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남악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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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의 이전 논의는 1993년에 시작되었다. 1993년 4월 7일 전남도청 이전 특위 구성에 대한 도의회 동의안이 가결되었고 이어서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통해 “도청을 옮기고 현 청사를 5·18기념관으로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예산 지원도 약속하였다. 5·18 해법 차원에서 도청 이전 방침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도청 이전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졌다. ‘도청을 내 고장에’ 를 목표로 유치경쟁이 치열했다.20) 전남도는 전남발전연구원에 의뢰, 같은 해 12월 21일 이한빈 전 부총리 등 각계 권위자 30여 명의 검토 끝에 표결로 목포권인 전남 무안군 삼향면 일대를 선정해 발 표하고 전라남도의회에 동의를 요청하였다.21) 도청 이전은 지방 자치법에 따라 도지사가 내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은 뒤 전남도의회의 의결을 거 쳐야 확정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나주, 장흥 등 끝까지 후보지 경합을 벌였던 지역 주민들은 무안 이전에 여전히 반대하였고, 광주-전남 통합론을 주장하면서 도청을 그대로 광주에 두자는 의견도 끊 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들어와 ‘도청은 목포’, ‘엑스포는 여수’로 가닥을 잡았고, 지리한 논란 속에 6 년여를 끌어온 전남도청 이전 문제는 6월 30일, 마지막 관문인 도의회를 통과했다.22) 도청 이전은 정 치적으로 지역적으로 얽히고설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였다. 이 문제를 풀어 원안대로 목 포에 인접한 무안군 삼향면으로 옮기게 된 것 역시 김대중 정부가 있어 가능했던 일 중 하나였다. 1999년 7월 도청 이전 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였고, 이어서 2000년 3월 남악신도시 마스터플랜 확정, 2001년 12월 21일 도청사 착공, 2005년 11월 11일 개청하였다. 전남의 행정 중심이 개도(開 道) 109년 만에 ‘광주시대’를 끝내고 ‘무안시대’, ‘신도청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