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은장도노리개
DKHC Edu
| 은장도노리개 | |
| 銀粧刀 노리개 | |
| ckid | costume1026 |
|---|---|
| 한글 | 은장도노리개 |
| 한자 | 銀粧刀 노리개 |
| 영문(음역) | Eun-jang-do-no-ri-gae |
| 영문(의미) | Woman’s pendant |
| 분류 | 장신구 |
| 성별 | 여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왕족, 사대부, 서민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은장도노리개】 | |
정의
- 은장도를 주체(主體)로 만든 노리개
- Pendant with a silver ornamental knife
해설
평복에 차는 노리개의 하나이다. 남녀가 장도를 차는 풍습은 고려가 원(元)나라에 복속한 뒤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는 널리 일반화되었다. 1498년(연산군 4)의 사치금제에서도 서인의 은장도 사용을 금하였으나 잘 시행되지 않아서, 1670년(현종 11)에는 유생 잡직 및 서인남녀 중 은장도 차는 자를 논죄하라고까지 하였다. 이는 금과 은의 사용이 봉건사회에서 상하·존비·귀천을 가리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명나라에 금·은의 공물을 바치지 않기 위한 조처로 취해진 것이었다. 은장도노리개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사용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는 장신구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기도 하였는데,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항상 작은 장도를 지니고 있다가 유사시에 자결 혹은 상대를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부녀자들이 장도를 노리개로 옷고름에 차면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지닌 것은 낭도(囊刀)라 한다. 패도의 크기는 큰 것은 전장 5촌, 도신(칼날) 3촌 정도이고, 작은 것은 전장 3촌, 도신 1.5촌이며, 낭도는 전장 3촌, 도신 1.5촌 크기가 보통이었다. 은장도의 재료는 은이고 도신은 강철이며, 도신에 일편단심이라는 글씨를 문양화하여 새기기도 하였다. 또, 은젓가락이 달려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외부에서 식사하게 되는 경우 젓가락으로 사용하고, 또 음식 중의 독의 유무를 분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참고문헌
- 柳喜卿, 1975, 『한국복식사연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사 【REF0099】
- 이경자.홍나영.장숙환.이미량.한석홍, 2003, 『우리 옷과 장신구』, 서울: 열화당 【REF0176】
도판자료
관련항목
시맨틱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