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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blue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9월 8일 (토) 21:53 판 (술과의 전쟁 - 영조가 내린 세번의 금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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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와 낭혜화상 무염

성주산문을 일으킨 낭혜화상 무염을 기리기 위해 성주사지에 탑비가 세워졌다.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고 최언위가 비문을 썼는데, .....

세종의 한글 창제와 그 시험작

조선 세종이 1443년 한글을 반포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한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집현전을 창립하여 많은 신진 학자들을 끌어모았다. 한글이 창제된 후에는 한자를 읽는 방식에 대한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 중국의 표준 음운서인 '홍무정운'을 한글로 번역하여 '홍무정운역훈'을 만들었다. 이 것을 바탕으로 조선의 한자 표준 음운서인 '동국정운'을 편찬할 수 있었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왕실의 건국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글 노랫말로 만들어 엮은 책으로, 조선 건국의 신성성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듯 한글의 창제된 직후 편찬된 서적들은 한자의 표준발음 체계를 정립하고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서라는 한글 창제의 목적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조선후기 왕실의 일상 - 숙명공주에게 보낸 안부편지

숙명공주는 조선 효종과 인선왕후의 딸이며, 조선 현종의 누나이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심익현에게 시집을 간 후 부모님, 동생을 비롯하여 할머니인 장렬왕후, 올케인 명성왕후(현종의 아내)와도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이 편지들을 한데 모아 숙명공주의 남편인 심익현가의 후손들이 '숙명신한첩'으로 엮어내었다. 아버지 효종이 아이를 잃은 숙명공주를 위로하고, 오라비인 현종이 숙명공주에게 귤을 보내는 내용까지, 숙명신한첩을 통해 조선 후기 왕실 인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술과의 전쟁 - 영조가 내린 세번의 금주령

조선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 신료들에게 경계해야 할 것 세 가지로 붕당(朋黨), 사치, 술을 제시하였다. 1731년, 1757년, 1762년 총 세 차례에 걸쳐 금주령을 내린다. 첫 번째 내린 금주령을 적은 '계주문'에서는 술이 없을 수는 없다며, 술을 많이 빚지 말라는 내용을 담는다. 그러나 관리들이 잘 따르지 않자, 두번째 금주령을 적은 '어제계주윤음'을 지방의 관리에게 내린다. 이 때는 국가 제사에서도 술을 금지하고, 금주령을 어길 경우 10년의 형벌을 내린다고 선언한다. 더불어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한글로 번역한다. 그러나.. 금주는 힘든 것인가 보다. 1762년 역관들이 모여 술을 마신 일이 발생하자 금주령을 다시 반포하는데,이 때는 지난 번역 버전이 번역체 문장라 백성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라 판단해, 처음부터 내용을 한글로 작성한다. 즉 영조의 금주령 전개과정은 (본인은 답답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한글이 한자의 보조적 문자에서 독자적인 문자로 인정받아 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ps.이렇게 쉽게 썼으면 좀 알아듣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