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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十六日,過吳江縣,至蘇州府,是日陰,手牽舟平望河,過迎恩門、安德橋、大石橋、長老鋪、野湖、(鴛鴦)【驚阳湖,湖岸石築堰,可十餘里.又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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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日,過吳江縣,至蘇州府,是日陰,手牽舟平望河,過迎恩門、安德橋、大石橋、長老鋪、野湖、(鴛鴦)【驚阳湖,湖岸石築堰,可十餘里.又過吳江湖石塘、大浦橋、徹浦橋,至九里石塘,塘限太湖,太湖即《禹貢》震澤底定,周職方楊州戴日具區是也,或謂之“五湖,以其長五百餘里故名,范蠡所遊處也,湖中有洞庭東·西兩山,一名营山,一日千里,崇嚴疊陽,點綴於浩渺間,湖之東北有靈岩山下瞰焉,一名硯石山,即吳築館娃於石者此也,山去姑蘇山十里,山勢連續,抱太湖,湖北又有一山,望之渺茫,乃橫山也,至太湖壩,壩石築跨湖之南北,可五十餘里,即垂虹橋,虹門無慮四百餘穴,窄窄相續,其大者,若木莊、萬頃等橋也,循太湖壩而北,過龍王廟、太湖廟、視門,門前有大塔,塔十四層,層皆架屋,望之若登天梯,又過駐節門,至松陵驛,小停舟而過,過恩榮門、會元門、都室造士門、進士門、譽髦門、儒學、大明橋、登科門,所謂大湖壩,又通跨驛前里開中,直抵吳江縣,其間又有石大橋,虹門凡七十餘穴,驛與縣皆在大湖之中,屋舍壯麗,下鋪礎砌,上建石柱,以營湖水紫迴,橋帆束立於闇闇之中,所謂四面漁家繞縣城者此也,掉過三里橋、迎恩蓋,尹山湖而上,問西望一山,則乃絲子山,其北有山,即姑蘇山也,松江在尹山湖之東,又掉過尹山鋪、尹山橋,左有造舟作浮橋,可三里許,至寶帶橋,橋又有虹門五十五穴,正舟車往來之衝,跨(詹)【灣】臺湖,湖山饒景,望若橫帶,即應博所重建也,夜三更,傍蘇州城東南而西,至姑蘇驛前,自寶帶橋至此驛,兩岸市店相接,商舶禁集,真所謂東南南一都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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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吳江縣。至蘇州府。是日陰。牽舟遡平望河。過迎恩門,安德橋,大石橋,長老鋪,野湖,鴛鴦湖。湖岸石築堰。可十餘里。又過吳江湖,石塘,大浦橋,徹浦橋。至九里石塘,塘限太湖。太湖。卽禹貢震澤底定。周職方揚州藪曰具區是也。或謂之五湖。以其長五百餘里故名。范蠡所遊處也。湖中有洞庭,東西兩山。一名苞山。一目千里。崇巖疊隝。點綴於浩渺間。湖之東北。有靈岩山下瞰焉。一名硯石山。卽吳築館娃於硯石者此也。山去姑蘇山十里。山勢連續抱太湖。湖北又有一山。望之渺茫。乃橫山也。至太湖壩。壩石築跨湖之南北。可五十餘里。卽垂虹橋。虹門無慮四百餘穴。窄窄相續。其大者。若木莊,萬頃等橋也。循太湖壩而北。過龍王廟,太湖廟,祝聖門。門前有大塔。塔十四層。層皆架屋。望之若登天梯。又過駐節門。至松陵驛小停舟而過。過恩榮門,會元門,都室造士門,進士門,譽髦門,儒學大明橋,登科門。所謂太湖壩又通跨驛前里閈中。直抵吳江縣。其間又有石大橋虹門凡七十餘穴。驛與縣皆在太湖之中。屋舍壯麗。下鋪礎砌。上建石柱以營。湖水縈廻。檣帆束立於閭閻之中。所謂四面漁家繞縣城者此也。棹過三里橋,迎恩菴。泝尹山湖而上。問西望一山。則乃絲子山。其北有山。卽姑蘇山也。松江在尹山湖之東。又棹過尹山鋪,尹山橋。左有造舟作浮橋。可三里許。至寶帶橋。橋又有虹門五十五穴。正舟車往來之衝。跨儋臺湖。湖山饒景。望若橫帶。卽鄒應博所重建也。夜三更。傍蘇州城東而南而西。至姑蘇驛前。自寶帶橋至此驛。兩岸市店相接。商舶輳集。眞所謂東南一都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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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현(吳江縣)을 지나 소주부(蘇州府)에 도착하였습니다.
 
