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당서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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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융당서해(融堂書解)』 20권은 남송 전시(錢時, 1175~1244)의 『상서』 주석서이다. 송대 원본은 전하지 않고, 청 사고관(四庫館)이 『영락대전』에서 집일한 본만 남아 있다.

서지 개요

항목 내용
서명 融堂書解. 가희 2년(1238) 진서장에는 『家塾尚書演義』, 교행간 차자에는 『尚書啓蒙』으로 나옴
권수 20권(사고관이 편차를 고정해 나눔). 『경의고』는 8권으로 기록
저자 錢時. 자 子是, 호 融堂, 엄주(嚴州) 순안(淳安) 사람
성립 1238년 이전 초고 30책 진상. 현행 『융당서해』는 만년 산정본으로 추정됨
전래 원본 일실 → 『영락대전』 각 운(韻)에서 집일
결락 「이훈」·「재재」·「진서」 3편 전편 일실, 「열명」·「여형」 부분 결락
수록 『사고전서』 경부 서류, 『무영전취진판총서』
교상 건륭 45년(1780) 5월, 총찬관 기윤·육석웅·손사의, 총교관 육비지

저자 전시(錢時)

전시는 양간(楊簡)의 문인으로, 육구연 심학 계열에 속한다. 평생 포의로 강학하다가 가희 2년(1238) 좌승상 교행간의 천거로 출사하였다.

  • 학통과 강학. 엄주 순안 사람으로 양간에게 종유하였으며, 교행간 차자에 따르면 양간이 그를 깊이 인정하였다. 원보(袁甫)는 휘주 재임 때, 정지제(鄭之悌)는 엄주 재임 때, 왕강(汪綱)은 소흥부 재임 때 각각 그를 초빙해 군학에서 강학하게 하였다. 원보는 강동제형으로 있을 때 귀계(貴溪)에 상산서원(象山書院)을 세우고 전시를 주강으로 맞았다.
  • 가계. 차자에 따르면, 조부 전학(錢觷)은 북송 말 목주(睦州)의 반란(방랍의 난)과 금군의 절강 침입 때 향병을 모아 막아냈고, 조정이 사당을 세우고 작위를 내렸다.
  • 과거와 출사. 전운사(漕司)의 해시에 합격해 영면해(永免解) 자격을 얻었으나 끝내 급제하지 못하였다. 1238년 5월 교행간의 차자로 적공랑(迪功郎)에 특보되고 비각교감(秘閣校勘)을 받았으며, 뒤에 사관검열(史館檢閱)로 옮겼다.
  • 저술. 『상서연의』(=『융당서해』), 『학시관견』, 『주역석전』, 『사서관견』, 『양한필기』, 『국조편년』, 『춘추대지』, 『관혼기』, 『촉부집』 등이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융당서해』, 『융당사서관견』(13권, 『논어』·『효경』·『대학』·『중용』), 『양한필기』 정도이다. 錢時著作三種:宋元明清哲學類(全二冊)

성립과 전래

이 책은 1238년 조정에 『가숙상서연의』 30책으로 진상되었다. 원·명대에 전본이 끊겼고, 1780년 사고관이 『영락대전』에서 복원하였다.

시기 사건 근거
가희 2년(1238) 5월 10일 교행간이 차자로 전시를 천거하고 저서 진상을 청함. 삼성이 성지를 받들어 "依" 교행간 차자
가희 2년(1238) 9월 권지엄주 만일천(萬一薦)이 저서 100책을 정서해 진상. 그중 『가숙상서연의』 30책 만일천 진서장
전시 만년 산정·개고를 거쳐 『융당서해』로 정착한 것으로 추정 사고 제요
명 영락 연간 『영락대전』에 『융당서해』라는 이름으로 분운(分韻) 수록 사고 제요
원~청초 황진 『일초』, 호광 등 『서경대전』 미인용. 주이존 『경의고』 "未見", 8권으로 기록 사고 제요
건륭 45년(1780) 5월 사고관이 경문 순서대로 집일해 20권으로 편차를 정하고, 차자·진서장 2통을 권두에 수록 사고 제요

두 진상 문서는 명 섭성(葉盛)의 『수동일기(水東日記)』에 전하며, 사고관은 이를 「송진서원차장」으로 권두에 실었다. 같은 책이 차자에서는 『상서계몽』, 진서장에서는 『가숙상서연의』로 불린다. 개고 단계에 따른 명칭 변화로 볼 여지가 있으나, 확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체재와 해석상 특징

전시는 「서서(書序)」를 높여 드러내는 것을 해석의 축으로 삼았고, 편명·편차 문제에서는 송대에 유행한 착간설을 따르지 않았다.

  • 체재. 경문 차례를 따라 주석하되, 매 편 첫머리에 그 편의 대지를 조목조목 밝혔다. 일서(逸書)의 서(序)에 대해서는 『사기』로 시대의 사실을 고증해 편제를 풀이하였다.
  • 고주 활용. 『경전석문』·『사기집해』·『사기색은』에 인용된 마융·정현의 설을 끌어와 뜻을 부연하였다. 한대 고주의 일문(佚文)이 송대 주석 안에 보존된 사례로서도 의미가 있다.
편 전시의 설 성격
「윤정」 희화의 직무 태만 소식(蘇軾)의 설에 근본함 선설 채택
「강고」 강숙의 위(衛) 분봉 시기 성왕 때로 봄. 공안국전을 따름 선설 채택
「강왕지고」 장구성(張九成) 『서설』을 아울러 채택 선설 채택
「태서」 서기(西岐)의 군사에게 고한 글 자득
「목서」 먼 지방의 제후에게 고한 글 자득
「무성」 탈간이 없음. 가운데는 무왕이 군사에게 고한 말, 뒷부분은 사관의 기사(紀事) 착간 개정설 비판
「강고」 첫 절 '周公初基'를 낙읍 경영 전에 강숙을 봉해 은 유민을 진무한 일로 봄. 「낙고」로 옮겨서는 안 됨 착간 개정설 비판

「무성」 개정과 「강고」 첫머리를 「낙고」로 옮기는 설은 북송 이래 제기되어 채침(蔡沈) 『서집전』에 반영되었다. 사고관은 전시가 이런 "同時諸儒之曲說"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학술사적 의의

『융당서해』는 주희·채침 계열이 표준이 되기 전, 남송 『상서』학의 다른 갈래를 보여 주는 자료이다. 특히 양간 문하 심학 계열 학자가 남긴 온전한 『상서』 주석으로서 희소하다.

  • 사고관의 평가. 당대 경학은 주소를 묵수하고, 송유는 새 설을 내다 천착에 빠지기 쉬웠다. 사고관은 전시가 그 사이에서 좋은 설을 가려 따랐다고 보았다. 또 자료 취택은 넓고 정밀하며 의리 수립은 새롭고 확실하니, 송인 경해 가운데 보기 드문 책이라 하였다.
  • 서서관(書序觀)의 대비. 주희는 「서서」의 공자 저작설을 의심했고, 채침 『서집전』은 서를 권말에 따로 모았다. 전시는 반대로 「서서」를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므로, 서서 존폐 논쟁을 살피는 데 직접적인 자료가 된다.
  • 착간설에 대한 입장. 「무성」·「강고」의 착간 개정을 거부한 점은 경문 개정에 신중했던 태도를 보여 준다. 이는 송대 의경(疑經) 풍조와의 거리를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 전시 경학 재구성. 『융당서해』는 『융당사서관견』과 함께 전시 경학을 보여 주는 양대 현존 자료이다. 두 책 모두 『영락대전』 집일본이므로 교감·편차 문제를 함께 다룰 필요가 있다.

판본

현존 판본은 모두 사고관의 『영락대전』 집일본에서 나왔으며, 송간본이나 송대 사본은 전하지 않는다.

판본 비고
『사고전서』본(문연각 등) 권두에 서전제요(1780.5)와 「송진서원차장」 수록
무영전취진판(목활자) 『무영전취진판총서』 수록. 판심에 「融堂書解」·「原劄狀」·「項家達校」. 이 문서의 원본 이미지는 하버드-옌칭도서관 소장본(Google 디지털화)
광아서국 복각 취진판, 광서 25년(1899) 4책, 광주 간행

『영락대전』 잔권 가운데 해당 운이 남아 있으면 집일본의 문자와 대조할 수 있다. 사고전서본과 취진판 사이의 이동(異同)도 교감 대상이다(아래 교감 노트 참조).

원문: 宋進書原劄狀

『융당서해(融堂書解)』
저자 전시(錢時, 1175~1244)
권수 20권
분류 경부(經部) 서류(書類)
성립 남송 가희 2년(1238) 이전
현존본 『영락대전』 집일본(1780)
이미지 판본 무영전취진판, 하버드-옌칭도서관 소장

원본 이미지와 판면 전사

취진판의 판식(행별 글자 배열)대로 전사하였다. 글자는 이미지의 자형을 따랐다.

원본 이미지 판면 전사
原劄狀 제1면
宋進書原劄狀
特進左丞相兼樞密使肅國公喬行簡劄子臣輒有奏
陳仰干天聽臣昨任國子司業日于延見諸生之次聞
嚴州布衣錢時山居讀書理學淹貫嘗從故寶謨閣學
士楊簡遊蓋其深所推許今寶章閣待制袁甫昨任徽
州與故太府丞鄭之悌守嚴州日皆嘗一再禮聘莅講
郡庠遠近士子翕然雲集已而得其講篇其于辨析義
理參錯事物發明疑難有以起人臣是時心已屬之其
後知紹興府汪綱亦嘗延講至郡臣始屬綱求其所著
原劄狀 제2면
之書有論語孝經中庸大學四書管見及尚書啓蒙詩
學管見周易釋傳兩漢筆記國朝編年等作益信其學
之有所本其作兩漢筆記類皆痛漢氏襲秦之弊而尤
反覆致意于後世所以不敢望三代之治又見其學之
為有用臣遂因綱以延其來與之相見而欵扣之見其
氣負才識尤通世務自田里之休戚利病當世之是非
得失莫不詳究而熟知之靖康間其大父觷值睦寇陸
梁金人入浙糾率捍禦幾著奇功朝廷嘗為之立廟封
爵而時亦人物魁岸慷慨激昂有乃祖風不但通詩書
原劄狀 제3면
守陳言而已每念此亦奇士而不使得為世用私竊惜
之比者伏讀國史至真宗皇帝于禁中壁間見穆脩所
作詩句深切歎賞即問侍臣曰有文如此公卿何以不
薦則士之遺逸者固大臣之所當言亦聖主之所樂聞
也時嘗詣漕司文解比歲已該永免而場屋竟不足以
得之其志方將玩聖經以自隱儻今不加收用使之終
老山林則國家有遺而不舉之才大臣有知而不薦之
咎矣臣愚欲望聖慈且與錢時特補迪功郎畀以秘閣
校勘仍乞下時本貫嚴州取所著書繕寫繳進上備乙
原劄狀 제4면
覽如其果有可采則乞次第錄用庶以究其所蘊有補
斯世伏候勅旨五月十日三省同奉聖旨依
朝散大夫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臣萬一薦準
尚書省劄備特進左丞相劄子奏陳嚴州布衣錢時山
居讀書理學淹貫特補迪功郎畀以秘閣校勘行下嚴
州取所著書繕寫繳進上備御覽三省同奉聖旨依劄
付嚴州臣除已恭稟繕寫錢時所著述書計一百册開
具數目如後須至上進者
  家塾尚書演義三十册
原劄狀 제5면
  學詩管見三十册
  周易釋傳二十册
  四書管見八册
  兩漢筆記一十二册
一右件書一百册用黃綾背褙黃羅絹裏夾複五條象
牙牌五面紅茸絛繫綵畫木匣五隻盛貯鍍金鐵鎖並
全謹具狀上進以聞謹進嘉熙二年九月日朝散大夫
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萬一薦上進


교감 노트

앞서 입력한 텍스트(사고전서본 계열)와 취진판 이미지 사이의 이동이다. '于延見'(입력본은 '於延見') 한 곳을 빼면 모두 이체자 차이이며, 문의(文意)가 달라지는 곳은 없다.

