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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化二十三年丁未秋九月十七日, 臣以濟州三邑推刷敬差官陛辭而 行至全羅道, 率監司依事目所差光州牧吏程保、和順縣吏金重及承仕郎李楨、羅州隨陪吏孫孝子、靑岩驛吏崔 (臣)(巨]伊山、戶奴萬山等六人及司僕寺安骥崔根等, 歸海南南縣候風, 十一月十一日朝, 與濟州新牧使許熙, 同乘舟于鏡頭梁, 十二日夕到泊濟州朝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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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化二十三年 丁未 秋九月十七日。
  
신(臣)은 [https://trv.kr/15525 제주3읍]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2949 추쇄 경차관(濟州三邑推刷敬差官)]으로서 대궐에서 하직하고 떠나 전라도에 이르러서, 감사(監司)가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뽑아 보낸 [http://gjsgcc.or.kr/ko/22/view?SEQ=5&page=1 광주목(光州牧)]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4401 아전] 정보(程保)<ref>[광주목 출신의 아전으로 전라감사가 뽑아 최부를 보좌하게 했다. 해외문견록: 제주목사 송정규, 바다 건너 경이로운 이야기를 기록하다]</ref>, 화순현(和順縣)의 아전 김중(金重)과 승사랑(承仕郞)17, 이정(李植), 나주(羅州)의 수배리(隨陪吏) 손효자(孫孝子), 청암역리(靑巖驛吏) 최거이산(崔巨伊山), 호노(戶奴) 만산(萬山) 등 6인과 사복시(司僕寺)의 안기(安驥)인 최근(崔根) 등을 거느리고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D%95%B4%EB%82%A8%ED%98%84(%E6%B5%B7%E5%8D%97%E7%B8%A3) 해남현(海南縣)]으로 가서 순풍을 기다렸습니다. 11월 11일 아침에 제주의 신임 목사(牧使)인 [https://www.jeju.go.kr/culture/history/person.htm;jsessionid=vVY1EaTg6Isoajq1fqAF0dKf1W1xmPnFWkkY2HVne1iv9kbTypkHgR3DTaQSlJ4D.was2_servlet_engine7?nameCodeP=&_layout=playout&_view=print&pageSize=10&page=15&act=view&seq=536 허희(許熙)]와 함께 [http://www.hnsori.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3 관두량(館頭梁)]에서 배를 탔습니다. 12일 저녁에 [http://www.labortoday.org/%EC%A0%9C%EC%A3%BC%EC%9D%98-%EA%B4%80%EB%AC%B8-%EC%A0%9C%EC%A3%BC%EC%9D%98-%EA%B4%91%EC%9E%A5-%EC%97%B0%EB%B6%81%EC%A0%95%EA%B3%BC-%EA%B4%80%EB%8D%95%EC%A0%95/ 제주의 조천관(朝天館)]<ref>[https://kenarie.tistory.com/39 제주 조천읍 마을과 연북정]</ref><ref>[http://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030 조천읍, 500여년 전 인연의 만남 '화제', 제민일보, 2013.09.05]</ref>에 도착하여 유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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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以濟州三邑推刷敬差官。 陛辭而行。至全羅道。率監司依事目所差光州牧吏程普,和順縣吏金重及承仕郞李楨,羅州隨陪吏孫孝子,靑巖驛吏崔巨伊山,戶奴萬山等六人及司僕寺安驥,崔根等。歸海南縣候風。十一月十一日朝。與濟州新牧使許煕。同乘舟于館頭梁。十二日夕。到泊濟州朝天館。
  