오강현(吳江縣)을 지나 소주부(蘇州府)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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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언덕에 제방을 돌로 쌓았는데 10여 리 정도 되었습니다.  
 
호수가 언덕에 제방을 돌로 쌓았는데 10여 리 정도 되었습니다.  
  
또 오강호(吳江湖)의 석당(石塘)·대포교(大浦橋)·철포교(徹浦橋)를 지나서 구리석당(九里石塘)174에 이르니, 석당(石塘)은 태호(太湖)를 가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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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강호(吳江湖)의 석당(石塘)·대포교(大浦橋)·철포교(徹浦橋)를 지나서 구리석당(九里石塘)이르니, 석당(石塘)은 태호(太湖)를 가두고 있었습니다.  
  
 
태호는 곧 <우공(禹貢)>의 '진택(震澤)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곳과 《주례(周禮)》의 〈직방(職方)〉에 '양주(楊州)의 호수를 구구(具區)'라 한다'는 곳이 '''이곳'''입니다.  
 
태호는 곧 <우공(禹貢)>의 '진택(震澤)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곳과 《주례(周禮)》의 〈직방(職方)〉에 '양주(楊州)의 호수를 구구(具區)'라 한다'는 곳이 '''이곳'''입니다.  
  
* 하는 하왕조. 중국 최초의 왕조. 華 혹은 華夏라고 하는 것은 하왕조의 夏자에서 연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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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오호(五湖)'라고도 부르는데 그 길이가 500여 리가 되는 까닭에 '''이름 지어진 것'''으로 범려(范義)가 '''노닐던 곳'''입니다.
* 14대 17명의 임금. 400년 동안 지속. BC 2183부터 1752까지.
 
* 하의 역사로는 우공, 감서, 오자지가, 윤정 등.
 
* 회수(淮水)와 바다 사이에 양주(揚州)가 있다. 팽려 호수에 이미 물이 모여 흐르니 양조(=기러기)가 살게 되었다. 세 개의 강줄기가 이미 바다로 들어가니 진택이 안정되게 되었다.
 
* 여기서 진택이 태호다.
 
* 주례 직방이 양주의 수택을 구구라고 하였다. 주례 운운 구구도 태호.
 
 
 
어떤 이는 '오호(五湖)'라고도 부르는데 그 길이가 500여 리가 되는 까닭에 '''이름 지어진 것'''으로 범려(范義)가 '''노닐던 곳'''입니다. 179
 
  
호수 안에 동정동산(洞庭東山)과 동정서산(洞庭西山) 두 산이 있는데 '포산(__山)'이라고도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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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안에 동정동산(洞庭東山)과 동정서산(洞庭西山) 두 산이 있는데 '포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눈앞이 천리나 되었고, 높은 바위와 첩첩한 계곡이 광활한 물 사이에 점을 찍은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눈앞이 천리나 되었고, 높은 바위와 첩첩한 계곡이 광활한 물 사이에 점을 찍은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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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 방죽에 이르니 방죽은 돌로 쌓은 것으로서 호수의 남북으로 가로질러 있었습니다.  
 
태호 방죽에 이르니 방죽은 돌로 쌓은 것으로서 호수의 남북으로 가로질러 있었습니다.  
  
*태호는 옛날에는 바다였으나 양자강 어귀의 삼각주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담수호다. 섬이 48개 있고 산봉우리가 72개 있어서 태호 72峯으로 불린다. 山外유산 湖中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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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리쯤 가니 곧 수홍교(垂虹橋)였는데 홍문은 400여 개의 구멍이 촘촘히 서로 잇따라 있었습니다. 그 큰 것으로는 목장교(木莊橋)·만경교(萬頌橋) 등과 같은 다리가 있었습니다.
*가흥-->오강-->소주-->무석-->상주
 
*태호 주위로 합여성, 월성유적지, 수나라 대운하, 당나라 보대교, 송나라 자금암, 원나라 천지석옥.
 
*55개의 홍문으로 이어진 보대교 317미터의 중국 최장의 석교, 현존.
 
*太湖石: 정원석으로 인기. 이화원, 열하의 피서 산장에도.
 
*태호석 때문에 반란. 송나라 휘종. 축산조원하는 취미.
 
*채경이라는 간신. 蔡京
 
*채경은 주면을 불러 나무와 암석 수집 시작.
 
*화석강. 강이란 지역에서 거둬들인 물건을 운반하는 선단을 의미.
 
*양지가 운반책임자.
 
*생일선문운반조직, 생진강.
 
*과정 1120년 방랍의 난 발생.
 
*1121 평정.
 