위치 입력 텍스트 취진판(이미지)
臣□有奏陳 輙 輒
國子司業日□延見 於 于
故□謨閣 / 今□章閣 寳 寶
□其深所推許 葢 蓋
□近士子 逺 遠
詳□ / □其所蘊 䆒 究
□著奇功 㡬 幾
□功 / 此亦□士 竒 奇
比□已該永免 嵗 歲
以自□ 隠 隱
□功郎(2회) 廸 迪
次第□用 録 錄
其所□ 藴 蘊
伏候□旨 勑㫖 勅旨
聖□(3회) 㫖 旨
萬一薦□尚書省劄 凖 準
□綾背褙 黄 黃
一十二□ 冊 册

표점 원문

《宋進書原劄狀》

(一) 喬行簡劄子

特進、左丞相兼樞密使、肅國公喬行簡劄子:

臣輒有奏陳,仰干天聽。臣昨任國子司業日,于延見諸生之次,聞嚴州布衣錢時,山居讀書,理學淹貫,嘗從故寶謨閣學士楊簡遊,蓋其深所推許。今寶章閣待制袁甫昨任徽州,與故太府丞鄭之悌守嚴州日,皆嘗一再禮聘,莅講郡庠,遠近士子翕然雲集。已而得其講篇,其于辨析義理、參錯事物、發明疑難,有以起人,臣是時心已屬之。其後知紹興府汪綱亦嘗延講至郡,臣始屬綱求其所著之書,有《論語》、《孝經》、《中庸》、《大學》四書管見,及《尚書啓蒙》、《詩學管見》、《周易釋傳》、《兩漢筆記》、《國朝編年》等作,益信其學之有所本。其作《兩漢筆記》,類皆痛漢氏襲秦之弊,而尤反覆致意于後世所以不敢望三代之治,又見其學之為有用。

臣遂因綱以延其來,與之相見而欵扣之。見其氣負才識,尤通世務,自田里之休戚利病,當世之是非得失,莫不詳究而熟知之。靖康間,其大父觷值睦寇陸梁、金人入浙,糾率捍禦,幾著奇功,朝廷嘗為之立廟封爵。而時亦人物魁岸,慷慨激昂,有乃祖風,不但通《詩》、《書》、守陳言而已。每念此亦奇士,而不使得為世用,私竊惜之。

比者伏讀國史,至真宗皇帝于禁中壁間見穆脩所作詩句,深切歎賞,即問侍臣曰:「有文如此,公卿何以不薦?」則士之遺逸者,固大臣之所當言,亦聖主之所樂聞也。時嘗詣漕司文解,比歲已該永免,而場屋竟不足以得之,其志方將玩聖經以自隱。儻今不加收用,使之終老山林,則國家有遺而不舉之才,大臣有知而不薦之咎矣。

臣愚欲望聖慈,且與錢時特補迪功郎,畀以秘閣校勘;仍乞下時本貫嚴州,取所著書繕寫繳進,上備乙覽。如其果有可采,則乞次第錄用,庶以究其所蘊,有補斯世。伏候勅旨。

五月十日,三省同奉聖旨:「依。」

(二) 萬一薦 進書狀

朝散大夫、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臣萬一薦:

準尚書省劄,備特進左丞相劄子奏陳:「嚴州布衣錢時,山居讀書,理學淹貫,特補迪功郎,畀以秘閣校勘,行下嚴州,取所著書繕寫繳進,上備御覽。」三省同奉聖旨:「依。」劄付嚴州。臣除已恭稟繕寫錢時所著述書,計一百册,開具數目如後,須至上進者。

《家塾尚書演義》,三十册;
《學詩管見》,三十册;
《周易釋傳》,二十册;
《四書管見》,八册;
《兩漢筆記》,一十二册。

一、右件書一百册,用黃綾背褙,黃羅絹裏夾複五條,象牙牌五面,紅茸絛繫,綵畫木匣五隻盛貯,鍍金鐵鎖並全。謹具狀上進以聞。謹進。

嘉熙二年九月 日,朝散大夫、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萬一薦上進。

번역문

원문 번역
(1) 교행간의 차자
特進、左丞相兼樞密使、肅國公喬行簡劄子: 특진(特進)·좌승상 겸 추밀사·숙국공(肅國公) 교행간(喬行簡)의 차자(劄子).
臣輒有奏陳,仰干天聽。臣昨任國子司業日,于延見諸生之次,聞嚴州布衣錢時,山居讀書,理學淹貫,嘗從故寶謨閣學士楊簡遊,蓋其深所推許。今寶章閣待制袁甫昨任徽州,與故太府丞鄭之悌守嚴州日,皆嘗一再禮聘,莅講郡庠,遠近士子翕然雲集。已而得其講篇,其于辨析義理、參錯事物、發明疑難,有以起人,臣是時心已屬之。 신이 감히 아뢸 것이 있어 우러러 성청(聖聽)을 번거롭게 합니다. 신이 지난날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있을 때 여러 생도를 접견하던 차에 한 사람에 대해 들었습니다. 엄주(嚴州)의 포의(布衣) 전시(錢時)가 산중에 살며 글을 읽어 이학(理學)에 두루 통달하였고, 일찍이 고(故) 보모각학사(寶謨閣學士) 양간(楊簡)에게 종유하였는데, 양간이 깊이 인정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보장각대제(寶章閣待制) 원보(袁甫)가 전에 휘주(徽州)를 맡았을 때와, 고 태부승(太府丞) 정지제(鄭之悌)가 엄주를 다스릴 때, 두 사람 모두 한두 차례 예를 갖추어 그를 초빙해 군학(郡庠)에서 강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원근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얼마 뒤 그 강론 원고를 얻어 보니, 의리를 변석하고 사물을 견주어 살피며 의심스럽고 어려운 곳을 밝혀내는 데 사람을 일깨우는 힘이 있었습니다. 신은 그때 이미 마음을 그에게 두었습니다.
其後知紹興府汪綱亦嘗延講至郡,臣始屬綱求其所著之書,有《論語》、《孝經》、《中庸》、《大學》四書管見,及《尚書啓蒙》、《詩學管見》、《周易釋傳》、《兩漢筆記》、《國朝編年》等作,益信其學之有所本。其作《兩漢筆記》,類皆痛漢氏襲秦之弊,而尤反覆致意于後世所以不敢望三代之治,又見其學之為有用。 그 뒤 지소흥부(知紹興府) 왕강(汪綱)도 그를 군(郡)으로 맞아 강론하게 하였기에, 신은 비로소 왕강에게 부탁하여 그가 지은 책을 구하였습니다. 『논어』·『효경』·『중용』·『대학』의 사서관견(四書管見)과 『상서계몽(尚書啓蒙)』·『시학관견(詩學管見)』·『주역석전(周易釋傳)』·『양한필기(兩漢筆記)』·『국조편년(國朝編年)』 등의 저작이 있었으니, 그의 학문에 근본한 바가 있음을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은 『양한필기』는 대체로 한나라가 진(秦)의 폐단을 답습한 것을 통렬히 비판하고, 후세가 감히 삼대(三代)의 다스림을 바라지 못하게 된 까닭에 대해 특히 거듭 뜻을 기울였습니다. 이를 보고 그 학문이 실제로 쓸모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臣遂因綱以延其來,與之相見而欵扣之。見其氣負才識,尤通世務,自田里之休戚利病,當世之是非得失,莫不詳究而熟知之。靖康間,其大父觷值睦寇陸梁、金人入浙,糾率捍禦,幾著奇功,朝廷嘗為之立廟封爵。而時亦人物魁岸,慷慨激昂,有乃祖風,不但通《詩》、《書》、守陳言而已。每念此亦奇士,而不使得為世用,私竊惜之。 신은 마침내 왕강을 통해 그를 불러 만나 보고 정성껏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기개와 재주와 식견을 보니 세상일에 더욱 밝아서, 시골 마을의 기쁨과 근심, 이로움과 병폐에서부터 당세의 시비와 득실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궁구하여 익히 알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정강(靖康) 연간에 그의 조부 전학(錢觷)은 목주(睦州)의 도적이 날뛰고 금나라 군대가 절강으로 쳐들어오는 때를 만났습니다. 그는 무리를 규합해 막아내어 거의 기이한 공을 세웠고, 조정은 그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작위를 봉하였습니다. 전시 또한 인물이 헌칠하고 기개가 강개하여 조부의 풍모가 있으니, 『시』·『서』에 통하고 옛말이나 지키는 데 그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또한 기이한 선비인데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속으로 애석히 여겨 왔습니다.
比者伏讀國史,至真宗皇帝于禁中壁間見穆脩所作詩句,深切歎賞,即問侍臣曰:「有文如此,公卿何以不薦?」則士之遺逸者,固大臣之所當言,亦聖主之所樂聞也。時嘗詣漕司文解,比歲已該永免,而場屋竟不足以得之,其志方將玩聖經以自隱。儻今不加收用,使之終老山林,則國家有遺而不舉之才,大臣有知而不薦之咎矣。 근자에 국사(國史)를 엎드려 읽다가 진종(眞宗) 황제의 일화에 이르렀습니다. 진종께서 궁중 벽에서 목수(穆脩)가 지은 시구를 보시고 깊이 감탄하시며, 곧 시신(侍臣)에게 "이와 같은 글이 있는데 공경(公卿)들은 어찌하여 천거하지 않았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초야에 버려진 선비는 진실로 대신이 마땅히 아뢰어야 할 바이고, 성주(聖主)께서도 기꺼이 들으시는 바입니다. 전시는 일찍이 조사(漕司)의 해시(解試)에 나아가 근년에 이미 영면해(永免解)에 해당하게 되었으나, 과장(科場)에서는 끝내 급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성인의 경전을 완미하며 스스로 숨어 지내려 합니다. 만일 지금 거두어 쓰지 않아 그가 산림에서 늙어 생을 마치게 한다면, 국가에는 버려두고 등용하지 않은 인재가 있게 되고, 대신에게는 알면서도 천거하지 않은 허물이 있게 될 것입니다.
臣愚欲望聖慈,且與錢時特補迪功郎,畀以秘閣校勘;仍乞下時本貫嚴州,取所著書繕寫繳進,上備乙覽。如其果有可采,則乞次第錄用,庶以究其所蘊,有補斯世。伏候勅旨。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성자(聖慈)께서 우선 전시를 특별히 적공랑(迪功郎)에 보임하고 비각교감(秘閣校勘)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전시의 본관인 엄주에 명을 내려 그가 지은 책을 정서하여 올리게 하시어 을야(乙夜)의 열람에 대비하시기를 청합니다. 만약 과연 취할 만한 점이 있다면 차례로 녹용(錄用)하시어, 그가 품은 바를 다 펼쳐 이 세상에 보탬이 되게 하소서. 엎드려 칙지(勅旨)를 기다립니다.
五月十日,三省同奉聖旨:「依。」 5월 10일, 삼성(三省)이 함께 성지(聖旨)를 받들었다. "그대로 하라."
(2) 만일천의 진서장(進書狀)
朝散大夫、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臣萬一薦: 조산대부(朝散大夫)·권지엄주군주사 겸 관내권농사(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 신 만일천(萬一薦)이 아룁니다.
準尚書省劄,備特進左丞相劄子奏陳:「嚴州布衣錢時,山居讀書,理學淹貫,特補迪功郎,畀以秘閣校勘,行下嚴州,取所著書繕寫繳進,上備御覽。」三省同奉聖旨:「依。」劄付嚴州。臣除已恭稟繕寫錢時所著述書,計一百册,開具數目如後,須至上進者。 상서성(尚書省)의 차자를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특진 좌승상의 차자가 갖추어 실려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습니다. "엄주 포의 전시는 산중에 살며 글을 읽어 이학에 두루 통달하였으니, 특별히 적공랑에 보임하고 비각교감을 맡기며, 엄주에 명을 내려 그가 지은 책을 정서하여 올려 어람(御覽)에 대비하게 하소서." 삼성이 함께 성지를 받들어 "그대로 하라" 하였으므로, 엄주에 차부(劄付)한 것입니다. 신은 이미 삼가 받들어 전시가 저술한 책을 정서하였으니 모두 100책입니다. 그 목록과 수량을 아래와 같이 갖추어 적어 올려 바칩니다.
《家塾尚書演義》,三十册;
《學詩管見》,三十册;
《周易釋傳》,二十册;
《四書管見》,八册;
《兩漢筆記》,一十二册。
『가숙상서연의(家塾尚書演義)』 30책
『학시관견(學詩管見)』 30책
『주역석전(周易釋傳)』 20책
『사서관견(四書管見)』 8책
『양한필기(兩漢筆記)』 12책
一、右件書一百册,用黃綾背褙,黃羅絹裏夾複五條,象牙牌五面,紅茸絛繫,綵畫木匣五隻盛貯,鍍金鐵鎖並全。謹具狀上進以聞。謹進。 하나. 위의 책 100책은 누런 능(綾)으로 배접하였습니다. 누런 나견(羅絹)으로 안을 댄 겹보자기 5벌과 상아패 5개를 갖추고 붉은 실끈으로 묶어, 채색 그림을 그린 나무상자 5개에 담았으며, 도금한 쇠자물쇠까지 모두 갖추었습니다. 삼가 장(狀)을 갖추어 올려 아룁니다. 삼가 올립니다.
嘉熙二年九月 日,朝散大夫、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萬一薦上進。 가희(嘉熙) 2년(1238) 9월 일, 조산대부·권지엄주군주사 겸 관내권농사 만일천 올림.

