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mokpo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 후보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만 에 이루어낸 기적 같은 승리였다. 전남도...)
 
(Semantic Network Graph)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6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
__NOTOC__
  
 +
==Definition==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 후보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만
+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1997)]]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 후보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김대중 후보는 10,326,275표(40.3%)를 획득해 9,935,718표(38.7%)를 획득한 이회창 후보를 39만여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만에 이루어낸 기적 같은 승리였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전남도청 앞 분수대 주변에 수백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왔고, 그들의 손에는 ‘드디어 해냈다! 50년만에 정권 교체’등의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길가의 시민들도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목포역에도 마찬가지였다. 역 앞 육교에는 '얼마나 부르고 싶던 이름인가? 김대중 대통령!’이라 쓴 현수막이 내걸렸고 목포 선창가에는 목포의 눈물 합창이 이어졌다.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계의 큰 별이지만, 목포를 비롯한 호남인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 같은 존재였다. 김 대통령의 당선은 지속된 침체를 겪어온 목포 시민들에게 감동 그 자체이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은 목포가 개항을 맞은지 100년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을 게속 누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정부가 물려준 IMF 사태는 그런 기대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IMF 관리 체제라는 경제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김대중 대총령은 취임후 외환위기를 혼신의 노력을 통해 국민과 함께 극복하고 2000년에는 평양을 방문해서 6·15 공동 선언을 이끌어냄으로서 50여 년 동안 지속된 한반도의 냉전을 남북 화해와 평화의 기틀로 바꾸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평생에 걸친 민주화를 위한 공로와 남북평화에 대한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었다.2009년 서거 후, 목포 삼학도에 세워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는 학습의 장, 기념의 공간으로서 목포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ref> 목포시사 1권, 2017</ref>, <ref> 『조선일보』 1997. 12. 19. 「시민들 ‘김대중’ 연호 물결 / 광주 중심가 환호의 눈물」</ref>
이루어낸 기적 같은 승리였다. 전남도청 앞 분수대 주변에 수백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왔고,
+
 
들의 손에는 ‘드디어 해냈다! 50년만에 정권 교체’ 등의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길가의 시민들도  
+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02)
+
==Semantic Data==
목포역에도 마찬가지였다. 역 앞 육교에는 ‘얼마나 부르고 싶던 이름인가? 김대중 대통령!’이라 쓴  
+
 
현수막이 내걸렸다.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
+
===Node Description===
민국의 큰 별이지만, 목포를 비롯한 호남인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 같은 존재였다. 김 대통
+
 
령의 당선은 목포 시민들에게 감동 그 자체였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감동의 순간을 영원히 누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정권만 잡으면 ‘고통 끝, 행복
+
! style="width:100px" |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시작’인줄 알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물려준 IMF 사태는 그런 기대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
|-
IMF 관리 체제라는 경제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행복은 뒷전으로
+
|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 Event || 사건 ||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1997)||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 http://dh.aks.ac.kr/~mokpo/wiki/index.php/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
밀렸다. 목포 시민들은 ‘이 기회에 보다 많은 것을 얻어냈으면……’하다가도 ‘그러다 역풍을 맞아 대
+
|-
통령님이 곤경에 처할까……’우려하였다. 그래서 우리 것 챙기기는 차라리 뒷전이었다. 자신의 이익
+
|}
을 뒤로 할 만큼 대통령의 성공을 바랐다. 김 대통령의 당선으로 인해 그동안의 지역 차별에 대한 한
+
 
풀이를 했고 자존심을 회복했는데, 그걸 분명히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답은 성공한 ‘호남’대통령으로
+
===Additional Attributes===
기억되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이 2001년 8월 23일, IMF 관리 체제를 조기 종료하여 경제를 다시 정상궤도
+
* [[틀:사건정보]]
에 올려놓았다. 혹독한 기업 구조조정과 정부의 자구 노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금 모으기 운동’ 등
+
 