*1127 금나라에 의해 개봉 함락. 휘종, 흠종 포로.
 
*휘종의 9남. 조구가 난징으로 도망. 남송 건립.
 
*방랍의 난 진압, 한세충.
 
*농민출신 악비
 
*태호석이 수호지 만듦.
 
 
 
50여 리쯤 가니 곧 수홍교(垂虹橋)였는데 홍문은 400여 개의 구멍이 촘촘히 서로 잇따라 있었습니다. 그 큰 것으로는 목장교(木莊橋)·만경교(萬頌橋)84 등과 같은 다리가 있었습니다.
 
  
태호방죽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용왕묘(龍王廟)·태호묘(太湖廟)185 · 축성문(祝聖門)을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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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방죽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용왕묘(龍王廟)·태호묘(太湖廟) · 축성문(祝聖門)을 지났습니다.  
  
축성문(祝聖門) 앞에 큰 탑이 있었는데, 탑은 14층으로서 층마다 모두 지붕을 얽었으므로, 이를 바라다보니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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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문(祝聖門) 앞에 큰 탑이 있었는데, 탑은 14층으로서 층마다 모두 지붕을 얽었으므로, 이를 바라다보니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 같았습니다.'''
  
 
또 주절문(駐節門)을 지나서 송릉역(松陵驛)에 이르러 배를 잠시 멈추었다가 지나갔습니다.  
 
또 주절문(駐節門)을 지나서 송릉역(松陵驛)에 이르러 배를 잠시 멈추었다가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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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태호방죽은 또 역 앞의 마을 가운데를 통해서 바로 오강현(吳江縣)에 이어졌는데, 그 사이에 또 돌로 만든 큰 다리가 있어 홍문이 모두 70여 구멍이나 되었습니다.  
 
이른바 태호방죽은 또 역 앞의 마을 가운데를 통해서 바로 오강현(吳江縣)에 이어졌는데, 그 사이에 또 돌로 만든 큰 다리가 있어 홍문이 모두 70여 구멍이나 되었습니다.  
  
역과 현이 모두 태호의 섬 안에 있었으며, 옥사(屋舍)가 웅장하고 화려했는데, 아래에 주춧돌을 놓고 위에 돌기둥을 세워 호수를 둘러싸 돛대가 여염(__) 속에 나뭇단처럼 서 있었으니, 이른바 "사면으로 어가(漁家)가 현성을 둘렀다"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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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과 현이 모두 태호의 섬 안에 있었으며, 옥사(屋舍)가 웅장하고 화려했는데, 아래에 주춧돌을 놓고 위에 돌기둥을 세워 호수를 둘러싸 돛대가 여염 속에 나뭇단처럼 서 있었으니, 이른바 "사면으로 어가(漁家)가 현성을 둘렀다"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노를 저어 삼리교(三里橋), 영은암(迎恩養)을 지나 윤산호(尹山湖)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노를 저어 삼리교(三里橋), 영은암(迎恩養)을 지나 윤산호(尹山湖)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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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 바라다 보이는 한 산을 물으니 사자산(絲子山)이었습니다.  
 
서쪽에 바라다 보이는 한 산을 물으니 사자산(絲子山)이었습니다.  
  
그 북쪽에 산이 있었으니 고소산(姑蘇山)189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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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북쪽에 산이 있었으니 고소산(姑蘇山)이었습니다.  
  
 
송강(松江)은 윤산호(尹山湖)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송강(松江)은 윤산호(尹山湖)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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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노를 저어 윤산포(尹山鋪), 윤산교(尹山橋)를 지나가니, 왼쪽에 배로 만든 부교(浮橋)가 있었는데 3리 정도 되었습니다.  
 
또 노를 저어 윤산포(尹山鋪), 윤산교(尹山橋)를 지나가니, 왼쪽에 배로 만든 부교(浮橋)가 있었는데 3리 정도 되었습니다.  
  
보대교(寶帶橋)에 이르니 다리에는 또 홍문 55개192가 있어 배와 수레가 왕래하는 요충이었으며, 담대호(濬臺湖)193 건너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경치는 바라보면 허리띠를 두른 것과 같았으니 바로 추응박(鄒應博)이 다시 세운 것이었습니다.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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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대교(寶帶橋)에 이르니 다리에는 또 홍문 55개가 있어 배와 수레가 왕래하는 요충이었으며, 담대호(濬臺湖) 건너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경치는 바라보면 '''허리띠를 두른 것과 같았으니''' 바로 추응박(鄒應博)이 다시 세운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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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3경에 소주성 동쪽에 가까이 가서 남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 고소역(姑蘇驛) 앞에 이르렀습니다.
  