용어사전

표제어는 취진판의 자형을 따랐다. 사고전서본 계열의 이체자는 정의란에 병기하였다. '범위'가 '일반'인 항목은 일반 정의이고, '본문'인 항목은 이 텍스트 단위에 한정된 정의이다.

유형 표제어 독음 범위 정의 본문 맥락
Person 喬行簡 교행간 일반 남송 이종(理宗) 때의 재상(1156~1241). 무주(婺州) 동양(東陽) 사람으로 여조겸(呂祖謙)에게 배웠다. 단평·가희 연간에 우승상·좌승상을 지냈고, 가희 3년(1239) 평장군국중사가 되어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혜(文惠). 특진·좌승상 겸 추밀사·숙국공으로서 차자를 올려 전시를 천거한 상주자.
Person 錢時 전시 일반 남송의 학자(1175~1244). 자 자시(子是), 호 융당(融堂), 엄주 순안 사람. 양간에게 배운 육구연 심학 계열 학자로, 원보가 세운 상산서원의 주강을 맡았다. 엄주의 포의로서 천거되어 적공랑에 특보되고 비각교감을 받음. 저서 100책이 정서·진상됨.
Person 楊簡 양간 일반 남송의 학자(1141~1226, 일설 1225). 육구연의 대표적 제자. 자 경중(敬仲), 호 자호(慈湖), 명주 자계 사람. 『자호유서』, 『양씨역전』 등이 있다. '故 寶謨閣學士'. 전시가 종유한 스승으로, 전시를 깊이 인정함.
Person 袁甫 원보 일반 남송의 관료·학자. 자 광미(廣微), 호 몽재(蒙齋), 시호 정숙(正肅), 명주 은현 사람. 원섭(袁燮)의 아들로, 가정 7년(1214)에 장원 급제하였다. 지휘주·지구주를 거쳤고, 강동제점형옥으로 있을 때 상산서원을 세웠다. 생몰년은 1174~1240설과 1179~1257설이 있다. '今 寶章閣待制'. 휘주 재임 때 전시를 예빙하여 강학하게 함.
Person 鄭之悌 정지제 본문 남송의 관료. 태부승을 지냈고 엄주 지주로 재임하였다. '故 太府丞'. 엄주 재임 때 전시를 예빙하여 군학에서 강학하게 함.
Person 汪綱 왕강 일반 남송 영종·이종 때의 문신. 자 중거(仲舉), 휘주 이현(黟縣) 사람. 지소흥부로서 전시를 강학에 초빙함. 교행간이 그를 통해 전시의 저서를 구하고 전시를 만남.
Person 錢觷 전학 본문 전시의 조부(大父). 정강 연간에 목구와 금군을 맞아 무리를 규합해 막아냈고, 조정이 사당을 세우고 작위를 내림(차자 기록). 그 밖의 행적은 확인이 필요함.
Person 萬一薦 만일천 본문 남송 이종 때의 관료. 가희 2년(1238) 조산대부·권지엄주군주사 겸 관내권농사. 천거자가 아니라 시행자. 상서성의 차부를 받아 전시의 저서 100책을 정서·진상하고 진서장을 올림.
Person 真宗 진종 일반 북송 제3대 황제 조항(趙恒, 재위 997~1022). 목수의 시구를 보고 공경들의 불천거를 질책했다는 고사로 인용됨.
Person 穆脩 목수 일반 북송 초의 문인(979~1032). 고문운동의 선구자. 진종 고사의 주인공. 유일지사(遺逸之士) 천거의 논거.
Place 嚴州 엄주 일반 송대의 주. 본래 목주(睦州)였는데 선화 3년(1121) 방랍의 난 평정 뒤 개칭하였다. 치소는 건덕(建德)이며, 지금의 저장성 젠더·춘안 일대이다. 전시의 본관·거주지. 정지제·만일천의 임지. '睦寇'의 '睦'은 이 지역의 옛 이름.
Place 徽州 휘주 일반 송대의 주. 본래 흡주(歙州)였는데 선화 3년(1121)에 개칭하였다. 지금의 안후이성 황산시 일대와 장시성 우위안 등. 원보의 임지이자 왕강의 출신지.
Place 紹興府 소흥부 일반 남송의 부. 소흥 원년(1131)에 월주(越州)를 승격하여 설치하였다. 지금의 저장성 사오싱. 왕강의 임지.
Timespan 靖康 정강 일반 북송 흠종의 연호(1126~1127). 전학의 공적 시기로 제시됨. 실제로 목구는 1120~21년, 금군의 절강 침입은 1129~30년의 일이므로 느슨한 시기 표현임.
Timespan 嘉熙 가희 일반 남송 이종의 연호(1237~1240). 가희 2년은 1238년. 차자 윤허 5월 10일, 진서장 9월.
Event 睦寇 목구 본문 북송 선화 2~3년(1120~1121) 목주 청계에서 일어난 방랍(方臘)의 난, 또는 그 반란군. '陸梁'은 제멋대로 날뛴다는 뜻.
Event 金人入浙 금인입절 본문 건염 3~4년(1129~1130) 금군의 절강 침입으로 보인다. 전학이 방어한 사건.
Concept 特進 특진 일반 송대 문관의 고위 기록관계(寄祿官階). 교행간의 관계.
Concept 左丞相 좌승상 일반 남송의 재상직. 건도 8년(1172) 상서좌복야를 개칭한 것으로, 우승상보다 서열이 높다. 교행간의 직함.
Concept 樞密使 추밀사 일반 추밀원의 장관. 남송에서는 재상이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행간이 좌승상과 겸직.
Concept 肅國公 숙국공 본문 국공(國公)급 봉작. 가희 2년 당시 교행간의 봉작. 이듬해 노국공에 봉해짐.
Concept 國子司業 국자사업 일반 국자감의 차관으로, 국자좨주 다음 자리. 교행간이 이 관직에 있을 때 전시의 명성을 처음 들음.
Concept 寶謨閣學士 보모각학사 일반 보모각의 학사직으로, 문신에게 내리는 첩직(貼職). 사고본은 '寳'로 씀. 양간의 생전 직함.
Concept 寶章閣待制 보장각대제 일반 보장각의 대제직으로, 첩직. 당시 원보의 직함.
Concept 太府丞 태부승 일반 재정·창고·교역을 관장하는 태부시(太府寺)의 속관(경–소경–승). 정지제의 관직.
Concept 朝散大夫 조산대부 일반 송대 문관의 중급 기록관계. 만일천의 관계.
Concept 權知嚴州軍州兼管內勸農事 권지엄주군주사겸관내권농사 본문 엄주의 지주직(差遣)에 관내 권농을 겸한 직함. '權'은 관계가 낮은 사람이 임시로 그 직을 맡는다는 뜻. 만일천의 직함.
Concept 迪功郎 적공랑 일반 송대 선인(選人) 7계 중 최하위 기록관계(종9품). 정화 연간에 장사랑(將仕郎)을 고친 이름. 사고본은 '廸'으로 씀. 과거를 거치지 않은 전시를 특보(特補)하기 위한 관계.
Concept 秘閣校勘 비각교감 일반 비각의 서적을 교감하는 관직(館職). 청요직으로 나아가는 경로. 전시에게 내려진 직임. 뒤에 사관검열로 옮김.
Concept 三省 삼성 일반 중서성·문하성·상서성. 남송에서는 중서·문하가 합쳐져 재상부가 총괄하였다. 성지를 받들어 청을 윤허한 주체.
Concept 尚書省 상서성 일반 삼성의 하나로, 정령의 집행을 맡았다. 윤허 내용을 엄주에 차부(劄付)함.
Concept 布衣 포의 일반 벼슬하지 않은 선비. 천거 당시 전시의 신분.
Concept 郡庠 군상 일반 주·군의 관학, 곧 주학(州學). 전시가 초빙되어 강학한 곳.
Concept 漕司文解 조사문해 본문 전운사(漕司)가 주관하는 해시(漕試)에 합격해 성시로 보내지는 것(得解). 해시에는 합격했으나 성시에는 급제하지 못함.
Concept 永免 영면 본문 영면해(永免解). 해시에 여러 차례 합격한 사람에게 이후 해시를 면제하고 곧바로 성시에 응시하게 한 제도. '比歲已該永免': 근년에 이미 이 자격에 해당하게 됨.
Concept 場屋 장옥 일반 과거 시험장, 또는 과거 시험 자체. '場屋竟不足以得之': 과거로는 끝내 급제하지 못함.
Concept 理學 이학 일반 송·명대 신유학의 총칭. 좁게는 정주 성리학, 넓게는 육구연 계열 심학까지 포함한다. '理學淹貫': 의리지학에 두루 통달함. 전시는 양간을 거친 심학 계열.
Concept 乙覽 을람 일반 을야지람(乙夜之覽)의 준말. 임금의 열람을 높여 이르는 말. 뒤 문서의 '御覽'과 같은 뜻.
Concept 聖旨 성지 일반 황제의 뜻이나 명령. 사고본은 '㫖'로 씀. 삼성이 받든 성지 "依"로 천거가 확정됨.
Record 劄子 차자 일반 송대의 간략한 상주문. 상급 관청이 하급 관청에 내리는 지시 문서도 차자라 하였다. 첫 문서는 교행간의 상주 차자. 둘째 문서의 '尚書省劄'은 하달 차자.
Record 狀 장 일반 관원이 일을 갖추어 아뢰는 보고 문서. 둘째 문서는 만일천의 진서장('謹具狀上進以聞').
Record 家塾尚書演義 가숙상서연의 본문 전시의 『상서』 주석서. 진서장에 30책으로 실림. 차자에는 『尚書啓蒙』으로 나옴. 사고관은 『融堂書解』를 그 만년 산정본으로 봄.
Record 學詩管見 학시관견 본문 전시의 『시경』 관련 저술. 진서장에 30책으로 실림. 차자에는 『詩學管見』으로 나옴. 현존하지 않음.
Record 周易釋傳 주역석전 본문 전시가 『주역』을 풀이한 저술. 진서장에 20책으로 실림. 현존하지 않음.
Record 四書管見 사서관견 본문 전시의 사서 주석서. 『논어』·『효경』·『중용』·『대학』을 다룬다(『맹자』 대신 『효경』). 진서장에 8책으로 실림. 『融堂四書管見』 13권(영락대전 집일본)으로 전함.
Record 兩漢筆記 양한필기 본문 전시가 전한·후한의 역사와 정치를 논평한 사론서. 현존한다. 진서장에 12책으로 실림. 한이 진(秦)의 폐단을 답습한 점과 삼대지치에 미치지 못한 까닭을 논함.
Record 國朝編年 국조편년 본문 송 왕조사를 편년체로 엮은 것으로 보이는 전시의 저술. 차자에만 보이고 진상 목록에는 없음. 현존하지 않음.
Grammar 輒 첩 일반 '문득, 곧' 또는 '외람되이, 함부로'. 사고본은 '輙'으로 씀. '臣輒有奏陳': 외람되이 아뢴다는 겸양 표현.
Grammar 蓋 개 일반 설명·추정을 이끄는 허사. 사고본은 '葢'로 씀. '蓋其深所推許': 대개 양간이 깊이 인정한 사람임.
Grammar 有以~ 유이~ 일반 '~할 만한 바(방도·효용)가 있다'. '有以起人': 사람을 일깨우는 바가 있다.
Grammar 因~以~ 인~이~ 일반 'A를 통하여(계기로) B하다'. '因綱以延其來': 왕강을 통해 전시를 불러옴.
Grammar 莫不~ 막불~ 일반 '~하지 않음이 없다', 곧 '모두 ~하다'는 이중부정. '莫不詳究而熟知之': 상세히 궁구하여 익히 알지 않는 것이 없음.
Grammar 不但~而已 부단~이이 일반 '단지 ~할 뿐만이 아니다'. '不但通詩書守陳言而已': 경전 지식에 그치지 않고 실무 능력도 갖춤.
Grammar 何以~ 하이~ 일반 수단을 물으면 '무엇으로써', 이유를 물으면 '어찌하여'. '公卿何以不薦': 어찌하여 천거하지 않았는가.
Grammar 固~亦~ 고~역~ 일반 '진실로 ~이며, 또한 ~이다'. 두 판단을 병렬해 강조한다. '固大臣之所當言,亦聖主之所樂聞也'.
Grammar 儻~則~矣 당~즉~의 일반 '만일 ~한다면 곧 ~할 것이다'라는 조건 구문. 전시를 등용하지 않으면 국가와 대신 모두에게 허물이 생긴다는 논리.
Grammar 除已~須至~者 제이~수지~자 일반 송대 공문의 결구 투식. '이미 ~한 것 외에, ~해야 할 것'. '臣除已恭稟繕寫…須至上進者'.
Grammar 準~劄 준~차 일반 '~의 차자를 받았다(그에 의거하여)'는 공문 서두 투식. 사고본은 '凖'으로 씀. '準尚書省劄'.