On the 17th Day, Ninth Month, Ch’êng-hua 23 [October 3, 1487], as a Commissioner of Registers for the three towns of Cheju,4 I took leave of the Court. I went to Cholla Province and gathered six men-Chòng Po, an official under the Prefect of Kwangju; Kim Chung, an official of Hwasun District, who had been sent by the Governor on orders; Appointee Yi Chong; Son Ilyo ja, a secondary official from Naju; Ch’oe Kõisan,*5 an official of Ch’ongam Station; and Mansan, a family slave – as well as Grooms An Ki and Ch'oe Kun. We returned to Haenam District and waited for the wind. On the morning of the 11th Day, Eleventh Month, we shared a ship with Hỏ Hủi, the new Prefect of Cheju, and went to Kwanduryang. On the evening of the 12th Day we reached Choch’on-gwan, Cheju, and la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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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종18년으로, 서기 148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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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red">신(臣)은 [https://trv.kr/15525 제주3읍]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2949 추쇄 경차관(濟州三邑推刷敬差官)]으로서 대궐에서 하직하고 떠나 전라도에 이르러서, 감사(監司)가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뽑아 보낸 [http://gjsgcc.or.kr/ko/22/view?SEQ=5&page=1 광주목(光州牧)]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4401 아전] 정보(程保)<ref>[광주목 출신의 아전으로 전라감사가 뽑아 최부를 보좌하게 했다. 해외문견록: 제주목사 송정규, 바다 건너 경이로운 이야기를 기록하다]</ref>, 화순현(和順縣)의 아전 김중(金重)과 승사랑(承仕郞), 이정(李植), 나주(羅州)의 수배리(隨陪吏) 손효자(孫孝子), 청암역리(靑巖驛吏) 최거이산(崔巨伊山), 호노(戶奴) 만산(萬山) 등 6인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661 사복시(司僕寺)]의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95%88%EA%B8%B0(%E5%AE%89%E9%A9%A5) 안기(安驥)]인 최근(崔根) 등을 거느리고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D%95%B4%EB%82%A8%ED%98%84(%E6%B5%B7%E5%8D%97%E7%B8%A3) 해남현(海南縣)]으로 가서 순풍을 기다렸습니다. 11월 11일 아침에 제주의 신임 목사(牧使)인 [https://www.jeju.go.kr/culture/history/person.htm;jsessionid=vVY1EaTg6Isoajq1fqAF0dKf1W1xmPnFWkkY2HVne1iv9kbTypkHgR3DTaQSlJ4D.was2_servlet_engine7?nameCodeP=&_layout=playout&_view=print&pageSize=10&page=15&act=view&seq=536 허희(許熙)]와 함께 [http://www.hnsori.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3 관두량(館頭梁)]에서 배를 탔습니다. 12일 저녁에 [http://www.labortoday.org/%EC%A0%9C%EC%A3%BC%EC%9D%98-%EA%B4%80%EB%AC%B8-%EC%A0%9C%EC%A3%BC%EC%9D%98-%EA%B4%91%EC%9E%A5-%EC%97%B0%EB%B6%81%EC%A0%95%EA%B3%BC-%EA%B4%80%EB%8D%95%EC%A0%95/ 제주의 조천관(朝天館)]<ref>[https://kenarie.tistory.com/39 제주 조천읍 마을과 연북정]</ref><ref>[http://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030 조천읍, 500여년 전 인연의 만남 '화제', 제민일보, 2013.09.05]</ref></span>에 도착하여 유숙하였습니다.
8. __는 조선시대 지방행정구획의 하나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__어는 행정구획의 단위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道가 州를 대신하는 행정단위가 되면서 州는 행정구획단위에서 지역명칭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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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주도의 濟州牧, 佐義縣, 大靜縣을 가리킨다. 한라산 북쪽이 제주목, 남쪽은 다시 동서로 나누어 동쪽이 정의현, 서쪽이 대정현이다. 《東國輿地勝覽》권38, 濟州牧, 佐義縣, 大靜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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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原籍地에서 이탈한 자를 찾아내어 송환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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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선시대 各道의 지방행정을 감찰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하는 臨時官으로 문관 가운데 堂下官이 임명되었다. 임무는 倭意 대책 등 군사적인 것에서부터 田穀의 손실 조사 등 경제적 임무, 救荒 등 災民의 구휼적 임무, 獄事·推刷·推과 같은 사법적 임무 등으로 크게 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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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조선시대 各道의 장관인 觀察使의 다른 명칭이다. 外官職 문관의 종2품 벼슬로 13道에 각기 1명씩 두었는데, 兵馬節度使·水軍節度使의 武官職을 대체로 겸하고 있었 다. 중요한 정사에 대해서는 중앙의 명령을 따라 시행하였지만, 관할 道의 民政, 軍政, 財政, 刑政 등을 통할하여 지방행정상 큰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관하의 守令을 지휘하고 감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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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公事의 처리에 관한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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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17th Day, Ninth Month, Ch’êng-hua 23 [October 3, 1487], as a Commissioner of Registers for the three towns of Cheju, I took leave of the Court. I went to Cholla Province and gathered six men-Chòng Po, an official under the Prefect of Kwangju; Kim Chung, an official of Hwasun District, who had been sent by the Governor on orders; Appointee Yi Chong; Son Ilyo ja, a secondary official from Naju; Ch’oe Kõisan,*5 an official of Ch’ongam Station; and Mansan, a family slave – as well as Grooms An Ki and Ch'oe Kun. We returned to Haenam District and waited for the wind. On the morning of the 11th Day, Eleventh Month, we shared a ship with Hỏ Hủi, the new Prefect of Cheju, and went to Kwanduryang. On the evening of the 12th Day we reached Choch’on-gwan, Cheju, and landed.  