밤 3경에 소주성 동쪽에 가까이 가서 남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 고소역(姑蘇驛)195 앞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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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대교에서 이 역에 이르기까지의 양쪽 언덕에 시점(市店)이 서로 잇닿아 있고 상선(商船)이 한 곳으로 몰려드니 '''참으로 이른바 동남방의 큰 도시였습니다.'''
  
보대교에서 이 역에 이르기까지의 양쪽 언덕에 시점(市店)이 서로 잇닿아 있고 상선(商船)이 한 곳으로 몰려드니 참으로 이른바 동남방의 큰 도시였습니다.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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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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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고사
 
*언어(어원)
 
*풍경
 
*건축
 
*경제
 
  
 
16th Day. Passing Wu-chiang County and arriving at Su-chou Prefecture. This day was cloudy.
 
16th Day. Passing Wu-chiang County and arriving at Su-chou Prefecture. This day was clo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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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we followed alongside the Su-chou Wall, east, south, and then west, and arrived in front of Ku-su Station. From Pao tai Bridge to that station, shops and markets one after another lined both river banks, and merchant junks were crowded together. It was well called an urban center of the southeast.
 
In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we followed alongside the Su-chou Wall, east, south, and then west, and arrived in front of Ku-su Station. From Pao tai Bridge to that station, shops and markets one after another lined both river banks, and merchant junks were crowded together. It was well called an urban center of the southeast.
  