사고전서 제요

『융당서해』 권두에 실린 사고관의 서전제요(書前提要)이다. 저본은 아래 이미지의 무영전취진판으로, 건륭 39년(1774) 10월에 교정하여 올렸다고 되어 있다. 『사고전서』본 제요(건륭 45년 5월)와의 차이는 제요 교감에 정리하였다.

제요 원본 이미지와 판면 전사

취진판의 판식(행별 글자 배열)대로 전사하였다. 글자는 이미지의 자형을 따랐다. 제1면 앞쪽 다섯 행은 목록(卷十八 끝~卷二十)의 끝부분이다.

원본 이미지 판면 전사
제요 제1면
周書 君陳 顧命 康王之誥
卷十九
周書 畢命 君牙 冏命
卷二十
周書 呂刑 文侯之命 費誓 秦誓

臣等謹案融堂書解二十卷宋錢時撰時字子是
淳安人受學于楊簡熙寧中以丞相喬行簡薦授
秘閣校勘遷史館檢閱所著惟兩漢筆記尚存于
世而此書向尠傳本故黃震日鈔明胡廣等書經
제요 제2면
大全俱未徵引其說朱彝尊經義考亦云未見今
據永樂大典中散見各韻者依經文前後次第裒
掇編輯中惟伊訓梓材秦誓三篇全佚說命呂刑
亦間有闕文餘皆篇帙完善時之意主于表章書
序每篇之首皆條其大指其逸書之序則參考史
記核其時事以釋篇題復采經典釋文史記集解
史記索隱所引馬融鄭康成諸說引伸其義其旁
搜遠紹之意亦可謂勤且篤矣唐人解經多墨守
注疏宋儒始好出新說每不免于穿鑿支離時所
제요 제3면
解如羲和曠職則本諸蘇軾康叔封衛在成王時
則仍用孔安國傳康王之誥則兼采張九成書說
信能擇善而從不專主一家之學者至於泰誓為
告西岐師旅牧誓為告遠方諸侯自抒心得未嘗
依傍前人又謂武成本無脫簡中述武王告師之
辭後為史臣紀事之體康誥首節以周公初基定
為未營洛邑封康叔以撫頑民不當移置于洛誥
尤為卓然有見不惑于同時諸儒之曲說其取材
博而精其樹義新而確蓋宋人經解中僅見之書
제요 제4면
也葉盛水東日記載嘉熙二年知嚴州萬一薦準
尚書省劄取進時所著書奏狀一通首列尚書演
義三十冊而永樂大典所載實名融堂書解疑為
晚年刪削更定之本今從永樂大典所稱書名題
之而仍以原劄狀二通錄冠于前又經義考作八
卷未知何據今考定篇第釐為二十卷詮次如左
乾隆三十九年十月恭校上
      總纂官侍讀臣紀昀
         侍讀臣陸錫熊

제요 표점 원문

저본은 취진판이다. 교정한 글자는 굵게 표시하고, 원래 글자를 〔原作〕으로 병기하였다. 그 밖의 글자는 취진판 자형대로 두었다.

臣等謹案:《融堂書解》二十卷,宋錢時撰。時字子是,淳安人,受學于楊簡。嘉熙〔原作「熙寧」〕中,以丞相喬行簡薦,授秘閣校勘,遷史館檢閱。所著惟《兩漢筆記》尚存于世,而此書向尠傳本,故黃震《日鈔》、明胡廣等《書經大全》俱未徵引其說,朱彝尊《經義考》亦云「未見」。今據《永樂大典》中散見各韻者,依經文前後次第,裒掇編輯。中惟〈伊訓〉、〈梓材〉、〈秦誓〉三篇全佚,〈說命〉、〈呂刑〉亦間有闕文,餘皆篇帙完善。

時之意主于表章〈書序〉,每篇之首,皆條其大指;其逸書之序,則參考《史記》,核其時事,以釋篇題;復采《經典釋文》、《史記集解》、《史記索隱》所引馬融、鄭康成諸說,引伸其義。其旁搜遠紹之意,亦可謂勤且篤矣。

唐人解經,多墨守注疏;宋儒始好出新說,每不免于穿鑿支離。時所解,如「羲和曠職」則本諸蘇軾,康叔封衛在成王時則仍用孔安國《傳》,〈康王之誥〉則兼采張九成《書說》,信能擇善而從,不專主一家之學者。至於〈泰誓〉為告西岐師旅,〈牧誓〉為告遠方諸侯,自抒心得,未嘗依傍前人。又謂〈武成〉本無脫簡,中述武王告師之辭,後為史臣紀事之體;〈康誥〉首節,以「周公初基」定為未營洛邑,封康叔以撫頑民,不當移置于〈洛誥〉。尤為卓然有見,不惑于同時諸儒之曲說。其取材博而精,其樹義新而確,蓋宋人經解中僅見之書也。

葉盛《水東日記》載:嘉熙二年,知嚴州萬一薦準尚書省劄,取進時所著書奏狀一通,首列《尚書演義》三十冊;而《永樂大典》所載,實名《融堂書解》,疑為晚年刪削更定之本。今從《永樂大典》所稱書名題之,而仍以原劄、狀二通錄冠于前。又《經義考》作八卷,未知何據。今考定篇第,釐為二十卷,詮次如左。

乾隆三十九年十月恭校上。

總纂官侍讀臣紀昀
侍讀臣陸錫熊

제요 교감

저본(취진판)과, 앞서 입력한 『사고전서』본 제요를 대조하였다. 이체자 차이 외에 문자 차이가 세 곳(裒掇/裒綴, 秦誓/泰誓, 至於/至以) 있고, 교상 날짜와 서명자가 다르다.

위치 취진판(저본) 사고전서본 비고
□□中,以丞相喬行簡薦 熙寧 熙寕 두 본 모두 오기, '嘉熙'로 교정. 교행간은 남송 이종 때(단평~가희 연간)의 재상이고, 희녕(1068~1077)은 북송 신종의 연호이다. 같은 제요의 "嘉熙二年" 기사와 진상 문서의 날짜(가희 2년)도 이를 뒷받침한다.
伊訓、梓材、□誓三篇全佚 秦 泰 취진판이 옳고, 사고전서본은 오자이다. 제요가 뒤에서 전시의 「태서」 해석을 논하므로 「태서」는 현존한다. 취진판 목록 卷二十에도 「秦誓」 편명이 실려 있다.
裒□編輯 掇 綴 '주워 모으다'와 '엮어 모으다'로 문의는 같다. 저본대로 두었다.
至□泰誓為告西岐師旅 於 以 취진판은 '「태서」에 이르러서는 ~에게 고한 글로 보았다', 사고전서본은 '「태서」를 ~에게 고한 글로 여긴 데 이르러서는'으로, 문의는 같다. 저본대로 두었다.
以周公初基定為未營洛邑 未營 未營 두 본이 같다. '낙읍을 경영하기 전에 강숙을 봉한 일'로 읽으면 문맥이 통하므로 원문대로 두었다.
校上 날짜 乾隆三十九年十月 乾隆四十五年五月 취진판 제요(1774)가 사고전서본 제요(1780)보다 약 6년 앞선다.
서명 總纂官 侍讀 紀昀
侍讀 陸錫熊
總纂官 紀昀·陸錫熊·孫士毅
總校官 陸費墀
취진판에는 손사의·육비지가 없고, 기윤·육석웅에게 '侍讀' 직함이 붙어 있다.
受學□楊簡 / 尚存□世 / 主□表章 / 不免□穿鑿 / 移置□洛誥 / 不惑□同時 / 錄冠□前 于 於 개사 이체. 문의 같음.
史館檢□ 閱 閲 이체자
未□引 徵 徴 이체자
朱□尊 彝 彞 이체자
史記索□ 隱 隠 이체자
旁搜□紹 / □方諸侯 遠 逺 이체자
本諸□軾 蘇 蘓 이체자
□宋人經解 蓋 葢 이체자
三十□ 冊 册 이체자
□削更定 刪 删 이체자
□冠于前 錄 録 이체자

