使錄)≫ 시문연구(詩文硏究)]</ref>를 지어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5407 《황화집(皇華集)》]<ref>[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PW2NXU-3H0UJ:web.yonsei.ac.kr/yonmin/article/21/21-05.pdf+&cd=15&hl=ko&ct=clnk&gl=kr 다른 나라에서 같은 점을 찾다]</ref><ref>[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L_NUUncCQ3QJ:www.yeoju.go.kr/com/file/filedown%3F_ci%3D420448%26_ck%3D5f9417624eaf46a9b911435d72b04888+&cd=9&hl=ko&ct=clnk&gl=kr 『황화집(皇華集)』과 세종의 국가경영 | 어떤 사람이 와서 묻기를,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D%83%9C 경태(景泰)] 연간에 우리나라 [http://esillok.history.go.kr/front/glossary/properNouns/ProperNounsList.do?pageIndex=338&lang=ko 급사중(給事中) 벼슬을 한 장녕(張寧)]<ref>[http://sillok.history.go.kr/id/kga_10608019_002 세조실록 21권, 세조 6년 8월 19일 임술 2번째기사, 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주문사 윤자운·부사 윤길생 등이 명으로 가다]</ref>이 귀국에 사신으로 가서 <각금정시(却金亭詩)〉<ref>[https://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6BSKe3EUO2sJ: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OrteServHistIFrame.kci%3FsereArticleSearchBean.artiId%3DART002024716%26sereArticleSearchBean.orteFileId%3DKCI_FI002024716+&cd=12&hl=ko&ct=clnk&gl=kr 장녕(張寧) ≪봉사록(奉使錄)≫ 詩文硏究]</ref><ref>[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359649 장녕(張寧) ≪봉사록(奉使錄)≫ 시문연구(詩文硏究)]</ref>를 지어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5407 《황화집(皇華集)》]<ref>[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PW2NXU-3H0UJ:web.yonsei.ac.kr/yonmin/article/21/21-05.pdf+&cd=15&hl=ko&ct=clnk&gl=kr 다른 나라에서 같은 점을 찾다]</ref><ref>[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L_NUUncCQ3QJ:www.yeoju.go.kr/com/file/filedown%3F_ci%3D420448%26_ck%3D5f9417624eaf46a9b911435d72b04888+&cd=9&hl=ko&ct=clnk&gl=kr 『황화집(皇華集)』과 세종의 국가경영 | ||
]</ref>에 실렸다는데 알고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 ]</ref>에 실렸다는데 알고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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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답하기를, “장(張) 급사(給事)가 우리나라에 와서 <span style="color:red">《황화집》을 지었는데 그중 한강(漢江) 이라는 제목의 시</span>에, | 신이 답하기를, “장(張) 급사(給事)가 우리나라에 와서 <span style="color:red">《황화집》을 지었는데 그중 한강(漢江) 이라는 제목의 시</span>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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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기쁨)-중국 | *심리(기쁨)-중국 | ||
*인물(장녕) | *인물(장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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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청 문인들의 교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0962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 |
2020년 12월 5일 (토) 21:29 판
初八日,在杭州,是日陰,顧壁來,謂臣曰:“今聽說,將你等事,差人畫夜馳奏北京,直待回報,方放回,自此城至北京,水路幾五千餘里,你留此必多日矣!”臣曰:“我到此,言語有異,實同盲聾,望足下如此聞,隨即開說,以恤遠人.”壁曰:“國法甚嚴,律條甚重,漏泄夷情,新例充軍,凡我所言,不可與人見,只可自知.”點頭而去,有二官人來,云:“都總太監欲試看總兵官所驗點你一張、刀一把”云云,遂收去,有一人來,問曰:“景泰年間,我國給事中官張寧,奉使你國,做〈却金亭詩》《皇華集》,你曉得否?”臣對日:“張給事到我國,著《皇華集》,其中題〈漢江「樓)〉一詩,光搖青雀航,影落白鷗洲,望遠天疑盡,凌虚地欲浮之句,尤稱藉,”其人喜形於色,又云:“張給事致仕在家,家在嘉興府之海縣,距此百里,張公到此杭城,聞朝鮮文士漂海來,欲問朝鮮事,留待累日,前一日回去.”問其人姓名,則乃 王玠,係給事也,有自稱陳梁者來,言曰:“區區會與張寧靖之大人,往你 國回還,”臣曰:“張公位至何官?緣何不在家?”陳曰:“張公官至都給事,後任都御史,因無子不仕,四十二歲,回家養病,
항주에 머물렀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고벽이 와서 신에게 말하기를,
“지금 듣건대 당신들의 일은 사람을 시켜 밤낮으로 달려 북경에 가서 아뢰게 하고 회보(回報)를 받은 뒤에야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이 성에서 북경에 이르기는 수로(水路)[1][2][3][4][5][6]가 거의 5천여 리나 되니, 그대는 이곳에 여러 날 머물러야만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내가 이곳에 도착해서는 언어가 달라 실로 장님이나 귀머거리와 같은데, 족하께서는 지금처럼 듣고 본대로 즉시 얘기 해주어 먼 나라 사람을 돌보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벽은,
“국법이 매우 엄하고 율조(律條)가 아주 무거우니, 이인(夷人)에게 사정을 누설하면 새 법령에는 군호(軍戶)로 충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어서는 안 되고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라 하고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갔습니다.