174. 乾隆《吳江縣志》권6, 塘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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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禹貢)의 원문은 “三江旣入, 震澤底定”으로 ‘三江이 흘러 들어가니 진택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뜻이다. 진택은 호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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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 구절은 《周禮》에도 나오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書經》의 주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具區는 震澤 곧 太湖를 뜻한다. 원문은 “揚州藪曰具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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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國語》〈越語)와 《史記》〈河渠書〉 등에 의하면 五湖는 처음에는 太湖를 지칭하였던 듯한데, 후일에는 太湖 유역 일대의 모든 호수를 범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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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춘추시대 말기의 정치가로 자는 少伯이다. 楚나라 사람이나 나라에 들어가 上將軍이 되었다. 越王 句踐이 吳나라에 패한 뒤 그는 대부 文鍾과 함께 월왕을 도와 초나라를 멸망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兎死狗烹의 화를 염려하여 스스로 관직을 떠났으 며, 이후 장사를 시작해 큰 돈을 벌었다. 일설에는 그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오왕의 애첩인 西施를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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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六日
179.《李太白集注》권32의 〈雜言寄李白〉에 “莊周萬物外, 范◇五湖間”이란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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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包山 혹은 洞庭山이라고도 한다. 한편 포산은 동정서산만 지칭하기도 한다. 光緖《蘇州府志》권6, 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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过吴江县至苏州府。是日阴。牵舟溯平望河,过迎恩门、安德桥、大石桥、长老铺、野湖、鸳鸯湖。湖岸石筑,堰可十余里。又过吴江湖、石塘、大浦桥、彻浦桥,至九里石塘,塘限太湖。太湖即《禹贡》“震泽底定”——“周职方扬州薮曰‘具区’”是也。或谓之“五湖”,以其长五百余里故名,范蠡所游处也。湖中有洞庭东西两山,一名苞山,一目千里,崇岩迭坞,点缀于浩渺间——湖之东北有灵岩山,下瞰焉;一名砚石山,即吴筑馆娃于砚石者此也。山去姑苏山十里,山势连续,抱太湖。湖北又有一山,望之渺茫,乃横山也。至太湖坝,坝石筑,跨湖之南北。可五十余里,即垂虹桥,虹门无虑四百余穴,窄窄相续,其大者若木庄、万顷等桥也。循太湖坝而北,过龙王庙、太湖庙、祀圣门,门前有大塔,塔十四层,层皆架屋,望之若登天梯。又过驻节门至松陵驿,少停舟而过。过恩荣门、会元门、都室造士门、进士门、誉髦门、儒学大明桥、登科门。所谓太湖坝,又通跨驿前里闬中,直抵吴江县。其间又有石大桥,虹门凡七十余穴。驿与县皆在太湖之中,屋舍壮丽,下铺础砌,上建石柱,以营湖水萦回,樯帆束立于闾阎之中,所谓“四面渔家绕县城”者此也。棹过三里桥、迎恩庵,溯尹山湖而上。问西望一山,则乃丝子山。其北有山,即姑苏山也。松江在尹山湖之东。又棹过尹山铺、尹山桥,左有造舟作浮桥,可三里许,至宝带桥。桥又有虹门五十五穴,正舟车往来之冲,跨儋台湖,湖山饶景,望若横带,即邹应博所重建也。夜三更,傍苏州城东而南而西,至姑苏驿前。自宝带桥至此驿,两岸市店相接,商舶辏集,真所谓东南一都会也。
181. 古名은 石鼓山, 《吳郡志》권15 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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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春秋時代 吳의 宮名으로 吳王 夫差가 연석산에 궁을 만들어 西施에게 살도록 했다. 오에서는 미녀를 娃라고 했기 때문에 館娃'라고 한 것이다. 이상 《吳郡志》 권8, 古蹟; 권 15,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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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홍문은 실제로 7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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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石 위에 있는데 元 至正 연간에 창건되고 明永樂연간에 重修되었다. 弘治《吳江志》 권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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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太湖의 神을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宋 大中祥符 연간에 창건되었다. 乾隆《吳江縣권7, 壇廟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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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송대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洪武元年(1368)에 學宮 즉 江南儒學의 동쪽으로 옮겼다. 光緖《蘇州府志》 권23, 公署3; 弘治《吳江志》 권4, 官字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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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187.《方輿勝覽》권2에 의하면 이 시는 李貴의 吳江縣詩에 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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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188.北門 밖의 倉場 좌측에 있다. 元 泰定원년(1324)에 창건되었다가 무너진 뒤 天順6년(1462)에 重建되었다. 弘治《吳江志》 권5, 橋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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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189. 府治에서 서쪽으로 30리의 거리에 있는데 橫山의 서북과 접해 있다. 일명 姑骨 혹은 姑餘라고도 한다. 光緖《蘇州府志》권6, 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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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190. 吳江縣의 東門 밖에 있는데 일명 松陵으로 바로 吳淞江을 지칭한다. 光緖《蘇州府志》 권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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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장소)
191. 隆慶《寶應縣志》권3, 建置, 鋪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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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어원)
192. 홍문은 실제로 53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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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93. 원문에는 ‘隋臺湖'로 되어 있으나, 澹臺湖'의 誤記로 보인다. 隆慶長洲縣志》권10 水部, 城外運河에 의하면 澹臺湖는 長洲縣 南西界 太湖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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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194. 寶帶橋는 남북으로 30여 文 길이로 隨臺湖에 걸쳐 있다. 그 명칭은 唐의 王仲舒가 | 寶帶를 풀어헤치고 공사를 도운 데서 유래한다. 宋 紹定5년(1232) 郡守 鄒應博이 重建하였다. 《吳都文粹續集》권35, 橋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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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195. 姑蘇水馬驛의 약칭으로 吳縣 胥門 밖에 있다. 宋 紹興14년(1144)에 건립되었는데 | 웅장하고 화려하여 三吳의 으뜸이라고 한다. 光緖《蘇州府志》 권23, 公署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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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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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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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하왕조. 중국 최초의 왕조. 華 혹은 華夏라고 하는 것은 하왕조의 夏자에서 연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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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대 17명의 임금. 400년 동안 지속. BC 2183부터 1752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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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의 역사로는 우공, 감서, 오자지가, 윤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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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淮水)와 바다 사이에 양주(揚州)가 있다. 팽려 호수에 이미 물이 모여 흐르니 양조(=기러기)가 살게 되었다. 세 개의 강줄기가 이미 바다로 들어가니 진택이 안정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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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진택이 태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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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례 직방이 양주의 수택을 구구라고 하였다. 주례 운운 구구도 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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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는 옛날에는 바다였으나 양자강 어귀의 삼각주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담수호다. 섬이 48개 있고 산봉우리가 72개 있어서 태호 72峯으로 불린다. 山外유산 湖中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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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흥-->오강-->소주-->무석-->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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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 주위로 합여성, 월성유적지, 수나라 대운하, 당나라 보대교, 송나라 자금암, 원나라 천지석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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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개의 홍문으로 이어진 보대교 317미터의 중국 최장의 석교,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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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太湖石: 정원석으로 인기. 이화원, 열하의 피서 산장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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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석 때문에 반란. 송나라 휘종. 축산조원하는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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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경이라는 간신. 蔡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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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경은 주면을 불러 나무와 암석 수집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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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강. 강이란 지역에서 거둬들인 물건을 운반하는 선단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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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가 운반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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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선문운반조직, 생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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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 1120년 방랍의 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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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1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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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7 금나라에 의해 개봉 함락. 휘종, 흠종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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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종의 9남. 조구가 난징으로 도망. 남송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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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랍의 난 진압, 한세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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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출신 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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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석이 수호지 만듦.