제요 번역문

원문 번역
臣等謹案:《融堂書解》二十卷,宋錢時撰。時字子是,淳安人,受學于楊簡。嘉熙中,以丞相喬行簡薦,授秘閣校勘,遷史館檢閱。 신(臣) 등이 삼가 살펴보건대, 『융당서해』 20권은 송나라 전시(錢時)가 지었다. 전시는 자가 자시(子是)이고 순안(淳安) 사람으로, 양간(楊簡)에게 배웠다. 가희(嘉熙) 연간에 승상 교행간(喬行簡)의 천거로 비각교감(秘閣校勘)에 제수되었고, 사관검열(史館檢閱)로 옮겼다.
所著惟《兩漢筆記》尚存于世,而此書向尠傳本,故黃震《日鈔》、明胡廣等《書經大全》俱未徵引其說,朱彝尊《經義考》亦云「未見」。今據《永樂大典》中散見各韻者,依經文前後次第,裒掇編輯。中惟〈伊訓〉、〈梓材〉、〈秦誓〉三篇全佚,〈說命〉、〈呂刑〉亦間有闕文,餘皆篇帙完善。 그의 저술 가운데 오직 『양한필기(兩漢筆記)』만 세상에 남아 있고, 이 책은 예로부터 전본(傳本)이 드물었다. 그래서 황진(黃震)의 『일초(日鈔)』와 명나라 호광(胡廣) 등의 『서경대전(書經大全)』 모두 그 설을 인용하지 않았고, 주이존(朱彝尊)의 『경의고(經義考)』에서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제 『영락대전(永樂大典)』의 각 운(韻)에 흩어져 보이는 것을 근거로, 경문의 앞뒤 차례에 따라 모아 엮었다. 그 가운데 「이훈(伊訓)」·「재재(梓材)」·「진서(秦誓)」 세 편은 완전히 일실되었고, 「열명(說命)」·「여형(呂刑)」에도 간간이 빠진 글이 있으나, 나머지는 모두 편질이 온전하다.
時之意主于表章〈書序〉,每篇之首,皆條其大指;其逸書之序,則參考《史記》,核其時事,以釋篇題;復采《經典釋文》、《史記集解》、《史記索隱》所引馬融、鄭康成諸說,引伸其義。其旁搜遠紹之意,亦可謂勤且篤矣。 전시의 뜻은 「서서(書序)」를 드러내 밝히는 데 주안을 두었다. 그래서 매 편 첫머리마다 그 대지(大旨)를 조목조목 밝혔다. 일서(逸書)의 서(序)는 『사기』를 참고하여 그 시대의 사실을 고증함으로써 편제(篇題)를 풀이하였다. 또 『경전석문(經典釋文)』·『사기집해(史記集解)』·『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인용된 마융(馬融)·정강성(鄭康成) 등의 설을 채록하여 그 뜻을 부연하였다. 널리 찾고 멀리 이어받으려 한(旁搜遠紹) 그 뜻은 부지런하고 독실하다 할 만하다.
唐人解經,多墨守注疏;宋儒始好出新說,每不免于穿鑿支離。時所解,如「羲和曠職」則本諸蘇軾,康叔封衛在成王時則仍用孔安國《傳》,〈康王之誥〉則兼采張九成《書說》,信能擇善而從,不專主一家之學者。 당나라 사람들은 경전을 풀이할 때 대체로 주소(注疏)를 묵수하였고, 송나라 유자들은 비로소 새로운 설 내기를 좋아하여 번번이 천착과 지리(支離)를 면치 못하였다. 전시의 해석을 보면, '희화(羲和)가 직분을 저버린 일'은 소식(蘇軾)의 설에 근본하였다. 강숙(康叔)을 위(衛)에 봉한 것이 성왕(成王) 때라는 점은 여전히 공안국(孔安國)의 『전(傳)』을 따랐다. 「강왕지고(康王之誥)」는 장구성(張九成)의 『서설(書說)』을 아울러 채택하였다. 참으로 좋은 것을 가려 따르고 한 학파의 학설만을 위주로 하지 않은 자라 하겠다.
至於〈泰誓〉為告西岐師旅,〈牧誓〉為告遠方諸侯,自抒心得,未嘗依傍前人。又謂〈武成〉本無脫簡,中述武王告師之辭,後為史臣紀事之體;〈康誥〉首節,以「周公初基」定為未營洛邑,封康叔以撫頑民,不當移置于〈洛誥〉。尤為卓然有見,不惑于同時諸儒之曲說。其取材博而精,其樹義新而確,蓋宋人經解中僅見之書也。 「태서(泰誓)」에 이르러서는 서기(西岐)의 군사들에게 고한 글로, 「목서(牧誓)」는 먼 지방의 제후들에게 고한 글로 보았는데, 이는 스스로 터득한 바를 펼친 것이지 일찍이 앞사람에게 기댄 적이 없다. 또 「무성(武成)」에는 본래 탈간(脫簡)이 없으며, 가운데는 무왕이 군사들에게 고한 말을 서술하였고 뒷부분은 사관이 사실을 기록한 체제라고 하였다. 「강고(康誥)」의 첫 절에 대해서는 '주공초기(周公初基)'를 낙읍(洛邑)을 아직 경영하기 전에 강숙을 봉하여 완민(頑民)을 진무한 일로 확정하고, 이 절을 「낙고(洛誥)」로 옮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는 더욱 우뚝한 식견이 있어 동시대 여러 학자들의 왜곡된 설에 미혹되지 않은 것이다. 자료를 취한 것은 넓으면서도 정밀하고, 의리를 세운 것은 새로우면서도 확실하니, 아마도 송나라 사람들의 경해(經解) 가운데 보기 드문 책일 것이다.
葉盛《水東日記》載:嘉熙二年,知嚴州萬一薦準尚書省劄,取進時所著書奏狀一通,首列《尚書演義》三十冊;而《永樂大典》所載,實名《融堂書解》,疑為晚年刪削更定之本。今從《永樂大典》所稱書名題之,而仍以原劄、狀二通錄冠于前。又《經義考》作八卷,未知何據。今考定篇第,釐為二十卷,詮次如左。 섭성(葉盛)의 『수동일기(水東日記)』에는 주장(奏狀) 한 통이 실려 있다. 가희 2년(1238) 지엄주(知嚴州) 만일천(萬一薦)이 상서성(尚書省)의 차자(劄子)에 따라 전시의 저서를 거두어 올린 것으로, 첫머리에 『상서연의(尚書演義)』 30책을 열거하였다. 그런데 『영락대전』에 실린 것은 실제 이름이 『융당서해』이니, 아마도 만년에 깎고 고쳐 정한 본인 듯하다. 이제 『영락대전』에서 일컬은 서명을 따라 제목을 붙이고, 원래의 차자와 주장 두 통을 그대로 베껴 책 앞에 얹는다. 또 『경의고』에는 8권으로 되어 있으나 무엇에 근거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편차를 고증하여 정하고 20권으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차례를 매긴다.
乾隆三十九年十月恭校上。
總纂官侍讀臣紀昀
侍讀臣陸錫熊
건륭(乾隆) 39년(1774) 10월 삼가 교정하여 올림.
총찬관(總纂官) 시독(侍讀) 신 기윤(紀昀)
시독 신 육석웅(陸錫熊)

제요 용어사전

「宋進書原劄狀」 용어사전과 겹치는 항목(錢時, 楊簡, 喬行簡, 秘閣校勘, 嘉熙, 蓋 등)은 아래 원차장 용어사전을 참조한다. 표제어는 정자로 썼으며, 사고전서본의 이체자(蘓·隠·葢·逺 등)는 맥락란에 병기하였다.