으로 일치·단결하여 극복에 앞장섰던 국민들 덕분이었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김대중 대통령은 삶의 기간 내내 숱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특히 재임기간
+
! propertyName || value
01) 이 글에서는 비교적 일관되게 지역 사정을 전하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주로 활용하였다. 단순 소식을 전하는 기사는 번거로움을 피해 생략
+
|-
하였다.
+
| id ||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02) 『조선일보』 1997. 12. 19. 「시민들 ‘김대중’ 연호 물결 / 광주 중심가 환호의 눈물」.490 제1권 항도 목포
+
|-
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 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해서 6·15 공동 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50
+
|이칭||
여 년 동안 지속된 한반도의 냉전을 남북 화해와 평화의 기틀로 바꾸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
|-
2)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아
+
|유형|| 사건
김대중 대통령 만세, 만세! 김대중 대통령이 노
+
|-
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타전된 2000년 10
+
|설명|| 목포가 낳은 정치인 김대중이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하여 목포 지역민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한 사건
월 13일 오후 6시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 대통령의
+
|-
생가에 모인 고향 사람들은 일제히 만세를 높이 불
+
|시대|| 대한민국
렀다.03)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2월 10일 노
+
|-
르웨이 오슬로에서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
+
|날짜|| 1997년 12월 18일
. 그동안 14번이나 후보로 추천되었었다. 한국
+
|-
인으로서는 첫 노벨상 수상이었다. 패트릭 스미스
+
|관련인물|| [[김대중]], [[이회창]]
(Patrick Smith)는 2003년 1월 말, 미국의 불룸버
+
|-
그(Bloomberg) 통신에서 “수주일 후면 5년의 임기
+
|관련단체||
를 마치는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 정치, 외교 분야에
+
|-
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한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
|관련장소|| 전라남도 목포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하여 성공한 대통령
+
|-
으로 평가하였다.04)
+
|관련유물유적|| [[노벨평화상기념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 ‘한국 현대사의 거
+
|-
목’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2
+
|관련사건|| [[제15대 대통령선거]], [[6.15 선언]],[[외환위기,IMF 관리체제]], [[노벨평화상 수상]]
, 향년 85세로 생을 마치고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
+
|-
장되었다. 당시 장의 위원장이었던 한승수 국무총리
+
|}
는 조사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
+
 
교체를 이뤄 정치 발전의 확고한 기틀을 닦았고, 분
+
===Contextual Relations===
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와
+
 
교류·협력의 길을 열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 한국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03) 『조선일보』 2000. 10. 14. 「하의도 김대통령 생가 표정/ “섬마을서 세계인물 났네”」.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04) 정태영, 『목포발 청춘열차』, 뉴스투데이, 2014, 348쪽.
+
|-
그림 1 노벨평화상 수상소감을 말하는 김대중 대통령(2000년
+
|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 [[제15대대통령선거]]  || [[isRelatedTo]]  || 관련
12월 10일, 김대중도서관)제4편 목포의 역사 491
+
|-
의 위상을 드높인 일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라며 추모하였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된 역사의 현장
+
| [[제15대대통령선거]] || [[김대중]]  || [[isRelatedTo]]  || 당선자
이었다.
+
|-
이처럼 호남인이 대통령이 되어도 얼마든지 나라를 잘 경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호남이
+
| [[김대중]] || [[노벨평화상]]  || [[isRelatedTo]]  || 수상
차별받을 이유가 없는 지역이란 점을 확인해 주었다. 성공한 대통령! 이것만큼 큰 유산은 없을 것이다.
+
|-
3)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억과 기념
+
|}
목포 삼학도에 세워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의
+
 
정신을 계승하는 학습의 장, 기념의 공간으로서 이를 기리는 기억의 장치이자 목포의 자부심을 느끼
+
==Spatial Data==
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2006년 10월 목포시는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목포를 방문했을
+
 
때 삼학도에 노벨 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발표하였다. 이 사업은 2007
+
===Spactial Information Nodes===
년 타당성 조사 및 기본 계획 용역을 완료됐으나 이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답보 상태에 빠졌다. 그
+
 
러나 2009년 10월에 들어서 국비를 확보하고 실시 설계, 유품 수집 등에 진전을 보이며 활기를 띠었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2011년 9월 5일 착공식을 가졌고, 6·15 남북공동선언 13주년인 2013년 6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
!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서거 3주기를 맞아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일대기 창작 공연을 열기도 하였다. 김성옥 연출가가 애
+
|-
니메이션·영상·무용·노래 등을 결합해 만들었다. ‘당신은 우리입니다’라는 주제로 총 3부로 구성되
+
| [[노벨평화상기념관]] || 전라남도 목포시 || 노벨평화상기념관 || 노벨平和賞記念館||34.783060 || 126.392319 || ||삼학도
었다. 온갖 역경을 딛고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세계 평화의 지도자로 업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일
+
|-
대기를 그렸다.05)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은 기념관으로, 일대기 공연으로 다양하게 기억되고 있다. 목
+
|}
포 시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며 여전히 살아 있다.
+
 