2020년 12월 13일 (일) 13:10 기준 최신판

過吳江縣。至蘇州府。是日陰。牽舟遡平望河。過迎恩門,安德橋,大石橋,長老鋪,野湖,鴛鴦湖。湖岸石築堰。可十餘里。又過吳江湖,石塘,大浦橋,徹浦橋。至九里石塘,塘限太湖。太湖。卽禹貢震澤底定。周職方揚州藪曰具區是也。或謂之五湖。以其長五百餘里故名。范蠡所遊處也。湖中有洞庭,東西兩山。一名苞山。一目千里。崇巖疊隝。點綴於浩渺間。湖之東北。有靈岩山下瞰焉。一名硯石山。卽吳築館娃於硯石者此也。山去姑蘇山十里。山勢連續抱太湖。湖北又有一山。望之渺茫。乃橫山也。至太湖壩。壩石築跨湖之南北。可五十餘里。卽垂虹橋。虹門無慮四百餘穴。窄窄相續。其大者。若木莊,萬頃等橋也。循太湖壩而北。過龍王廟,太湖廟,祝聖門。門前有大塔。塔十四層。層皆架屋。望之若登天梯。又過駐節門。至松陵驛小停舟而過。過恩榮門,會元門,都室造士門,進士門,譽髦門,儒學大明橋,登科門。所謂太湖壩又通跨驛前里閈中。直抵吳江縣。其間又有石大橋虹門凡七十餘穴。驛與縣皆在太湖之中。屋舍壯麗。下鋪礎砌。上建石柱以營。湖水縈廻。檣帆束立於閭閻之中。所謂四面漁家繞縣城者此也。棹過三里橋,迎恩菴。泝尹山湖而上。問西望一山。則乃絲子山。其北有山。卽姑蘇山也。松江在尹山湖之東。又棹過尹山鋪,尹山橋。左有造舟作浮橋。可三里許。至寶帶橋。橋又有虹門五十五穴。正舟車往來之衝。跨儋臺湖。湖山饒景。望若橫帶。卽鄒應博所重建也。夜三更。傍蘇州城東而南而西。至姑蘇驛前。自寶帶橋至此驛。兩岸市店相接。商舶輳集。眞所謂東南一都會也。



오강현(吳江縣)을 지나 소주부(蘇州府)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배를 당겨 평망하(平望河)를 거슬러 올라가서 영은문(迎恩門)·안덕교(安德橋) · 대석교(大石橋)·장로포(長老鋪) - 야호(野湖)·앵두호(陰虛湖)를 지났습니다.

호수가 언덕에 제방을 돌로 쌓았는데 10여 리 정도 되었습니다.

또 오강호(吳江湖)의 석당(石塘)·대포교(大浦橋)·철포교(徹浦橋)를 지나서 구리석당(九里石塘)에 이르니, 석당(石塘)은 태호(太湖)를 가두고 있었습니다.

태호는 곧 <우공(禹貢)>의 '진택(震澤)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곳과 《주례(周禮)》의 〈직방(職方)〉에 '양주(楊州)의 호수를 구구(具區)'라 한다'는 곳이 이곳입니다.

어떤 이는 '오호(五湖)'라고도 부르는데 그 길이가 500여 리가 되는 까닭에 이름 지어진 것으로 범려(范義)가 노닐던 곳입니다.

호수 안에 동정동산(洞庭東山)과 동정서산(洞庭西山) 두 산이 있는데 '포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눈앞이 천리나 되었고, 높은 바위와 첩첩한 계곡이 광활한 물 사이에 점을 찍은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호수의 동북방에 영암산(靈岩山)이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연석산(視石山)'이라고도 불렀으니, 곧 오나라에서 관와궁(館娃宮)을 연석산에 건축한 곳이 이곳입니다.

연석산은 고소산(姑蘇山)과의 거리가 10리인데, 산세가 서로 이어져 태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태호의 북쪽에는 또 산 하나가 있었는데, 이를 바라보면 한없이 넓어 아득했으니 바로 횡산(橫山)이었습니다.

태호 방죽에 이르니 방죽은 돌로 쌓은 것으로서 호수의 남북으로 가로질러 있었습니다.

50여 리쯤 가니 곧 수홍교(垂虹橋)였는데 홍문은 400여 개의 구멍이 촘촘히 서로 잇따라 있었습니다. 그 큰 것으로는 목장교(木莊橋)·만경교(萬頌橋) 등과 같은 다리가 있었습니다.

태호방죽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용왕묘(龍王廟)·태호묘(太湖廟) · 축성문(祝聖門)을 지났습니다.

축성문(祝聖門) 앞에 큰 탑이 있었는데, 탑은 14층으로서 층마다 모두 지붕을 얽었으므로, 이를 바라다보니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 같았습니다.

