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포구락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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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d>Unknown user님의 2024년 1월 7일 (일) 21:5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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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구락복식 | |
| 抛毬樂服飾 | |
| ckid | costume0327 |
|---|---|
| 한글 | 포구락복식 |
| 한자 | 抛毬樂服飾 |
| 영문(음역) | Po-gu-rak |
| 영문(의미) | A typ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
| 분류 | 정재복 |
| 성별 | 남녀공용 |
| 시대 | 고려, 조선 |
| 연령 | 청소년, 성인 |
| 신분 | 무동, 여령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포구락복식】 | |
정의
- 포구문의 동·서편에 채구(彩毬)를 던져 구멍으로 나가게 하는 놀이 형식의 무악(舞樂)
- Dance performed by throwing balls into two open gates placed on the east and west side, also called po-gu game
해설
당악정재로서 출처는 수입된 것으로 고려문종 때 들어왔으며,『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에 “문종 27년(1073) 11월에 신해(辛亥)에 팔관회(八關會)를 차리고 왕이 신봉루(神鳳樓)에 나가 악무(樂舞)를 보았는데 교방(敎坊) 여제자 초영(楚英)이 새로 전래한 포구락과 구장기별기(九張機別伎)를 연주하였다. 포구락 제자 13인, 구장기 제자 10인...”라는 기록이 있으며, 송사(宋史) 권142 악지에 포구락은 153인,『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16인이 추었다고 한다. 송대(宋代) 심괄(沈括)의『몽계필담(夢溪筆談)』에 의하면 중국에서 이 포구 놀이는 민간에서도 많이 유행되었다. 포구락은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연행된 중요 춤의 하나로서 편을 갈라서 춤을 추되, 채구(彩毬)를 풍류안(風流眼)에 넣으면 봉화(奉花)가 삼지화(三枝花)를 주고, 넣지 못할 때는 벌로써 봉필(奉筆)이 점묵(點墨)한다. 무원수가 일정하지 않고 ‘임진왜란(1592)-정조(1880)’ 이후에는 무동의 출현으로 내연(內宴)에서는 여기(女妓)가, 외연(外宴)에서는 무동이 정재공연을 하는 제도가 확립되었다. 순조 무자년(戊子年, 1828) 진찬의궤의 무동은 아광모(砑光帽)를 쓰고, 홍라포(紅羅袍)·백질남선중단의(白質藍縇中單衣)에 남질흑선상(藍質黑縇裳)을 입는다. 녹한삼(綠汗衫)을 매고, 학정대(鶴頂帶)를 띠며, 흑화(黑靴)를 신는다. 고종 신축년(辛丑年, 광무5, 1901) 진찬의궤의 여령복식은 각무정재여령과 동일하다.
참고문헌
- 이미영, 1995, 『조선시대 궁중무용 복식사』, 서울: 다운샘 【REF0177】
- 정은혜 저, 1993, 『정재연구 Ⅰ』, 서울: 대광문화사 【REF0603】
- 이흥구ㆍ손경순 역, 2000, 『조선궁중무용』, 서울: 열화당 【REF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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