두 관인이 와서,
“도총태감(都總太監)께서 총병관이 점검한 당신의 활 1장과 칼 1자루를 찾아 살펴보시겠다고 하오”운운하면서 결국 거두어 가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묻기를, “경태(景泰) 연간에 우리나라 급사중(給事中) 벼슬을 한 장녕(張寧)[7]이 귀국에 사신으로 가서 <각금정시(却金亭詩)〉[8][9]를 지어 《황화집(皇華集)》[10][11]에 실렸다는데 알고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장(張) 급사(給事)가 우리나라에 와서 《황화집》을 지었는데 그중 한강(漢江) 이라는 제목의 시에,
“햇빛은 청작(靑雀)배를 흔들고, 그림자 떨어지는 백구(白鷗)의 모래톱. 저 멀리 바라보니 하늘은 끝이 없고, 공중으로 솟구쳐 땅이 문득 뜨려하네”라고 한 글귀는 더욱 칭송이 자자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기쁜 빛을 얼굴에 나타내며 또 말하기를,
“장 급사는 벼슬을 그만 두고 집에 있는데 집이 가흥부(嘉興府)의 해염현(海鹽縣)[12]에 있으므로 이곳과의 거리가 100리입니다. 장공(公)이 이곳 항주성에 도착하여 조선의 문사(文士)가 바다로 표류하여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선의 사정을 묻고자, 여러 날 머물러 기다리다가 하루 전에 돌아갔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성명을 물으니 왕개(王恥, 왕제)였는데, 장 급사의 생질이었습니다.
자칭 진양(陳梁, 천량)이란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변변치 못한 내가 일찍이 정지(靖之) 대인과 함께 당신 나라에 다녀온 적이 있소”라 하였습니다.
신이, “장공은 어느 벼슬까지 하셨으며, 무엇 때문에 벼슬하지 않고 집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장공은 관직이 도급사(都給事)에 이르렀고 후에는 도어사(都御史)[13]에 임명되었는데, 아들이 없기 때문에 벼슬하지 않고 42세에 집으로 돌아와 병을 요양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8th Day. At Hang-chou. This day was cloudy.
Ku Pi came and said to me, “I hear now that a man has been commissioned to hurry night and day to Peking to submit a memorial about you. He will not come back until he has a reply. It is about five thousand li from here to Peking on the waterway; you must stay here for many days.” I said, “In coming here with a different language, I am really like one blind and deaf. I hope that you will tell me things that you have seen and heard like this and pity me as a stranger.” Ku Pi said, “The laws of the country are extremely strict, and the punishments decreed are very severe. A new regulation imposes banishment for divulging information to barbarians. Do not show others any of what I have written; it is only for you to know.” He bowed and left. Two officials came and said, “The Supreme Commanding13 Overseer wants. to see the things examined by the Regional Commander – your bow and sword.” They took them and left. A man came and said, “In the Ching-t’ai reign [1450-1456] Supervising Secretary [Chi-shih-chung kuan] Chang Ning14 of our country was made an envoy to your country and wrote ‘On Leaving Golden Pavilion' and Huang hua chi.15 Do you know about them?” I answered, “Supervising Secretary Chang wrote Huang hua chi when he came to our country. In it, these lines, entitled “The Han River Tower,' were much praised: “Light plays on the boat with the haw-finch bow, As I look into the distance - do I see the end of the world? – I am air-borne; the earth floats under me.” The man's face took on a happy expression, and he said, “Supervising Secretary Chang has retired from office and is at home. His house is in Hai-yen County, Chia-hsing Prefecture, one hundred li from here. When His Excellency Chang came here to Hang-chou and heard that an educated gentleman from Korea had drifted here from across the sea, he wanted to ask about Korea and waited several days, but he went back a day before you arrived." I asked the man's name. It was Wang Chieh, and he was a nephew of the Supervising Secretary. A man who called himself Ch'en Liang came and said, “I went to your country and back with His Excellency Chang Ning [styled] Ching-chih.” I said, “How high did His Excellency Chang rise? Why is he at home and not in office?” Ch'en said, “He rose in office to Chief Supervising Secretary and later was appointed Censor-in-Chief [Tu-yü-shih], but because he had no children he did not take the position. At the age of forty-two he returned home to restore his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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