사실 역사란 사람들이 쓰는 것이고, 또 만들어 가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을 우리 지역의 훌
+
===Spatial Relations===
륭한 유산으로 만드느냐 여부는 그대로 우리들 하기 나름이다.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등의 수식어가
+
 
말하듯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좌절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다. 칠전팔기의 도전 정신, 지역 차별의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왜곡된 구조 속에서도 호남인이란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승리로 이끈 불굴의 투지, 그런 정신을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계승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
 +
|  ||  ||  || spatial
 +
|-
 +
|}
 +
 
 +
==Temporal Data==
 +
 
 +
===Temporal Information Nodes===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koreanEra || japaneseEra || indexDate || description
 +
|-
 +
|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 ]] || 1997 ||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1997) || 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 || || ||
 +
|-
 +
|}
 +
 
 +
===Temporal Relations===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
|  ||  ||  || temporal
 +
|-
 +
|  ||  ||  || temporal
 +
|-
 +
|}
 +
 
 +
 
 +
==Online Reference==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 type || resource || title || desctription/caption || URL
 +
|-
 +
| 참고 || 목포시사 || 1권 항도목포 || ||  https://www.mokpo.go.kr/www/introduce/current?category_1=1
 +
|-
 +
|}
 +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
 
 +
==Bibliography==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
|}
 +
 
 +
==Notes==
 +
 
 +
<references/>
 +
 
 +
==Semantic Network Graph==
 +
 
 +
{{SemanticGraph | key=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
 
 +
[[분류:Actor]][[분류: 사건]] [[분류:양세영]]

2024년 3월 16일 (토) 19:06 기준 최신판


Definition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1997)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 후보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김대중 후보는 10,326,275표(40.3%)를 획득해 9,935,718표(38.7%)를 획득한 이회창 후보를 39만여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만에 이루어낸 기적 같은 승리였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전남도청 앞 분수대 주변에 수백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왔고, 그들의 손에는 ‘드디어 해냈다! 50년만에 정권 교체’등의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길가의 시민들도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목포역에도 마찬가지였다. 역 앞 육교에는 '얼마나 부르고 싶던 이름인가? 김대중 대통령!’이라 쓴 현수막이 내걸렸고 목포 선창가에는 목포의 눈물 합창이 이어졌다.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계의 큰 별이지만, 목포를 비롯한 호남인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 같은 존재였다. 김 대통령의 당선은 지속된 침체를 겪어온 목포 시민들에게 감동 그 자체이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은 목포가 개항을 맞은지 100년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을 게속 누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전 정부가 물려준 IMF 사태는 그런 기대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IMF 관리 체제라는 경제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김대중 대총령은 취임후 외환위기를 혼신의 노력을 통해 국민과 함께 극복하고 2000년에는 평양을 방문해서 6·15 공동 선언을 이끌어냄으로서 50여 년 동안 지속된 한반도의 냉전을 남북 화해와 평화의 기틀로 바꾸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평생에 걸친 민주화를 위한 공로와 남북평화에 대한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었다.2009년 서거 후, 목포 삼학도에 세워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는 학습의 장, 기념의 공간으로서 목포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1], [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Event 사건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1997)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http://dh.aks.ac.kr/~mokpo/wiki/index.php/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이칭
유형 사건
설명 목포가 낳은 정치인 김대중이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하여 목포 지역민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한 사건
시대 대한민국
날짜 1997년 12월 18일
관련인물 김대중, 이회창
관련단체
관련장소 전라남도 목포시
관련유물유적 노벨평화상기념관
관련사건 제15대 대통령선거, 6.15 선언,외환위기,IMF 관리체제, 노벨평화상 수상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제15대대통령김대중당선 제15대대통령선거 isRelatedTo 관련
제15대대통령선거 김대중 isRelatedTo 당선자
김대중 노벨평화상 isRelatedTo 수상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region label hanja latitude longitude altitue description
노벨평화상기념관 전라남도 목포시 노벨평화상기념관 노벨平和賞記念館 34.783060 126.392319 삼학도

Spati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spatial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timeSpan label hanja koreanEra japaneseEra indexDate description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 1997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당선(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1997) 第15代 大統領 金大中 當選

Tempor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temporal
temporal


Online Reference

type resource title desctription/caption URL
참고 목포시사 1권 항도목포 https://www.mokpo.go.kr/www/introduce/current?category_1=1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Notes

  1. 목포시사 1권, 2017
  2. 『조선일보』 1997. 12. 19. 「시민들 ‘김대중’ 연호 물결 / 광주 중심가 환호의 눈물」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