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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3일 (월) 05:03 판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Twin Lion Stone Lantern at Yeongamsa Temple Site, Hapcheon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영문명칭 Twin Lion Stone Lantern at Yeongamsa Temple Site, Hapcheon
한자 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59
지정번호 보물 제353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석등은 등불을 안치하는 것으로, 주로 불전(佛殿) 앞에 세워두는 석조물이다. 영암사터의 쌍사자석등은 1933년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다가, 1959년에 주민들이 영암사터에 새로 암자를 지어 삼층석탑과 나란히 두었다고 한다. 이후 1984년의 발굴조사에서 현재의 원위치가 확인되어 제자리로 옮겨졌다.

이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 상대석(上臺石), 중대석(中臺石), 하대석(下臺石)의 3단 받침돌을 두고, 위에 지붕돌[屋蓋石]을 얹었다. 중대석은 사자 두 마리가 마주보고 상대석을 받치고, 뒷발은 하대석의 상단 괴임석을 딛고 있는 형태이다. 화사석은 팔각으로 4면에는 사각형의 불창[火窓]을 4면에 뚫고,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돋을새김하였다. 불창의 가장자리에는 못구멍이 5~10개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창호(窓戶)를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쌍사자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영암사터의 쌍사자석등은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보다는 늦은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석등은 불전에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 세우는 구조물이다. 보통 주불전이나 불탑 앞에 세워진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경 영암사가 창건될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3년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가회면사무소에 보관하다가, 1959년 영암사터에 새로 암자를 짓고 삼층석탑과 나란히 두었다고 한다. 1984년 발굴조사를 통해 원래의 자리가 확인되면서 금당지 앞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석등은 팔각형의 바닥돌, 연꽃이 조각된 원형의 받침돌, 사자의 형상을 한 기둥, 네 곳에 창이 뚫린 화사석,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장식은 사라졌다.

중간 기둥은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뒷발로 아래 받침돌을 딛고 서서 앞발로 윗 받침돌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사자의 두 다리 부분은 절단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화사석의 창 사이에는 사천왕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은 원래 고대 인도의 신이었는데, 석가모니불에 귀의한 후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 上(경상남도)』, 문화재청, 2019 pp.500-521 -> 사적 제131호 합천 영암사지는 1984년부터 2018년까지 6차례의 발굴조사와 2차례의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 사자의 두 다리가 절단되었으나 복원하면서 접합되었고,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 (10) 합천 영암사지는 폐사지 답사 일번지, 시니어매일, 2020.5.13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12->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은 1945년 광복 이후 문교부에서 국보 제531호로 지정했지만, 1963년에 다시 사정하면서 사자 다리가 부러져 있었던 이유를 들어 보물로 격하했다. 이 쌍사자석등은 1933년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반출하려던 것을 주민들이 막아 가회면사무소에 보관했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는데 당시 반출하기 위해 석등의 사자 다리를 절단하였다고 한다.
  •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803530000&pageNo=1_1_1_1 ->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당시 호국사상의 목적아래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붕돌은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