또 주절문(駐節門)을 지나서 송릉역(松陵驛)에 이르러 배를 잠시 멈추었다가 지나갔습니다.

은영문(恩榮門)·회원문(會元門)·도실조사문(都室造士門)·진사문(進士)·예모문(譽聖門)·유학(儒學)·대명교(大明橋) · 등과문(登科門)을 거쳤습니다.

이른바 태호방죽은 또 역 앞의 마을 가운데를 통해서 바로 오강현(吳江縣)에 이어졌는데, 그 사이에 또 돌로 만든 큰 다리가 있어 홍문이 모두 70여 구멍이나 되었습니다.

역과 현이 모두 태호의 섬 안에 있었으며, 옥사(屋舍)가 웅장하고 화려했는데, 아래에 주춧돌을 놓고 위에 돌기둥을 세워 호수를 둘러싸 돛대가 여염 속에 나뭇단처럼 서 있었으니, 이른바 "사면으로 어가(漁家)가 현성을 둘렀다"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노를 저어 삼리교(三里橋), 영은암(迎恩養)을 지나 윤산호(尹山湖)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서쪽에 바라다 보이는 한 산을 물으니 사자산(絲子山)이었습니다.

그 북쪽에 산이 있었으니 고소산(姑蘇山)이었습니다.

송강(松江)은 윤산호(尹山湖)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또 노를 저어 윤산포(尹山鋪), 윤산교(尹山橋)를 지나가니, 왼쪽에 배로 만든 부교(浮橋)가 있었는데 3리 정도 되었습니다.

보대교(寶帶橋)에 이르니 다리에는 또 홍문 55개가 있어 배와 수레가 왕래하는 요충이었으며, 담대호(濬臺湖) 건너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경치는 바라보면 허리띠를 두른 것과 같았으니 바로 추응박(鄒應博)이 다시 세운 것이었습니다.

밤 3경에 소주성 동쪽에 가까이 가서 남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 고소역(姑蘇驛) 앞에 이르렀습니다.

보대교에서 이 역에 이르기까지의 양쪽 언덕에 시점(市店)이 서로 잇닿아 있고 상선(商船)이 한 곳으로 몰려드니 참으로 이른바 동남방의 큰 도시였습니다.




16th Day. Passing Wu-chiang County and arriving at Su-chou Prefecture. This day was cloudy.

The boats were towed up the P'ing-wang River, past [bridges, lakes, and other landmarks), and came to Chiu-li Stone Dike. The embankment bounded Lake T'ai. Lake T'ai is the lake of which it is said in Yü kung, “And it became possible to still the marsh of Chen” [Legge, III:110], and is called in the Chou (Chih-fang, Yang-chou-sou), “Chü-ch’ü.” Some call it Five Lakes; it is so named because it is over five hundred li long. 46 It is a place that Fan Li47 used to visit. In the lake are two mountains, Tung-t’ing East Mountain and Tung-t'ing West Mountain. They are also called Pao Mountain. From them, one can see for a thousand li. Their lofty cliffs rise up in ranges, ornaments on the vast expanse of water. Northeast of the lake, Ling-yen Mountain looks down on it. Another name for it is Yen-shih Mountain. It is the Yen-shih on which Wu built Kuan-wa.48 The mountain is ten li from Ku-su Mountain. Mountains lie in ranges, cradling Lake T'ai. In the north there is also a single mountain vaguely visible in the distance. It is Mt. Heng. We came to Lake T'ai Embankment, which was built of stone and straddled the lake north to south for over fifty li. It was Ch’ui-hung Bridge, 49 with at least four hundred arches, one slender one after another. In size it was like such bridges as Mu-chuang and Wan-ch’ing. Going north along Lake T'ai Embankment, we passed Lung-wang Shrine, Lake T'ai Shrine, and Chusheng Gate, in front of which was a great pagoda of fourteen stories. All the stories had rooms, and it looked like a ladder rising into the sky. We passed Chu-chieh Gate and came to Sung-ling Station. We stopped the boats a little while and then went on, past [six gates, a school and a bridge). Lake T'ai Embankment passed along village gates in front of the station and extended to Wu-chiang County. Along that part, too, was a large stone bridge, with more than seventy arches altogether. Both the station and the county were in Lake T'ai. The houses were beautiful, with stone plinths and well walls laid below and stone columns erected above. The lake water wound in and about them, and masts and sails stood grouped in the villages. It is there of which it has been said, “On all sides fishermen's houses wind round the county wall.” We went from San-li Bridge to Pao-tai Bridge, another great bridge] of fifty-five arches, a crossroads of boat and wheel traffic spanning Lake Tant'ai like a sash spread across the rich scenery of the lake and mountains. It had been rebuilt by Tsou Ying-po.50 In the third watch of the night, we followed alongside the Su-chou Wall, east, south, and then west, and arrived in front of Ku-su Station. From Pao tai Bridge to that station, shops and markets one after another lined both river banks, and merchant junks were crowded together. It was well called an urban center of the southeast.