14. 牧은 조선시대의 道 즉 觀察使 소관의 지방행정구역의 하나이다. 留守府의 다음 가는 등급으로 大都護府와 더불어 州府郡縣의 명칭등급에서 3등급에 속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에 3명, 충청도에 4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4명, 황해도에 2명, 강원도에 1명, 함경도에 1명, 평안도에 2명 등 모두 20명의 牧使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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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朝鮮成宗實錄》19년 6월 丁巳. 성종은 표류했다가 돌아 온 정보 등 42인에게 음식을 내리고, 허상리 등 18인에게 綿布와 正布 각 2필씩을 상으로 내렸다는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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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縣은 조선시대 지방행정 단위의 하나이다. 고려의 제도를 참작하여 大縣에는 縣令, 小縣에는 縣監을 두었는데, 현의 총수는 164개였다. 縣의 제도는 고종32년(1895) 官制改革 때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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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조선시대의 관직으로 종8품의 東班官階이다. 관직으로는 氷庫, 義賢庫의 別檢과 內需司의 典穀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寺, , , , , 庫에 배치된 奉事가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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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행하며 시중을 드는 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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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驛吏는 驛站에 딸린 吏屬으로 王命의 전달, 稅와 貢物 등 官物의 수송, 사신 왕래와 使行에 따른 迎送 및 支供 등의 役을 세습적으로 부담하였다. 역리는 일반 향리보다 낮은 신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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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化二十三年丁未秋九月十七日
20.조선시대의 관청으로 궁중의 乘輿, 馬匹, 牧場 등을 관장하였다. 태종5년(1405)에 兵曹의 屬衙門이 되었고, 成宗 때《經國大典》에 정3품 아문의 관청으로 편제되었다. 관원은 正(정3품), 副正(종3품), 僉正(종4품), 判官(종5품) 각 1명, 主簿(종6품) 2명, 잡직으로 馬醫 10명, 安驥, 調驥, 理驥, 保驥 각 1명, 牽馬 10명 등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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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司僕寺의 雜職 최고인인 종6품의 관직명으로, 말의 조련이나 치료와 보양 등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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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以济州三邑推刷敬差官陛辞而行,至全罗道,率监司依事目所差光州牧吏程保、和顺县吏金重及承仕郎李桢、罗州随陪吏孙孝子、青岩驿吏崔巨伊山、户奴万山等六人及司仆寺安骥、崔根等,归海南县候风。十一月十一日
22. 조선시대의 지방관직으로 觀察使 밑에서 牧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外職 [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13-CKD-1240001&dataID=00011543@AKS-2013-CKD-1240001_DIC 문관]이다. 牧은 큰 道 내지 중요한 곳에 두었는데, 왕실과 연관된 지방은 작더라도 牧으로 승격시킨 경우도 있다. 23. 許熙는 昆陽 출신으로 世祖13년(1467)에는 都摠使 李浚 밑에서 軍官으로 있었다. 成宗3년(1472)에는 右道水軍僉節制使로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잘 검찰하지 못한 과오로 慶尙道敬差官 金春卿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10년(1479)에 通政大夫行定州牧使에 제수되었고, 11년(1480)에는 團鍊使가 되어 중국 사신의 송환을 맡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平安道 백성들을 착취하였다. 또한 돌아오는 길에는 遼東官人의 말을 듣지 않아, 오랑캐에게 변을 당해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 이 일로 탄핵을 받기도 했다. 18년(1487)에 通政大夫濟州牧使가 되었으며, 19년에는 奔喪하는 崔溥에게 튼튼한 배를 구해주어 살아 돌아올 수 있게 한 공이 인정되어 성종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22년(1491)에는 北征軍에 右將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허희가 최부에게 튼튼한 배를 구해 준 공로는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907006_001 《朝鮮成宗實錄》 19년 7월 丁卯條]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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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주를 왕래하는 배는 전라남도 海南縣에서 남쪽 41리에 있는 관두산 기슭에 정박하는데, 관두량은 그 포구를 가리킨다. 관두량은 ‘관머릿도’의 漢字 차용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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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与济州新牧使许熙同乘舟于馆头梁。十二日夕 到泊济州朝天馆。
25. 제주에서 동쪽으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포구로서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배는 이곳에서 순풍을 기다렸고, 전라도를 경유하여 제주도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모두 이곳과 涯月浦에 배를 대었다. 《東國輿地勝覽》권38, 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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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주 서쪽 18리 거리의 都近川 西岸에 있는 사찰이다. 한편 李齊賢의 解歌詩에 “도근천에 물 막은 둑이 무너지면 수정사 안도 바다가 되리라 하는 구절이 있다. 《東國輿地勝覽》권38, 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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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제주3읍, 전라도, 광주목(光州牧), 화순현(和順縣), 나주(羅州), 해남현(海南縣), 관두량(館頭梁), 조천관(朝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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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11월 11일 아침, 12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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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관직): 추쇄 경차관, 감사, 아전, 전라감사, 승사랑(承仕郞), 수배리(隨陪吏), 청암역리(靑巖驛吏), 안기(安驥), 목사(牧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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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호노(戶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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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사목(事目)에 의거, 사복시(司僕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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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정보(程保), 김중(金重), 이정(李植), 손효자(孫孝子), 최거이산(崔巨伊山), 만산(萬山), 최근(崔根), 허희(許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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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대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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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2일 (토) 13:14 기준 최신판

