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민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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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d>Unknown user님의 2024년 1월 7일 (일) 21: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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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자건 | |
| 民字巾 | |
| ckid | costume0803 |
|---|---|
| 한글 | 민자건 |
| 한자 | 民字巾 |
| 영문(음역) | Minjja-geon |
| 영문(의미) | Man’s headdress |
| 분류 | 관모 및 쓰개 |
| 성별 | 남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사대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민자건】 | |
정의
- 중국의 유건을 우리나라에서 부른 명칭
- A term that refers to the Chinese yugeon
해설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7년(1574) 11월에 질정관 조헌이 경사에서 돌아와 올린 상소문 중에 보면, “유건의 이름은 민자건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모양이 민(民)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 제도는 대를 얽어 치포로 싸거나 종이에 풀을 발라 만든 뒤에 옻칠을 하기도 했다. 항상 쓰고서 안개나 빗속에도 그냥 다니는데 우리나라 사인들의 건(巾)처럼 이슬만 맞아도 쳐지는 것과는 다르다. 그 모양도 단정하고 평평하여 그다지 뾰족하거나 경사지지 않았다” 하였다. 또한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 진사 건복조에 “민자건은 뒤가 꼿꼿하게 서서 굽혀지지 않고 위를 조금 굽혀 숙여서 앞면이 되도록 하면 남은 쪽이 양쪽 옆으로 벌어져 귀가 된다. 이 양쪽 귀를 반쯤 접어 넣어 판판하게 하면 ‘民’자의 모양이 되는 까닭에 세속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앞면과 뒷면이 바뀌었으니 해괴한 일이다”라고 하여 조선의 유건은 중국의 유건과 모양이 다름을 적고 있다. 따라서 조선의 유건은 초기에는 중국의 제도와 유사하였을 것이나 광해군대 이전에 이미 중국과는 달라졌으며, 중국의 유건이 ‘민(民)’자 모양이었다고 한다면 조선의 유건은 ‘사(士)’자 모양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강순제, 1986, 「巾制小考」, 『가톨릭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보』, 제7호 【REF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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