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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팀프로젝트 5조 양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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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민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5월 17일 (토) 11: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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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 아우슈비츠 수용소







연구목적 및 필요성

우리 5조는 예술 작품으로 본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연구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개별 프로젝트에서는 홀로코스트 사건의 중심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해 연구하려 한다.

우리 조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연구하는 데 있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중심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우슈비츠는 단순한 수용소를 넘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정책이 가장 집약적으로 실행된 장소이자, 홀로코스트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약 13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중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다.[1] 이처럼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의 구조적 폭력, 인간의 존엄성 파괴, 그리고 기억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수용소를 이해하는 것은 곧 홀로코스트 전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발생하는 혐오와 차별, 집단 폭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아우슈비츠를 예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다.


연구 대상

===아우슈비츠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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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me width="855" height="481" src="https://www.youtube.com/embed/zXAJo-GhbKE" title="인간의 잔혹함의 끝,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

<html>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간으로, 나치 제국이 건설한 수용소 중 가장 대규모의 수용소였다. 여기에는 세 군데의 주요 수용소가 있었는데, 이 수용소들은 모두 수감된 수감자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곳이었다. 아우슈비츠 집단 수용소는 집단 수용소의 감독부 산하기관으로 운영되었다. 1941년부터 1942년 3월까지 집단 수용소 감독부는 SS 본부의 산하기관 및 SS 작전 본부 산하기관이었다. 1942년 3월부터 아우슈비츠가 해방될 때까지 감독부는 SS 경제-관리 부처의 산하기관이었다.[2] 각각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들과 부속 수용소들의 총 3가지의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첫째, 나치 통치에 실질적인 절대 세력이거나 잠재적인 적대 세력으로 의심되는 자들을 감금하기 위하여. 둘째, SS 부대 소유의 건설 관련 사업, 추후에는 군사 장비 및 전쟁 관련 물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하여. 셋째, SS와 경찰, 나치 독일이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낙인 찍은 소수의 집단을 제거하기 위하여.


아우슈비츠 제 1호

아우슈비츠의 가장 중요한 수용소에 해당하는 곳으로, 제 1호는 오슈비엥침 시 외곽에서 구 폴란드 군막사를 개조해 1940년에 건설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폴란드 정치범 수용소로 운영되었으나, 이후에는 SS본부, 멩겔레 사무실 등 행정 본부의 기능을 수행했고, 크레마토리움1이라는 초기 가스실 시험이 운용되었으며, 멩겔레 의사에 의해 잔인한 의학 실험이 진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죽음의 벽'이라는 곳에서 총살을 하는 등 고문과 처형도 자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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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BEIT MACHT F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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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입구에 있던 문구



아우슈비츠 제 2호

시체소각실[5]

아우슈비츠 제2호의 다른 이름은 아이슈비츠-비르케나우로, 첫번째 수용소에서 약 3km 떨어진 비르케나우에서 1041년부터 건설되었다. 이 곳에서는 최대 규모의 가스실과 크레마토리움 4기가 운영되었으며, 집단학살이 주로 발생했다. 유대인, 집시, 여성/아이, 노약자들이 선별의 과정을 거쳐 가스실로 이동되었으며, 1944년에는 유대인 40만명이 이 곳에서 살해되었다. 이곳은 최대 규모의 수용소로, 여성 구역, 집시 가족 구역, 수용자 병원, 가스실 등의 다양한 공간 분리가 이루어졌다. 특히나 선로가 캠프 안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도착 후 바로 선별하고 선별 즉시 가스실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대량 학살 시스템이 손쉽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즉, 이곳은 아우슈비츠 전체 학살의 심장부의 기능을 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 제 3호

제3수용소-[6]

부나 또는 모노비츠라고도 불리우는 아우슈비츠 3호는 폴란드 모노비체 외곽에 위치한 부나 합성 고무 공장에서 일할 수감자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42년 10월에 건설되었다. 아우슈비츠 3호는 인근 독일 화학 기업인 IG Farben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이 곳에서 수용자들은 하루 12-14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으니 제대로 된 노동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영양 부족, 질병, 혹한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사망에 이르렀다. 또한, 노동력 착취를 위해 건설된 수용소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 즉시 선별 후 처형당하거나 제2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이 외에도, 수십 개의 부속 수용소들이 존재했는데, 이는 나치와 독일 산업계가 지역 곳곳에서 수용자들을 유동성 인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Jawischowitz, Gleiwitz, Budzyn, Trzebinia 등의 지역에서 탄광, 공업, 전쟁 산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수용자들에게 극한의 노동을 시키며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희생자가 되었는가?

인종별로 보자면, 가장 많은 수의 희생자는 단연 유대인이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7]'이라는 나치의 계획 하에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기 위해 운영된 주요 수용소 중 하나였다. 유럽 전역에서 강제 이송된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강제노동, 굶주림,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로마인(집시)들도 유대인과 비슷하게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되어 박해당했는데, 아우슈비츠에는 집시 가족 수용소가 따로 있었으며 이들 또한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 폴란드계 사람들은 특히나 지식인, 종교인 정치 저항자들이 타겟이 되었다. 나치 독일의 식민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잔혹한 통치를 받았으며, 수많은 폴란드 민간인들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이 외에도, 나치의 '사회적 순수성' 정채에 따라 동성애자, 장애인, 여호와의 증인들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동성애자는 강제노동, 고문, 의학 실험의 대상이 되며 강하게 탄압받았다.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은 즉시 '선별'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선별은 SS 의사나 장교들이 육안으로 보며, 대체로 성인 남성들이 해당되었던 노동 가능자로 판단되면 살아남아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을 하며 고문 당하고, 대체로 여성과 아이, 노인등이 속했던 노동 불가능자로 판단되면 곧바로 가스실로 보내지는 과정을 일컫는다. 여성과 아이들 중 일부는 의학 실험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 실험을 주도했던 사람이 요제프 멩겔레이다.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멩겔레는, 특히 쌍둥이, 장애아, 난쟁이, 로마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비인도적인 실험을 자행했다. 쌍둥이 실험, 눈 색깔 실험, 절단/접합 실험, 불임 실험 등을 통해 수많은 희생자들을 끔찍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외에도 안락사 프로그램, 가스 밴, 집단 학살 수용소, 집단 수용소에서 가스 학살의 방법을 통해 수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아우슈비츠는 어떻게 해방되었는가?



시맨틱 네트워크 그래프





연구결과

* 시맨틱 데이터 구축 및 디지털 큐레이션을 하면서 도출한 사항을 기술
** 사실적인 관계와 사실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 추정 등
** 시맨틱 데이터 구축 시 중점적으로 고려한 사항 등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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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및 문헌




신문기사 및 사이트




주석

  1. [1]
  2.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auschwitz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아우슈비츠
  3. 사진출처: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auschwitz
  4. 사진출처:By xiquinhosilva - https://www.flickr.com/photos/xiquinho/16380127035/,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6102385
  5. -사진출처:By <a href="//commons.wikimedia.org/wiki/User:Sfu" title="User:Sfu">Marcin Białek</a> - 자작,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title="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3.0">CC BY-SA 3.0</a>, <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470481">링크</a>
  6. 사진출처: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auschwitz
  7. 최종 해결책은 나치가 유대인을 전멸하려는 계획을 완곡하게 돌려 표현하는 용어이다.
  8. 사진출처:By Unknown, i.e. either Bernhard Walther or Ernst Hofmann or Karl-Friedrich Höcker - USHMM,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4059687
  9. 사진출처:https://www.joongang.co.kr/article/4945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