유형 표제어 독음 범위 정의 본문 맥락
Record 融堂書解 융당서해 일반 남송 전시의 『상서』 주석서, 20권. 원본은 전하지 않고, 청 사고관이 『영락대전』 각 운에 흩어진 글을 경문 순서대로 모아 복원하였다. 서명은 『영락대전』을 따름. 가희 2년 진상된 『상서연의』(진서장의 『家塾尚書演義』) 30책의 만년 산정본으로 추정됨. 「이훈」·「재재」·「진서」 일실, 「열명」·「여형」 결락.
Record 日鈔 일초 일반 남송 황진(黃震)의 독서 찰기. 『황씨일초(黃氏日鈔)』라고도 한다. 전시의 설을 인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전본 희소의 방증으로 제시됨.
Record 書經大全 서경대전 일반 명 영락 연간에 호광 등이 칙명으로 편찬한 『서경』 주석 집성. 채침 『서집전』을 기본으로 하였고, 『오경대전』의 하나로서 과거의 표준 교재가 되었다. 이 책도 전시의 설을 인용하지 않음. 명초에 이미 『융당서해』가 유통되지 않았다는 근거.
Record 經義考 경의고 일반 청 주이존이 편찬한 역대 경학 저술 목록·해제서, 300권. 존·일·궐·미견 여부를 표시하였다. 『융당서해』를 '未見', 8권으로 기록. 사고관은 그 8권의 근거를 알 수 없다고 함.
Record 永樂大典 영락대전 일반 명 영락 6년(1408)에 완성된 대형 유서, 22,877권. 『홍무정운』의 운 순서로 표제자를 배열하고 전적을 옮겨 실었다. '散見各韻'은 이 운별 배열 체제 때문. 사고관이 경문 차례로 다시 모아 엮음(裒綴編輯).
Record 水東日記 수동일기 일반 명 섭성의 필기, 40권. 가희 2년의 차자와 진서장이 실려 전함. 사고관이 이를 「송진서원차장」으로 권두에 수록.
Record 經典釋文 경전석문 일반 당초 육덕명(陸德明)의 경전 음의서, 30권. 전시가 마융·정현의 설을 가져온 출처.
Record 史記集解 사기집해 일반 남조 송 배인(裴駰)의 『사기』 주석. 『사기』 삼가주의 하나. 한대 고주를 많이 인용하여, 전시가 고주를 가져온 출처가 됨.
Record 史記索隱 사기색은 일반 당 사마정(司馬貞)의 『사기』 주석. 『사기』 삼가주의 하나. 사고전서본은 '索隠'. 고주의 출처.
Record 史記 사기 일반 전한 사마천의 기전체 통사, 130권. 일서의 서를 풀이할 때 시대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 씀(核其時事).
Record 書說 서설 본문 장구성의 『상서』 해설서. 「강왕지고」 해석에서 아울러 채택됨(兼采).
Record 伊訓 이훈 일반 「상서(商書)」 편명. 이윤이 태갑을 훈계한 글로, 고문 편. 『융당서해』에서 전편 일실.
Record 梓材 재재 일반 「주서」 편명. 강숙에게 정치의 도리를 고한 글로, 금문 편. 『융당서해』에서 전편 일실.
Record 秦誓 진서 일반 『상서』 마지막 편. 진 목공이 효(殽)의 패전 뒤 신하들에게 고한 글. 『융당서해』에서 전편 일실. 취진판 제요는 '秦誓'로 바르게 썼고, 사고전서본 제요의 '泰誓'는 오자. 취진판 목록 卷二十에도 편명이 실려 있음.
Record 說命 열명 일반 「상서」 편명, 상·중·하 3편. 은 고종이 부열을 등용한 일을 기록한 고문 편. 『융당서해』에서 일부 결락.
Record 呂刑 여형 일반 「주서」 편명. 목왕 때 여후가 형벌 제도를 정한 일을 기록하였다. 『융당서해』에서 일부 결락.
Record 胤征 윤정 일반 「하서」 편명. 윤후가 직무를 저버린 희화를 정벌한 일을 기록한 고문 편. '羲和曠職'의 출전. 경문은 '羲和廢厥職'.
Record 泰誓 태서 일반 「주서」 편명, 상·중·하 3편. 무왕이 주(紂)를 치러 나서며 맹세한 글로, 통행본은 고문 편. 전시는 서기의 군사에게 고한 글로 봄. 사고관은 자득의 설로 평가.
Record 牧誓 목서 일반 「주서」 편명. 무왕이 목야 결전에 앞서 맹세한 글. 전시는 먼 지방 제후들에게 고한 글로 보아 「태서」와 구분함.
Record 武成 무성 일반 「주서」 편명. 무왕이 은을 이긴 뒤의 일을 기록한 고문 편. 북송 이래 착간을 이유로 편차를 고친 '고정(考定) 무성'이 제시되었고, 채침 『서집전』에도 실렸다. 전시는 탈간이 없다고 봄. 가운데(中述)는 무왕이 군사에게 고한 말, 뒷부분은 사관의 기사.
Record 康誥 강고 일반 「주서」 편명. 강숙을 은 유민의 땅에 봉하며 내린 고명. 첫머리 48자에 대해 송대에 「낙고」 착간설이 제기되었다. ① 강숙 분봉을 성왕 때로 보아 공전을 따름. ② '周公初基'를 낙읍 경영 전의 분봉으로 보고, 첫 절을 「낙고」로 옮기는 데 반대함.
Record 洛誥 낙고 일반 「주서」 편명. 낙읍 경영을 두고 주공과 성왕이 주고받은 말을 기록하였다. 「강고」 첫 절을 이 편으로 옮기는 착간설(소식 이래, 채침 계승)에 전시는 반대함.
Record 康王之誥 강왕지고 일반 「주서」 편명. 강왕이 즉위한 뒤 제후에게 고한 글로, 통행본은 「고명」에서 갈라져 나온 편. 장구성 『서설』을 아울러 채택함.
Person 黃震 황진 일반 남송 말의 학자(1213~1281, 일설 1280). 자는 동발(東發), 경원부 자계 사람. 주자학 계열로 『황씨일초』를 지었다. 『일초』가 전시의 설을 인용하지 않음.
Person 胡廣 호광 일반 명초의 문신(1370~1418). 『오경사서대전』과 『성리대전』의 편찬을 주관하였다. 『서경대전』의 편찬 책임자.
Person 朱彝尊 주이존 일반 청초의 학자·문인(1629~1709). 자는 석창(錫鬯), 호는 죽타(竹垞), 절강 수수 사람. 『경의고』에서 『융당서해』를 '未見'이라 함.
Person 葉盛 섭성 일반 명대의 문신·장서가(1420~1474). 자는 여중(與中), 곤산 사람. 『수동일기』에 진상 문서 2통이 전함.
Person 馬融 마융 일반 후한의 경학자(79~166). 자는 계장(季長). 정현의 스승. 그의 『상서』 설은 『경전석문』 등에 인용된 형태로만 전함.
Person 鄭玄 정현 일반 후한의 경학자(127~200). 자는 강성(康成). 금고문 경학을 종합하였다. 제요에는 '鄭康成'으로 나옴.
Person 蘇軾 소식 일반 북송의 문인·학자(1037~1101). 자는 자첨, 호는 동파. 『동파서전』을 지었다. 사고전서본은 '蘓軾'. 희화 해석의 근거가 됨.
Person 孔安國 공안국 일반 전한의 경학자, 공자의 후손. 공벽 고문상서를 정리했다고 전한다. '孔安國傳'은 통행본의 공전으로, 동진 매색이 바친 위공전(僞孔傳)임.
Person 張九成 장구성 일반 남송 초의 학자(1092~1159). 자는 자소(子韶), 호는 횡포·무구거사. 소흥 2년(1132)에 장원 급제하였다. 그의 『서설』이 「강왕지고」 해석에 채택됨.
Person 康叔 강숙 일반 주 무왕의 아우로 이름은 봉(封). 위(衛)나라의 시조. 분봉 시기와 「강고」 첫 절의 귀속이 쟁점.
Person 羲和 희화 일반 하대에 천문·역법을 맡았다고 전하는 관직, 또는 그 직을 맡은 씨족. 「윤정」에서 술에 빠져 직무를 저버린 일(羲和曠職).
Person 紀昀 기윤 일반 청의 학자·문신(1724~1805). 자는 효람(曉嵐). 『사고전서』 총찬관. 이 제요의 총찬관. 취진판 제요에는 '總纂官侍讀臣紀昀'으로 서명.
Person 陸錫熊 육석웅 일반 청의 문신(1734~1792). 『사고전서』 총찬관. 이 제요의 총찬관. 취진판 제요에는 '侍讀臣陸錫熊'으로 서명.
Person 孫士毅 손사의 일반 청의 문신(1720~1796). 『사고전서』 총찬관을 지냈고, 뒤에 양광총독 등을 역임하였다. 사고전서본 제요(1780)에만 총찬관으로 서명. 취진판 제요(1774)에는 없음.
Person 陸費墀 육비지 일반 청의 문신(?~1790). 복성 육비(陸費), 이름 지(墀). 『사고전서』 총교관. 사고전서본 제요에만 총교관으로 서명. '陸 費墀'로 끊어 읽지 말 것.
Place 淳安 순안 일반 엄주에 속한 현. 지금의 저장성 춘안현 일대. 전시의 출신지.
Place 西岐 서기 일반 기산 아래 주(周)의 근거지.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기산현 일대. 「태서」를 서기의 군사에게 고한 글로 봄.
Place 洛邑 낙읍 일반 주공이 건설한 동도(東都)로, 성주(成周)라고도 한다. 지금의 허난성 뤄양 일대. 「강고」 첫 절을 낙읍 경영 전의 일로 봄.
Timespan 熙寧 희녕 본문 북송 신종의 연호(1068~1077). 취진판의 '熙寧', 사고전서본의 '熙寕'은 모두 '嘉熙'의 오기.
Timespan 乾隆 건륭 일반 청 고종의 연호(1736~1795). 취진판 제요는 건륭 39년(1774) 10월, 사고전서본 제요는 건륭 45년(1780) 5월 교상.
Concept 史館檢閱 사관검열 일반 국사 편수를 맡은 사관의 하급 관직. 전시가 비각교감에서 옮겨 간 관직.
Concept 書序 서서 일반 『상서』 백 편 각각의 작성 경위를 밝힌 글(「백편서」). 공자 작으로 전해졌으나 주희가 의심하였고, 채침은 권말에 따로 모았다. 전시는 이를 드러내 높이는 것(表章)을 주된 뜻으로 삼음.
Concept 逸書 일서 일반 『상서』 백 편 가운데 경문이 망실되고 서만 남은 편들. 『사기』로 고증해 편제를 풀이함.
Concept 注疏 주소 일반 한위 고주와 당대 소를 아우르는 말. 『상서』의 경우 공전과 공영달 『상서정의』. 당대 경학이 주소를 묵수하였다는 평가.
Concept 穿鑿支離 천착지리 일반 억지로 끌어다 붙이고(穿鑿) 갈피를 잃어 산만함(支離). 근거 없는 신설을 비판하는 상투어. 송유 경해의 폐단으로 지적됨.
Concept 脫簡 탈간 일반 죽간이 빠지거나 뒤섞여 생긴 결락·착란. 착간과 함께 송대 경문 개정론의 근거가 되었다. 전시는 「무성」에 탈간이 없다고 봄.
Concept 頑民 완민 일반 주에 복종하지 않은 은의 유민. 강숙 분봉을 완민 진무 조치로 봄.
Concept 總纂官 총찬관 일반 『사고전서』 편찬에서 제요 작성과 편집을 총괄한 관직. 취진판: 기윤(육석웅은 '侍讀'으로만 서명). 사고전서본: 기윤·육석웅·손사의.
Concept 總校官 총교관 일반 『사고전서』 편찬에서 초록본 교감을 총괄한 관직. 육비지(사고전서본에만 보임).
Concept 侍讀 시독 일반 한림원 시독(翰林院侍讀). 경연에서 황제에게 경사를 강독하는 한림관. 취진판 제요에서 기윤·육석웅의 직함으로 보임.
Grammar 謹案 근안 일반 '삼가 살피건대'. 상주 고증문·제요의 첫머리 투식. '臣等謹案'은 서전제요의 정형적 시작구.
Grammar 主於~ 주어~ 일반 '~에 주안을 두다'. '時之意主於表章書序'.
Grammar 則 즉 일반 앞의 주제어를 받아 서술을 이끄는 '~은 곧'. 조건 관계에서는 '~하면 곧'. '羲和曠職則本諸蘇軾…'처럼 「A則B」를 나열함.
Grammar 本諸~ 본저~ 일반 '~에 근본하다'. '諸'는 '之於'의 합음자. '本諸蘇軾'.
Grammar 至於~ 지어~ 일반 '~에 이르러서는'. 앞의 사례와 구별되는 두드러진 사례를 이끈다. '至於泰誓為告西岐師旅': 선설 채택에서 자득의 설로 넘어가는 전환점. 사고전서본은 '至以泰誓為…'(~을 ~으로 여김에 이르러서는).
Grammar 未嘗~ 미상~ 일반 '일찍이 ~한 적이 없다'. '未嘗依傍前人'.
Grammar 僅見 근견 일반 '겨우 보이다', 곧 '아주 드물다'. '宋人經解中僅見之書'.
Grammar 釐為 이위 일반 '정리하여 ~으로 나누다'. 권수를 확정하는 투식. '釐為二十卷'.

오고해

『오고해(五誥解)』
저자 양간(楊簡, 1141~1226)
권수 4권
분류 경부(經部) 서류(書類)
대상 「강고」·「주고」·「재재」·「소고」·「낙고」
현존본 『영락대전』 집일본(「재재」 결)
교상 건륭 46년(1781) 9월

사고전서 제요

『오고해』 권두에 실린 사고전서 서전제요(書前提要)이다. 건륭 46년(1781) 9월에 교정하여 올렸다.

표점 원문

편명은 〈 〉, 서명은 《 》로 구분하였다. 그 밖의 글자는 입력 텍스트의 자형대로 두었다.

