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말레이시아-이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mokpo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참고 자료)
1번째 줄: 1번째 줄:
{{해외사례
 
|사진=
 
|사진출처=
 
|지역=동남아시아
 
|나라=말레시아
 
|영어=Ipoh
 
|한글=이포
 
|인구=657,892
 
|항구=X
 
|유네스코=X
 
|식민지=영국(1786~1957), 일본(1941-1945)
 
|건조물=19세기후반~20세기
 
}}
 
  
==요약==
+
==지역 소개==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Ipoh Ipoh]"
+
*지명 : Ipoh(페락주의 주도)
"Originally a village, Ipoh began to grow rapidly in the 1880s after huge deposits of tin were discovered within its vicinity. By 1895, it was the second largest town within the Federated Malay States, which also consisted of Selangor, Negeri Sembilan and Pahang. Ipoh was declared a city in 1988. However, following the depletion of its tin deposits and the collapse of tin prices in the 1970s, the city suffered decades of decline and neglect.
+
*인구 : 657,892(말레시아의 4번째 큰 도시)
 +
*면적 : 643km2
  
In recent years, Ipoh's popularity as a tourist destination has been significantly boosted by efforts to conserve its British colonial-era architecture. The city is also well known for its cuisine and natural attractions, such as its limestone hills and caves within which Buddhist temples were built. In addition, Ipoh has managed to maintain its reputation as one of the cleanest cities in Malaysia."
+
원래 작은 마을이었던 이포는 1880년대에 주변 킨타강 유역에서 거대한 양의 주석 퇴적물이 발견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1892년에 대화재로 마을의 절반 이상이 소실되면서 이포를 보다 체계적으로 도시 재개발할 기회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크게 성공한 하카 출신 광부 Yau Tet Shin은 1905년과 1914년 사이에 킨타강 건너편으로 마을을 확장했다. 1908년까지 그는 이포의 신도시에 216채의 집을 지었다. 이포는 이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양철광업 붐의 결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시 말레시아가 영국 식민지여서 많은 서양식 건물들이 건립되었으며 중국인을 비록한 많은 사람들이 이포로 들어오면서 다문화도시가 되었다. 1941년 12월 15일에 일제가 쳐들어와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제시대 때 페락주의 주도가 되었고 1942년 3월부터 1912년에 건립된 남성 기독교 학교인 '성 미카엘 학당(St. Michael's Institution)이 페락주에 있는 일본 행정부의 본부가 되었다. 해방 이후 이포가 페락의 주도로 남았다. 그러나 1970년대 주석 퇴적물 고갈과 주석 가격 폭락으로 수십 년 동안 쇠퇴와 방치를 겪었다. 최근 10년 동안,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 관광지로서의 이포의 인기는 크게 높아졌다. 이 도시는 또한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석회암 언덕과 불교 사찰이 세워진 동굴과 같은 자연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포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로 유명하다.
 +
 
 +
==사례==
 +
 
 +
===건축물 예시===
 +
 
 +
===활용 사례===
 +
 
 +
===홍보 사례===
  
 
==참고 자료==
 
==참고 자료==
31번째 줄: 27번째 줄:
 
[https://db.ipohworld.org/view/id/3874]
 
[https://db.ipohworld.org/view/id/3874]
 
*[https://db.ipohworld.org/photo/pdf/7213_asfle140520.pdf "Perak Tourism - Ipoh - Where Old Meets New," ''Perak Tourism ''][https://db.ipohworld.org/view/id/7213]
 
*[https://db.ipohworld.org/photo/pdf/7213_asfle140520.pdf "Perak Tourism - Ipoh - Where Old Meets New," ''Perak Tourism ''][https://db.ipohworld.org/view/id/7213]
 +
 +
==주석==
 +
<references/>

2021년 6월 18일 (금) 10:38 판

지역 소개

  • 지명 : Ipoh(페락주의 주도)
  • 인구 : 657,892(말레시아의 4번째 큰 도시)
  • 면적 : 643km2

원래 작은 마을이었던 이포는 1880년대에 주변 킨타강 유역에서 거대한 양의 주석 퇴적물이 발견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1892년에 대화재로 마을의 절반 이상이 소실되면서 이포를 보다 체계적으로 도시 재개발할 기회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크게 성공한 하카 출신 광부 Yau Tet Shin은 1905년과 1914년 사이에 킨타강 건너편으로 마을을 확장했다. 1908년까지 그는 이포의 신도시에 216채의 집을 지었다. 이포는 이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양철광업 붐의 결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시 말레시아가 영국 식민지여서 많은 서양식 건물들이 건립되었으며 중국인을 비록한 많은 사람들이 이포로 들어오면서 다문화도시가 되었다. 1941년 12월 15일에 일제가 쳐들어와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제시대 때 페락주의 주도가 되었고 1942년 3월부터 1912년에 건립된 남성 기독교 학교인 '성 미카엘 학당(St. Michael's Institution)이 페락주에 있는 일본 행정부의 본부가 되었다. 해방 이후 이포가 페락의 주도로 남았다. 그러나 1970년대 주석 퇴적물 고갈과 주석 가격 폭락으로 수십 년 동안 쇠퇴와 방치를 겪었다. 최근 10년 동안,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 관광지로서의 이포의 인기는 크게 높아졌다. 이 도시는 또한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석회암 언덕과 불교 사찰이 세워진 동굴과 같은 자연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포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로 유명하다.

사례

건축물 예시

활용 사례

홍보 사례

참고 자료

[3]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