十六日

过吴江县至苏州府。是日阴。牵舟溯平望河,过迎恩门、安德桥、大石桥、长老铺、野湖、鸳鸯湖。湖岸石筑,堰可十余里。又过吴江湖、石塘、大浦桥、彻浦桥,至九里石塘,塘限太湖。太湖即《禹贡》“震泽底定”——“周职方扬州薮曰‘具区’”是也。或谓之“五湖”,以其长五百余里故名,范蠡所游处也。湖中有洞庭东西两山,一名苞山,一目千里,崇岩迭坞,点缀于浩渺间——湖之东北有灵岩山,下瞰焉;一名砚石山,即吴筑馆娃于砚石者此也。山去姑苏山十里,山势连续,抱太湖。湖北又有一山,望之渺茫,乃横山也。至太湖坝,坝石筑,跨湖之南北。可五十余里,即垂虹桥,虹门无虑四百余穴,窄窄相续,其大者若木庄、万顷等桥也。循太湖坝而北,过龙王庙、太湖庙、祀圣门,门前有大塔,塔十四层,层皆架屋,望之若登天梯。又过驻节门至松陵驿,少停舟而过。过恩荣门、会元门、都室造士门、进士门、誉髦门、儒学大明桥、登科门。所谓太湖坝,又通跨驿前里闬中,直抵吴江县。其间又有石大桥,虹门凡七十余穴。驿与县皆在太湖之中,屋舍壮丽,下铺础砌,上建石柱,以营湖水萦回,樯帆束立于闾阎之中,所谓“四面渔家绕县城”者此也。棹过三里桥、迎恩庵,溯尹山湖而上。问西望一山,则乃丝子山。其北有山,即姑苏山也。松江在尹山湖之东。又棹过尹山铺、尹山桥,左有造舟作浮桥,可三里许,至宝带桥。桥又有虹门五十五穴,正舟车往来之冲,跨儋台湖,湖山饶景,望若横带,即邹应博所重建也。夜三更,傍苏州城东而南而西,至姑苏驿前。自宝带桥至此驿,两岸市店相接,商舶辏集,真所谓东南一都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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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는 하왕조. 중국 최초의 왕조. 華 혹은 華夏라고 하는 것은 하왕조의 夏자에서 연유함.
  • 14대 17명의 임금. 400년 동안 지속. BC 2183부터 1752까지.
  • 하의 역사로는 우공, 감서, 오자지가, 윤정 등.
  • 회수(淮水)와 바다 사이에 양주(揚州)가 있다. 팽려 호수에 이미 물이 모여 흐르니 양조(=기러기)가 살게 되었다. 세 개의 강줄기가 이미 바다로 들어가니 진택이 안정되게 되었다.
  • 여기서 진택이 태호다.
  • 주례 직방이 양주의 수택을 구구라고 하였다. 주례 운운 구구도 태호.
  • 태호는 옛날에는 바다였으나 양자강 어귀의 삼각주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담수호다. 섬이 48개 있고 산봉우리가 72개 있어서 태호 72峯으로 불린다. 山外유산 湖中유호.
  • 가흥-->오강-->소주-->무석-->상주
  • 태호 주위로 합여성, 월성유적지, 수나라 대운하, 당나라 보대교, 송나라 자금암, 원나라 천지석옥.
  • 55개의 홍문으로 이어진 보대교 317미터의 중국 최장의 석교, 현존.
  • 太湖石: 정원석으로 인기. 이화원, 열하의 피서 산장에도.
  • 태호석 때문에 반란. 송나라 휘종. 축산조원하는 취미.
  • 채경이라는 간신. 蔡京
  • 채경은 주면을 불러 나무와 암석 수집 시작.
  • 화석강. 강이란 지역에서 거둬들인 물건을 운반하는 선단을 의미.
  • 양지가 운반책임자.
  • 생일선문운반조직, 생진강.
  • 과정 1120년 방랍의 난 발생.
  • 1121 평정.
  • 1127 금나라에 의해 개봉 함락. 휘종, 흠종 포로.
  • 휘종의 9남. 조구가 난징으로 도망. 남송 건립.
  • 방랍의 난 진압, 한세충.
  • 농민출신 악비
  • 태호석이 수호지 만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