臣等謹案:《五誥解》四卷,宋楊簡撰。簡有慈湖《易》、《詩》二傳,已著録。昔韓愈稱:「周誥殷盤,佶屈聱牙。」宋儒如吕祖謙《書説》,亦先釋周誥,而後及虞、夏、商書。蓋先通其難通者,則其餘易於究尋。簡作是書,惟解〈康誥〉以下五篇,亦是意也。

簡受學於陸九淵,好舉新民保赤之政,推本於心學;又當《字説》盛行之後,喜穿鑿字義,爲新竒之論,措辭亦迂曲委重,未能暢所欲言。然如〈康誥〉言「恵不恵,懋不懋」,則歸重於君身;「服念旬時」,則疑孔傳「三月」爲過久。〈酒誥〉「厥心疾狠」,指民心而言;〈召誥〉「顧畏于民碞」,爲「民愚而神,可畏如碞險」;〈洛誥〉「公無困哉」,謂「困」有倦勤之意。皆能駁正舊文,自抒心得。

至如「先卜黎水」,用鄭康成、顧彪之説;封康叔時未營洛邑,用蘇氏《書傳》之説;「復子明辟」之訓詁、「圻父薄違」之句讀,用王氏《書義》之説。又能兼綜羣言,不専主一家之學矣。

此書世久失傳,《文淵閣書目》作一冊,焦竑《經籍志》作一卷,朱彛尊《經義考》以爲未見。今從《永樂大典》各韻中按條薈萃,惟闕〈梓材〉一篇,餘皆章句完善。謹依經文前後,釐爲四卷。

乾隆四十六年九月恭校上。

總纂官臣紀昀、臣陸錫熊、臣孫士毅
總校官臣陸費墀

교감·번역 노트

위치 내용 처리
《康誥》·《酒誥》·《召誥》·《洛誥》·《梓材》 입력 텍스트는 편명을 서명 부호로 표기함 편명 부호 〈 〉로 통일
總纂官:(臣/)紀昀… 입력 텍스트의 판독 표시 '總纂官臣紀昀、臣陸錫熊、臣孫士毅 / 總校官臣陸費墀'로 정리
恵不恵 '惠'의 이체자 원문대로 둠
厥心疾狠 경문 통행본은 '厥心疾很' 원문대로 두고 용어사전에 표시
迂曲委重 '委重'의 뜻이 분명하지 않음. 『사고전서총목』 해당 조목과 대조 필요 '번다하고 무겁다'는 취지로 번역
周誥殷盤 기존 번역 "주나라의 고문" '주나라의 고(誥)와 은나라의 「반경」'으로 수정('고문'은 古文과 혼동될 수 있음)
復子明辟之訓詁 기존 번역 "밝은 임금의 정사를 그대에게 돌려준다"는 공전(孔傳) 계열의 풀이임. 제요는 양간이 '왕씨(王安石)'의 훈고를 따랐다고 하는데, 왕안석 계열은 '復'을 '돌려주다'가 아니라 '복명(復命)하다'로 푼 것으로 알려져 있음 번역에서는 해석을 넣지 않고 '「復子明辟」의 훈고'로 옮김. 『오고해』 본문 확인 필요

번역문

원문 번역
臣等謹案:《五誥解》四卷,宋楊簡撰。簡有慈湖《易》、《詩》二傳,已著録。 신(臣) 등이 삼가 살펴보건대, 『오고해(五誥解)』 4권은 송나라 양간(楊簡)이 지었다. 양간에게는 자호(慈湖)의 『역』·『시』 두 전(傳)이 있어 이미 저록하였다.
昔韓愈稱:「周誥殷盤,佶屈聱牙。」宋儒如吕祖謙《書説》,亦先釋周誥,而後及虞、夏、商書。蓋先通其難通者,則其餘易於究尋。簡作是書,惟解〈康誥〉以下五篇,亦是意也。 예전에 한유(韓愈)는 "주나라의 고(誥)와 은나라의 「반경(盤庚)」은 문장이 뒤틀리고 읽기 어렵다"고 하였다. 송나라 유자 여조겸(呂祖謙)의 『서설(書說)』도 먼저 주나라의 고를 풀이한 뒤에야 우서·하서·상서에 미쳤다. 대개 통하기 어려운 것을 먼저 통하면 나머지는 탐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양간이 이 책을 지으며 오직 「강고(康誥)」 이하 다섯 편만 풀이한 것도 이 뜻이다.
簡受學於陸九淵,好舉新民保赤之政,推本於心學;又當《字説》盛行之後,喜穿鑿字義,爲新竒之論,措辭亦迂曲委重,未能暢所欲言。 양간은 육구연(陸九淵)에게 배워, 백성을 새롭게 하고(新民) 갓난아이처럼 보호하는(保赤) 정치를 즐겨 거론하며 그 근본을 심학(心學)에서 찾았다. 또 『자설(字說)』이 성행한 뒤를 만나 자의(字義)를 천착하기를 좋아하여 새롭고 기이한 논의를 지었고, 말을 펼치는 것도 에둘러 번다하고 무거워 하고자 하는 말을 시원하게 펴지 못하였다.
然如〈康誥〉言「恵不恵,懋不懋」,則歸重於君身;「服念旬時」,則疑孔傳「三月」爲過久。〈酒誥〉「厥心疾狠」,指民心而言;〈召誥〉「顧畏于民碞」,爲「民愚而神,可畏如碞險」;〈洛誥〉「公無困哉」,謂「困」有倦勤之意。皆能駁正舊文,自抒心得。 그러나 「강고」의 "순하지 않은 자를 순하게 하고, 힘쓰지 않는 자를 힘쓰게 한다(惠不惠,懋不懋)"는 말은 그 무게를 임금 자신에게 돌렸다. "열흘이나 한 철까지 깊이 생각한다(服念旬時)"는 말에 대해서는, 공전(孔傳)이 '석 달'이라 한 것이 지나치게 길다고 의심하였다. 「주고(酒誥)」의 "그 마음이 병들고 사납다(厥心疾狠)"는 백성의 마음을 가리킨 말로 보았다. 「소고(召誥)」의 "백성의 험함을 돌아보고 두려워한다(顧畏于民碞)"는 "백성은 어리석으면서도 신묘하니, 바위의 험준함처럼 두려워할 만하다"로 풀었다. 「낙고(洛誥)」의 "공께서는 지치지 마소서(公無困哉)"는 '困'에 부지런히 일하다 싫증 난다는 뜻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모두 옛 풀이를 논박하여 바로잡고 스스로 터득한 바를 펼친 것이다.
至如「先卜黎水」,用鄭康成、顧彪之説;封康叔時未營洛邑,用蘇氏《書傳》之説;「復子明辟」之訓詁、「圻父薄違」之句讀,用王氏《書義》之説。又能兼綜羣言,不専主一家之學矣。 "먼저 여수(黎水)에서 점쳤다(先卜黎水)"에 이르러서는 정강성(鄭康成)과 고표(顧彪)의 설을 썼다. 강숙(康叔)을 봉할 때 아직 낙읍(洛邑)을 경영하지 않았다는 것은 소씨(蘇軾) 『서전(書傳)』의 설을 썼다. 「復子明辟」의 훈고와 「圻父薄違」의 구두는 왕씨(王安石) 『서의(書義)』의 설을 썼다. 이처럼 여러 학설을 아울러 종합할 줄 알아, 한 학파의 학문만을 오로지 주장하지 않았다.
此書世久失傳,《文淵閣書目》作一冊,焦竑《經籍志》作一卷,朱彛尊《經義考》以爲未見。今從《永樂大典》各韻中按條薈萃,惟闕〈梓材〉一篇,餘皆章句完善。謹依經文前後,釐爲四卷。 이 책은 세상에서 오랫동안 전하지 않았다. 『문연각서목(文淵閣書目)』에는 1책으로, 초횡(焦竑)의 『경적지(經籍志)』에는 1권으로 되어 있고, 주이존(朱彝尊)의 『경의고(經義考)』는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제 『영락대전(永樂大典)』의 각 운(韻)에서 조목에 따라 모아 보니, 오직 「재재(梓材)」 한 편이 빠졌을 뿐 나머지는 모두 장구가 온전하였다. 삼가 경문의 앞뒤 차례에 따라 4권으로 나누었다.
乾隆四十六年九月恭校上。
總纂官臣紀昀、臣陸錫熊、臣孫士毅
總校官臣陸費墀
건륭(乾隆) 46년(1781) 9월 삼가 교정하여 올림.
총찬관(總纂官) 신 기윤(紀昀)·신 육석웅(陸錫熊)·신 손사의(孫士毅)
총교관(總校官) 신 육비지(陸費墀)

용어사전

'범위'가 '일반'인 항목은 일반 정의이고, '본문'인 항목은 이 텍스트 단위에 한정된 정의이다. 경문 구절은 해당 편의 원문을 맥락란에 병기하였다.

