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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passed [two places) and came to the Shrine of General Shih of the Sung Dynasty.51 The shrine was as big as a public office and had a gate with banners. From the wall of the prefecture to that place was over ten li. In that distance, on both banks of the river, markets and warships were gathered like clouds. After we had passed there, pines, bamboos, and citrus and orange trees lined the banks in groves.
 
We passed [two places) and came to the Shrine of General Shih of the Sung Dynasty.51 The shrine was as big as a public office and had a gate with banners. From the wall of the prefecture to that place was over ten li. In that distance, on both banks of the river, markets and warships were gathered like clouds. After we had passed there, pines, bamboos, and citrus and orange trees lined the banks in gr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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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石將軍廟는 宋의 장군 石守信을 모신 사당으로 城의 서쪽 9리 거리의 望春橋 밖에 있다. 成化《寧波府志》권6, 祀典考.
 
220. 善行을 널리 드러내어 많은 사람이 알고 본받을 수 있도록 함.
 
221.《寶慶四明續志》권2, 郡面에廣利橋記)가 실려 있다.
 
222- 舊名은 夾田으로 慈溪縣 縣治에서 동남 방향으로 3리 거리이다. 驛路 왕래의 요충에 해당된다. 皇祐2년(1057)에 만들어지고, 紹興8년(1138)에 중건되었다. 開禧元年(1205) 知縣 趙希觀이 크게 확충하면서 연호를 따서 改名하였다. 《寶慶四明續志》권16, 慈溪縣志第一敘縣橋梁,
 
223. 後漢 사람으로 焦延壽의 易을 京房으로부터 전수받고 郞博士가 되어 京氏의 학문을 전한 인물.
 
224. 일명 御史橋라고도 하는데 자계현 현치에서 동남 방향으로 45리의 거리에 위치한다. 嘉靖《寧波府志》 권5, 山川; 成化《寧波府志》 권4, 固里考 등 참조.
 
225. 慈銘縣 縣治에서 서남 방향으로 1리 반의 거리에 있다. 원래는 大寶山과 가깝다고 하여 大寶橋라 했는데 開禧2年(1206) 知縣 趙希觀이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明洪武18년(1385)에 重建되었다. 《浙江通志》권35, 關梁三, 慈谿縣.
 
226. 姚縣 縣治의 남쪽에 있다. 潮水가 200여 리를 오르내리지만 강물이 짜지 않다고 한다. 舜江이라고도 한다. 《明一統志》 권45, 紹興府, 山川.
 
227. 府城에서 서쪽으로 60리 떨어진 慈溪縣의 石臺鄕에 위치한다. 元 至元연간에 설치되었다. 成化《寧波府志》권5, 字考; 《浙江通志》 권88, 驛傳上, 慈谿縣 등 참조.
 

2020년 10월 15일 (목) 08:52 판

二月初一日,過慈溪縣,是日雨,經新清橋、進士鄉,至宋石將軍廟,廟大如官府,立雄表之門,自府城至此十餘里間,江之兩岸,市肆艦,全集如雲,過此後,松篁橙橘,夾岸成林,又過茶亭、景安鋪、繼錦鄉、俞氏貞節門,至西鎮橋,橋高大,所過又有二大橋,至西壩廳,壩之兩岸,築堤以石,斷流為壤,使與外江不得相通,兩傍設機械,以竹編為纜,乾舟而過,至西(週)[嶼】鄉“之新堰,堰舊為利子港顏公堰,後塞港廢墟為田,導水東涯,至于廣利橋之南,置此壩,外捍江湖,乾濟官船,謂之新堰,藥與西壩同,至此又乾丹而過,過新橋、開禧橋、姚平處士之墓,至慈溪縣,掉入其中,有經元門、鍾英門、都堂里門、都憲橋、進士門、德星橋、寶峯門, 至臨 清亭前,少停舟,夜又诉江而北,至雞報泊于岸待曙,而問其江,則乃姚江也,江邊有驛,乃車底驛也,驛丞乃秦高也.

자계현(慈溪縣)을 지났습니다.

이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신청교(新淸橋)와 진사향(進士鄕)을 지나서 송(宋)나라 석장군(石將軍)의 사당219에 이르렀습니다.

사당의 크기는 관부(官府)처럼 컸고, 정표(佐表)220하는 문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부성(府城)에서 이곳까지 10여 리 사이에 강의 양쪽 언덕에는 상점과 큰 배가 구름처럼 모여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난 뒤에는 소나무, 대나무, 등자나무, 귤나무가 언덕 좌우에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 다정(茶亭), 경안포(景安鋪), 계금향(繼錦鄕), 유씨정절문(兪氏貞節門)을 지나서 서진교(西鎭橋)에 이르니 다리가 높고 컸습니다.

또 두개의 큰 다리를 지나갔습니다.

서파청(西鬪廳)에 이르니, 방죽의 양쪽 언덕은 돌로 제방을 쌓아, 물을 가로막아 보[堰]를 만들어 바깥 강과는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고, 양쪽 옆에 기계(機械)를 설치하고 대로 만든 새끼로 밧줄을 만들어 배를 당겨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서여향(西嶼鄕)의 신언(新堰)에 이르니, 신언은 옛날 찰자항(刹子港)과 안공언(顔公堰)으로서 후에 찰자항을 막고 안공언을 없애어 전지(田地)를 만들고 물을 끌어 동쪽으로 합류시켜 광리교(廣利橋)의 남쪽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 방죽을 설치하여 밖으로 강호(江湖)를 막고 관선(官船)을 당겨 건너게 하고 이를 신언이라 불렀는데, 대개 서파(西__)와 같았습니다.

이곳에 이르러 또 배를 당겨 지나야 하였습니다.

신교(新橋), 개희교(開禧橋)222, 요평(姚平)223 처사(處士)의 무덤을 지나서 자계현(慈溪縣)에 이르렀습니다.

노를 저어 그 안으로 들어가니 경원문(經元門), 종영문(鍾英門), 도당리문(都堂里門), 도헌교(都憲橋)224, 진사문(進士門), 덕성교(德星 橋)225, 보봉문(寶峯門)이 있었고, 임청정(臨淸亭) 앞에 이르러 배를 잠시 멈추었습니다.

밤에 또 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가서 닭이 울 무렵 언덕에 정박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강 이름을 물으니 바로 요강(姚江)226 이었습니다. 강가에 역(驛)이 있으니 거구역(車廢驛)227이고, 역승(驛丞)은 진고(秦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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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Day, Second Month. Passing Tz'u-ch'i County. This day it rained.

We passed [two places) and came to the Shrine of General Shih of the Sung Dynasty.51 The shrine was as big as a public office and had a gate with banners. From the wall of the prefecture to that place was over ten li. In that distance, on both banks of the river, markets and warships were gathered like clouds. After we had passed there, pines, bamboos, and citrus and orange trees lined the banks in groves. [We went on to Ch'e-chiu S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