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pattern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初四日,至撫寧衛,是日晴,過東關遞運所,至聽槽河,河之北岸,有大石如槽,號為石槽,該傳唐張果飼聽之器,又過國家鋪、十八里鋪、雙望鋪、儀...)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初四日,至撫寧衛,是日晴,過東關遞運所,至聽槽河,河之北岸,有大石如槽,號為石槽,該傳唐張果飼聽之器,又過國家鋪、十八里鋪、雙望鋪、儀院嶺鋪、蘆宰口鋪、讓消鋪,至陽河,河源出列陀山,經撫
+
至撫寧衛。是日晴。過東關遞運所。至驢槽河。河之北岸。有大石如槽。號爲石槽。諺傳唐張果飼驢之器。又過國家鋪,十八里鋪,雙望鋪,儀院嶺鋪,蘆峯口鋪,▼(艹/(氵+弓))▼(艹/淥)鋪。至陽河。河源出列陀山。經撫寧縣城西八里許。又過民壯敎場門。入撫寧縣城西門。過關王廟。寓于撫寧衛。兔耳,鏵子,大崇,連峯諸山。圍城之南北。治西有西關遞運所。
p.446
+
----
寧縣城西八里許,又過民壯教場門,入撫寧縣城西門,過關王廟,寓于撫寧衛,兔耳、罐子、大崇、連宰諸山,圍城之南北,治西有西關遞運所,
+
 
  
 
무녕위(撫寧衛)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녕위(撫寧衛)에 도착하였습니다.
11번째 줄: 11번째 줄:
 
여조하의 북쪽 언덕에는 구유 같은 큰돌이 있는데, 석조(石槽)라 호칭하였습니다.  
 
여조하의 북쪽 언덕에는 구유 같은 큰돌이 있는데, 석조(石槽)라 호칭하였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당나라 장과(張果)165가 당나귀를 먹이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당나라 장과(張果)당나귀를 먹이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국가포(國家), 십팔리포(十八里鋪), 쌍망포(雙望鋪), 의원령포(儀院嶺鋪), 노봉구포(盧峯口鋪), 녹궁포(遠遠鋪)를 지나서 양하(陽河)에 이르렀는데, 양하의 원류는 열타산(列陀山)에서 나옵니다.  
+
또 국가포(國家), 십팔리포(十八里鋪), 쌍망포(雙望鋪), 의원령포(儀院嶺鋪), 노봉구포(盧峯口鋪), 녹궁포를 지나서 양하(陽河)에 이르렀는데, 양하의 원류는 열타산(列陀山)에서 나옵니다.  
  
 
무녕현성(撫寧縣城) 서쪽을 8리가량 지났습니다.  
 
무녕현성(撫寧縣城) 서쪽을 8리가량 지났습니다.  
19번째 줄: 19번째 줄:
 
또 민장교장문(民壯敎場門)을 거쳐서 무령현성의 서문으로 들어가 관왕묘(關王廟)를 지나서 무령위에 유숙하였습니다.
 
또 민장교장문(民壯敎場門)을 거쳐서 무령현성의 서문으로 들어가 관왕묘(關王廟)를 지나서 무령위에 유숙하였습니다.
  
토이산(兔耳山)168, 화자산(罐子山), 대숭산(大崇山), 연봉산(連峯山)169 등 여러 산들이 성의 남북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치소의 서쪽에 서관체운소(西關遞運所)가 있었습니다.
+
토이산(兔耳山), 화자산(罐子山), 대숭산(大崇山), 연봉산(連峯山) 등 여러 산들이 성의 남북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치소의 서쪽에 서관체운소(西關遞運所)가 있었습니다.
 +
 
 +
 
 +
----
 +
 
  
 
4th Day. Arrival at Fu-ning Garrison. This day was fair.
 
4th Day. Arrival at Fu-ning Garrison. This day was fair.
  
 
[We went from Tung-kuan Transfer Station to Fu-ning Garrison and stopped there.]
 