유형 표제어 독음 범위 정의 본문 맥락
Record 五誥解 오고해 일반 남송 양간의 『상서』 주석서, 4권. 「주서」 가운데 「강고」·「주고」·「재재」·「소고」·「낙고」 다섯 편을 풀이하였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영락대전』에서 집일하였다. 「재재」 한 편이 빠져 현존본은 네 편이다.
Person 楊簡 양간 일반 남송의 학자(1141~1226, 일설 1225). 자는 경중(敬仲), 호는 자호(慈湖). 명주 자계 사람으로 육구연의 대표적 제자이다. 『자호유서』, 『양씨역전』, 『자호시전』 등이 있다. 『오고해』의 저자. 전시(錢時)의 스승.
Record 慈湖易詩二傳 자호역시이전 본문 양간의 『역』 주석(사고전서에는 『양씨역전(楊氏易傳)』으로 수록)과 『자호시전(慈湖詩傳)』. '已著録'은 사고전서에 이미 수록하였다는 뜻.
Person 韓愈 한유 일반 당의 문인·사상가(768~824). 자는 퇴지(退之). 고문운동을 이끌었다. '周誥殷盤,佶屈聱牙'는 그의 「진학해(進學解)」에 나오는 말.
Concept 周誥殷盤 주고은반 일반 『상서』 「주서」의 여러 고(誥)와 「상서」의 「반경(盤庚)」. 『상서』 가운데 가장 난해한 글들을 대표하는 말이다. 오고(五誥)가 난해한 글이라 먼저 풀이했다는 논거로 인용됨.
Concept 佶屈聱牙 길굴오아 일반 문구가 꼬이고 읽기에 껄끄러워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 주고·은반의 문체에 대한 한유의 평.
Person 呂祖謙 여조겸 일반 남송의 학자(1137~1181). 자는 백공(伯恭), 호는 동래(東萊). 주희·장식과 함께 '동남삼현'으로 불렸다. 그의 『서설』이 주서의 고부터 풀이한 선례로 거론됨. 제요 원문은 '吕'으로 씀.
Record 書說 서설 본문 여조겸의 『동래서설(東萊書說)』. 여조겸이 주서 뒷부분부터 강해했고, 문인 시란(時瀾)이 보충해 완성했다고 전한다. '先釋周誥,而後及虞、夏、商書'의 예. 제요 원문은 '書説'.
Person 陸九淵 육구연 일반 남송의 사상가(1139~1192).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象山). '심즉리(心卽理)'를 내세운 심학의 창시자이다. 양간의 스승.
Concept 新民保赤 신민보적 본문 「강고」의 '作新民'(백성을 새롭게 진작함)과 '若保赤子'(갓난아이 보호하듯 함)에서 나온 말. 백성을 교화하고 돌보는 정치를 뜻한다. 양간이 이를 즐겨 거론하며 심학에 근본을 두었다는 평가. 두 구절 모두 오고해의 대상인 「강고」에 있다.
Concept 心學 심학 일반 도덕과 정치의 근본을 마음에서 찾는 학문. 남송에서는 육구연 계열을 가리킨다. 양간 해석의 사상적 기반.
Record 字說 자설 일반 북송 왕안석(王安石)의 자서(字書), 24권. 글자를 회의(會意)적으로 분해해 뜻을 풀어 견강부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字説》盛行之後,喜穿鑿字義'는 양간의 자의 천착을 이 풍조와 연결한 평가. 제요 원문은 '字説'.
Concept 穿鑿字義 천착자의 본문 글자의 뜻을 억지로 파고들어 끌어다 붙임. 양간의 해석 방법에 대한 사고관의 비판.
Concept 惠不惠懋不懋 혜불혜무불무 본문 「강고」의 구절. 순하지 않은 자를 순하게 하고, 힘쓰지 않는 자를 힘쓰게 한다는 뜻. 양간은 이 구절의 무게를 임금 자신에게 두었다(歸重於君身). 제요 원문은 '恵'.
Concept 服念旬時 복념순시 본문 「강고」 '要囚,服念五六日,至于旬時'의 일부. 옥사를 판결하기 전에 깊이 숙고한다는 뜻. 공전은 '旬'을 열흘, '時'를 석 달로 풀었는데, 양간은 석 달이 지나치게 길다고 의심함.
Person 孔安國 공안국 일반 전한의 경학자. 공자의 후손. '孔傳'은 통행본 『상서』의 공전으로, 동진 매색이 바친 위공전(僞孔傳)임.
Record 酒誥 주고 일반 「주서」의 편명. 강숙에게 음주를 경계하도록 훈계한 글. 오고해의 대상 편.
Concept 厥心疾很 궐심질흔 본문 「주고」의 구절. 그 마음이 병들고 사납다는 뜻. 경문에서는 주(紂) 곧 '後嗣王'의 상태를 서술하는 맥락이다. 양간은 '厥心'을 백성의 마음으로 봄. 제요 원문은 '疾狠'.
Record 召誥 소고 일반 「주서」의 편명. 낙읍을 경영할 때 소공(召公)이 성왕에게 덕을 공경하고 천명을 보전하라고 권한 글. 오고해의 대상 편.
Concept 民碞 민암 본문 「소고」 '顧畏于民碞'의 일부. '碞'은 '巖'과 같아 험준함을 뜻한다. 양간은 "백성은 어리석으면서도 신묘하니 험준한 바위처럼 두려워할 만하다"로 풂.
Record 洛誥 낙고 일반 「주서」의 편명. 낙읍 경영을 두고 주공과 성왕이 주고받은 말을 기록하였다. 오고해의 대상 편. '公無困哉'·'先卜黎水'·'復子明辟'이 이 편의 구절.
Concept 公無困哉 공무곤재 본문 「낙고」 '公無困哉,我惟無斁其康事'의 일부. 양간은 '困'을 곤궁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다 싫증 남(倦勤)의 뜻으로 봄.
Concept 先卜黎水 선복여수 본문 「낙고」 '我卜河朔黎水'에서 나온 말. 낙읍 터를 정하기 전에 먼저 황하 북쪽 여수에서 점쳤다는 것. 양간은 정현·고표의 설을 따름.
Person 鄭玄 정현 일반 후한의 경학자(127~200). 자는 강성(康成). 제요에는 '鄭康成'.
Person 顧彪 고표 일반 수(隋)의 경학자. 『상서』 의소(義疏)를 지었다고 전한다. '先卜黎水' 해석에서 정현과 함께 근거로 쓰임.
Person 康叔 강숙 일반 주 무왕의 아우로 이름은 봉(封). 위(衛)나라의 시조. 강숙을 봉할 때 아직 낙읍을 경영하지 않았다는 소식의 설을 양간이 따름.
Place 洛邑 낙읍 일반 주공이 건설한 동도(東都). 지금의 허난성 뤄양 일대. '封康叔時未營洛邑'.
Record 書傳(蘇氏) 서전 일반 소식(蘇軾, 1037~1101)의 『동파서전(東坡書傳)』, 13권. 강숙 분봉 시기에 대한 설의 출처.
Concept 復子明辟 복자명벽 본문 「낙고」 '朕復子明辟'의 일부. 공전은 '밝은 임금의 정사를 그대(성왕)에게 돌려준다'로 풀었고, 왕안석 계열은 '復'을 '복명(復命)하다'로 풀었다. 양간은 이 구절의 훈고에서 왕씨의 설을 씀.
Concept 圻父薄違 기보박위 본문 「주고」 '圻父薄違,農父若保,宏父定辟'의 일부. 기보(圻父)·농보(農父)·굉보(宏父)는 사마·사도·사공을 가리킨다. 끊어 읽는 위치가 쟁점이며, 양간은 왕씨의 구두를 따름.
Record 書義(王氏) 서의 일반 왕안석(王安石)이 주관한 『상서신의(尚書新義)』. 삼경신의(三經新義)의 하나로, 아들 왕방(王雱)이 집필했다고 전한다. 일실되었다. '復子明辟'의 훈고와 '圻父薄違'의 구두의 출처.
Concept 兼綜羣言 겸종군언 본문 여러 학설을 아울러 종합함. 뒤의 '不専主一家之學'과 짝을 이뤄, 양간이 한 학파에 매이지 않았다고 평가함.
Record 文淵閣書目 문연각서목 일반 명 정통 6년(1441) 양사기(楊士奇) 등이 편찬한 내각 장서 목록. 『오고해』를 1책으로 기록.
Person 焦竑 초횡 일반 명 말의 학자(1540~1620). 자는 약후(弱侯). 그의 『경적지』가 『오고해』를 1권으로 기록.
Record 經籍志(焦竑) 경적지 일반 초횡의 『국사경적지(國史經籍志)』. 『오고해』 1권.
Record 經義考 경의고 일반 청 주이존(朱彝尊, 1629~1709)의 역대 경학 저술 목록·해제서, 300권. 『오고해』를 '未見'으로 기록. 제요 원문은 '朱彛尊'.
Record 永樂大典 영락대전 일반 명 영락 6년(1408)에 완성된 대형 유서, 22,877권. 『홍무정운』의 운 순서로 배열하였다. 각 운에서 조목별로 모아(按條薈萃) 『오고해』를 복원함.
Record 梓材 재재 일반 「주서」의 편명. 다스림을 재목 다루는 일에 비유해 강숙에게 고한 글. 『오고해』에서 유일하게 빠진 편.
Record 康誥 강고 일반 「주서」의 편명. 강숙을 은 유민의 땅에 봉하며 내린 고명. 오고해 다섯 편 가운데 첫 편('康誥以下五篇').
Timespan 乾隆 건륭 일반 청 고종의 연호(1736~1795). 건륭 46년(1781) 9월 교상.
Grammar 謹案 근안 일반 '삼가 살피건대'. 상주 고증문·제요의 첫머리 투식. '臣等謹案'.
Grammar 蓋~則~ 개~즉~ 일반 '대개 ~하면 곧 ~하다'. 근거와 그에 따른 결과를 이끈다. '蓋先通其難通者,則其餘易於究尋'.
Grammar 推本於~ 추본어~ 일반 '~에서 근본을 미루어 찾다'. '推本於心學'.
Grammar 歸重於~ 귀중어~ 일반 '무게(중점)를 ~에 돌리다'. '歸重於君身'.
Grammar 至如~ 지여~ 일반 '~과 같은 경우에 이르러서는'. 앞의 논의와 구별되는 사례를 이끈다. 자득의 설에서 선설 채택으로 넘어가는 전환점.
Grammar 用~之説 용~지설 일반 '~의 설을 쓰다(채택하다)'. 정현·고표, 소씨, 왕씨의 설 채택에서 반복됨.
Grammar 釐爲 이위 일반 '정리하여 ~으로 나누다'. 권수를 확정하는 투식. '釐爲四卷'.

『융당서해』와의 비교

『오고해』와 『융당서해』는 스승과 제자가 남긴 『상서』 주석이다. 육구연의 고제 양간과, 양간에게 배운 전시의 저작이다. 두 책은 같은 사고관의 손으로 『영락대전』에서 복원되었고, 제요도 같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사고관의 평가와 두 책의 체재는 뚜렷이 다르다.

개관

항목 『오고해』(양간) 『융당서해』(전시)
권수 4권 20권
범위 「강고」 이하 다섯 고(誥)만 풀이 『상서』 전편 + 「서서」
결락 「재재」 1편 「이훈」·「재재」·「진서」 3편 전편, 「열명」·「여형」 부분
『경의고』 未見 未見(8권으로 기록)
제요 교상 건륭 46년(1781) 9월 취진판 건륭 39년(1774) 10월, 사고전서본 건륭 45년(1780) 5월
사고관의 총평 심학에 근본하고 『자설』 풍의 천착이 있으며 말이 에둘러 시원하지 못하나, 군데군데 자득의 설이 있음 당대의 주소 묵수와 송대의 천착을 모두 피하고 좋은 설을 가려 따름. "송인 경해 가운데 보기 드문 책"
원용한 선설 정현·고표, 소식 『서전』, 왕안석 『서의』 마융·정현(『경전석문』 등 경유), 소식, 공전, 장구성 『서설』

비교의 요점

  • 같은 평가 문형, 다른 평가. 두 제요는 모두 "自抒心得"과 "不專主一家之學"이라는 같은 문구로 끝맺는다. 그러나 양간 쪽 제요에는 '심학에 근본한다', '천착을 좋아한다', '말이 에둘러 있다'는 단서가 먼저 붙는다. 전시 쪽 제요에는 심학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고, 칭찬만 이어진다. 사고관이 스승의 심학적 색채는 드러내 비판하면서, 제자에 대해서는 그 학통을 언급하지 않고 경학적 성취만 평가한 셈이다.
  • 범위와 방법. 양간은 한유가 말한 '佶屈聱牙'의 주고(周誥)만 골라 풀었다. 전시는 『상서』 전편을 다루면서 「서서」를 표장하는 것을 해석의 축으로 삼았다. 양간이 난문 해결과 자의 분석에 집중했다면, 전시는 편의 성립 배경과 편차라는 텍스트 구조의 문제를 중시하였다.
  • 강숙 분봉과 「강고」 첫 절 — 사제 비교의 핵심 지점. 제요에 따르면 양간은 "강숙을 봉할 때 아직 낙읍을 경영하지 않았다"는 소식의 설을 따랐다. 전시도 「강고」 첫 절의 '周公初基'를 "낙읍을 아직 경영하기 전에 강숙을 봉해 은 유민을 진무한 일"로 보았다. 즉 두 사람은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다만 전시는 이 전제 위에서 첫 절을 「낙고」로 옮기는 착간설을 거부하였고, 사고관은 바로 이 점을 "尤為卓然有見"이라 높이 평가하였다. 소식의 설에서 출발한 전제를 스승이 받아들이고, 제자가 이를 경문 개정 없이 해결하는 방향으로 다듬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책 「강고」 첫머리의 본문을 직접 대조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 공전에 대한 태도. 양간은 「강고」 '服念旬時'에서 공전의 '석 달'을 의심하며 옛 풀이를 바로잡았다. 전시는 강숙의 위 분봉을 성왕 때로 보는 데서 공전을 그대로 따랐다. 두 사람 모두 공전을 일괄적으로 따르거나 버리지 않고 사안별로 판단했다는 점이 공통된다.
  • 왕안석 경학과의 거리. 양간은 『자설』 풍의 천착을 지적받는 동시에, 「낙고」·「주고」의 훈고와 구두에서 왕안석 『서의』를 채택하였다. 전시의 제요에는 왕안석이 보이지 않고, 소식과 장구성이 거론된다. 북송 신학(新學)에 대한 두 사람의 수용 정도를 비교할 수 있는 단서이다.
  • 「재재」의 공통 결락. 두 책 모두 「재재」가 빠져 있다. 우연일 수도 있으나, 『영락대전』에서 「재재」 주석이 실렸던 운 부분이 사고관이 작업할 때 이미 결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영락대전』 잔권의 현존 상황과 대조해 볼 만하다.

함께 번역하는 의의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육구연 → 양간 → 전시로 이어지는 심학 계열의 『상서』학을 하나의 계보로 볼 수 있다. 「강고」·「주고」·「소고」·「낙고」 네 편은 두 책 모두에 주석이 남아 있다. 따라서 같은 경문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해석을 구절 단위로 대조할 수 있다. 특히 강숙 분봉과 「강고」 첫 절, 공전에 대한 태도, 왕안석·소식 설의 수용 양상은 사제 간 계승과 변화를 보여 주는 구체적인 비교 항목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

1차 자료

  • 『융당서해』 권두 사고전서 서전제요(건륭 45년 5월)
  • 「송진서원차장」: 교행간 차자(가희 2년 5월), 만일천 진서장(가희 2년 9월)
  • 섭성(葉盛), 『수동일기(水東日記)』
  • 『송사』 권405 원보전 —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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