成化二十三年 丁未 秋九月十七日。

臣以濟州三邑推刷敬差官。 陛辭而行。至全羅道。率監司依事目所差光州牧吏程普,和順縣吏金重及承仕郞李楨,羅州隨陪吏孫孝子,靑巖驛吏崔巨伊山,戶奴萬山等六人及司僕寺安驥,崔根等。歸海南縣候風。十一月十一日朝。與濟州新牧使許煕。同乘舟于館頭梁。十二日夕。到泊濟州朝天館。



신(臣)은 제주3읍 추쇄 경차관(濟州三邑推刷敬差官)으로서 대궐에서 하직하고 떠나 전라도에 이르러서, 감사(監司)가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뽑아 보낸 광주목(光州牧)아전 정보(程保)[1], 화순현(和順縣)의 아전 김중(金重)과 승사랑(承仕郞), 이정(李植), 나주(羅州)의 수배리(隨陪吏) 손효자(孫孝子), 청암역리(靑巖驛吏) 최거이산(崔巨伊山), 호노(戶奴) 만산(萬山) 등 6인과 사복시(司僕寺)안기(安驥)인 최근(崔根) 등을 거느리고 해남현(海南縣)으로 가서 순풍을 기다렸습니다. 11월 11일 아침에 제주의 신임 목사(牧使)인 허희(許熙)와 함께 관두량(館頭梁)에서 배를 탔습니다. 12일 저녁에 제주의 조천관(朝天館)[2][3]에 도착하여 유숙하였습니다.




On the 17th Day, Ninth Month, Ch’êng-hua 23 [October 3, 1487], as a Commissioner of Registers for the three towns of Cheju, I took leave of the Court. I went to Cholla Province and gathered six men-Chòng Po, an official under the Prefect of Kwangju; Kim Chung, an official of Hwasun District, who had been sent by the Governor on orders; Appointee Yi Chong; Son Ilyo ja, a secondary official from Naju; Ch’oe Kõisan,*5 an official of Ch’ongam Station; and Mansan, a family slave – as well as Grooms An Ki and Ch'oe Kun. We returned to Haenam District and waited for the wind. On the morning of the 11th Day, Eleventh Month, we shared a ship with Hỏ Hủi, the new Prefect of Cheju, and went to Kwanduryang. On the evening of the 12th Day we reached Choch’on-gwan, Cheju, and landed.




成化二十三年丁未秋九月十七日

臣以济州三邑推刷敬差官陛辞而行,至全罗道,率监司依事目所差光州牧吏程保、和顺县吏金重及承仕郎李桢、罗州随陪吏孙孝子、青岩驿吏崔巨伊山、户奴万山等六人及司仆寺安骥、崔根等,归海南县候风。十一月十一日

朝,与济州新牧使许熙同乘舟于馆头梁。十二日夕 到泊济州朝天馆。




  • 지명: 제주3읍, 전라도, 광주목(光州牧), 화순현(和順縣), 나주(羅州), 해남현(海南縣), 관두량(館頭梁), 조천관(朝天館)
  • 시간: 11월 11일 아침, 12일 저녁,
  • 제도(관직): 추쇄 경차관, 감사, 아전, 전라감사, 승사랑(承仕郞), 수배리(隨陪吏), 청암역리(靑巖驛吏), 안기(安驥), 목사(牧使)
  • 호칭: 호노(戶奴)
  • 행정: 사목(事目)에 의거, 사복시(司僕寺),
  • 인명: 정보(程保), 김중(金重), 이정(李植), 손효자(孫孝子), 최거이산(崔巨伊山), 만산(萬山), 최근(崔根), 허희(許熙)
  • 건축물: 대궐



  1. [광주목 출신의 아전으로 전라감사가 뽑아 최부를 보좌하게 했다. 해외문견록: 제주목사 송정규, 바다 건너 경이로운 이야기를 기록하다]
  2. 제주 조천읍 마을과 연북정
  3. 조천읍, 500여년 전 인연의 만남 '화제', 제민일보, 201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