[We went from Tung-kuan Transfer Station to Fu-ning Garrison and stopped there.]
 +
 +
 +
----
 +
 +
 +
初四日
 +
 +
至抚宁卫。是日晴。过东关递运所至驴槽河。河之北岸有大石如槽,号为石槽,谚传唐张果饲驴之器。又过国家铺、十八里铺、双望铺、仪院岭铺、芦峰口铺、芎菉铺至阳河,河源出列陀山。经抚宁县城西八里许,又过民壮教场门,入抚宁县城西门。过关王庙,寓于抚宁卫。兔耳、铧子、大崇、连峰诸山,围城之南北。治西有西关递运所。
 +
 +
 +
----
 +
  
 
*기후
 
*기후
*인명
 
 
*지명
 
*지명
 
*지리
 
*지리
*동물
 
 
*언어(어원)
 
*언어(어원)
 +
*인명
 
*역사
 
*역사
 
+
*고증
165. 속칭 張果老라고 하며, 唐代의 인물이다. 도교 8의 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中條山에 은거하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에게 長生의 비술이 있다고 하였고, 스스로 수 백세라고 하였다. 일찍이 武則天의 부름을 거절하였다. 開元22년(734)에 玄宗이 洛 陽의 궁중에 불러들여 후한 예우를 하고는 治道와 신선의 일을 물었다. 銀靑光祿大夫의 직함과 通玄先生이란 호칭을 내렸으며, 은거하는 곳에 棲霞觀을 지어 주었다. 
+
*동물
166. 康熙《永平府志》권6, 公廨에는 義院嶺背陰鋪가 있어 본문의 儀院嶺鋪의 儀는 義字의 誤記로 보인다.
+
*유학()
167. 康熙《永平府志》권6, 公廨에 盧峯口鋪에서 10리 거리에 綠灣鋪가 있는데 본문의 遠消鋪가 이를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
 
168. 撫寧縣治의 서쪽에 있는 산으로서 두 개의 봉우리가 토끼의 귀처럼 솟아올라 耳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康熙《撫寧縣志》 권2, 地理.
 
169. 撫寧縣治에서 동남 방향으로 30리 거리의 聯峰山을 지칭하는 듯하다. 그 속명은 蓮峰山이다. 康熙《撫寧縣志》 권2, 地理.
 

2020년 12월 12일 (토) 01:01 기준 최신판

至撫寧衛。是日晴。過東關遞運所。至驢槽河。河之北岸。有大石如槽。號爲石槽。諺傳唐張果飼驢之器。又過國家鋪,十八里鋪,雙望鋪,儀院嶺鋪,蘆峯口鋪,▼(艹/(氵+弓))▼(艹/淥)鋪。至陽河。河源出列陀山。經撫寧縣城西八里許。又過民壯敎場門。入撫寧縣城西門。過關王廟。寓于撫寧衛。兔耳,鏵子,大崇,連峯諸山。圍城之南北。治西有西關遞運所。



무녕위(撫寧衛)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동관체운소(東關遞運所)를 지나서 여조하(驪槽河)에 이르렀습니다.

여조하의 북쪽 언덕에는 구유 같은 큰돌이 있는데, 석조(石槽)라 호칭하였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당나라 장과(張果)가 당나귀를 먹이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국가포(國家), 십팔리포(十八里鋪), 쌍망포(雙望鋪), 의원령포(儀院嶺鋪), 노봉구포(盧峯口鋪), 녹궁포를 지나서 양하(陽河)에 이르렀는데, 양하의 원류는 열타산(列陀山)에서 나옵니다.

무녕현성(撫寧縣城) 서쪽을 8리가량 지났습니다.

또 민장교장문(民壯敎場門)을 거쳐서 무령현성의 서문으로 들어가 관왕묘(關王廟)를 지나서 무령위에 유숙하였습니다.

토이산(兔耳山), 화자산(罐子山), 대숭산(大崇山), 연봉산(連峯山) 등 여러 산들이 성의 남북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치소의 서쪽에 서관체운소(西關遞運所)가 있었습니다.




4th Day. Arrival at Fu-ning Garrison. This day was fair.

[We went from Tung-kuan Transfer Station to Fu-ning Garrison and stopped there.]




初四日

至抚宁卫。是日晴。过东关递运所至驴槽河。河之北岸有大石如槽,号为石槽,谚传唐张果饲驴之器。又过国家铺、十八里铺、双望铺、仪院岭铺、芦峰口铺、芎菉铺至阳河,河源出列陀山。经抚宁县城西八里许,又过民壮教场门,入抚宁县城西门。过关王庙,寓于抚宁卫。兔耳、铧子、大崇、连峰诸山,围城之南北。治西有西关递运所。




  • 기후
  • 지명
  • 지리
  • 언어(어원)
  • 인명
  • 역사
  • 고증
  • 동물
  • 유학(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