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천전리 추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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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2016

의성김씨 추파(楸坡) 김정락(金貞洛)과 그의 아들 김병식(金秉植)이 살았던 집이다. 보물 제450호인 천전리 의성김씨종택 안에 건립되었으나, 후대에 종택에서 분가하였다고 한다. 현존 건물의 건립연대는 건축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1850년대 이후로 추정되며 최근 몇 차례 보수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자형 기와집이나 건물의 크기가 작고, 형태 또한 일반 ‘口’자형과는 다르며, 마당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행랑채가 부속되어 있다. 의성김씨의 전통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다. 또한 19세기 건립 당시의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김병식은 1907년 안동지역 근대교육의 출발점으로 천전에 설립된 협동학교의 교사와 교장(1911년)을 지낸 바가 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022

이 주택은 의성김씨 추파(楸坡) 김정락(金貞洛)과 그의 아들 김병식(金秉植)이 살았던 집이다. 보물 제450호인 천전리 의성김씨 종택 안에 건립되었으나, 후대에 종택에서 분가하였다고 한다. 현존 건물의 건립연대는 건축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1850년대 이후로 추정되며 최근 몇 차례 보수하였다고 한다.

이 주택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자형 기와집이나 건물의 규모가 작고, 형태 또한 일반 ‘口’자형과는 다르며, 마당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행랑채가 부속되어 있다. 이 가옥은 위치상 의성김씨의 전통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어 문화적 가치를 가지며 19세기 건립 당시의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김병식은 1907년 안동지역 근대교육의 출발점으로 천전에 설립된 협동학교의 교사와 교장(1911년)을 역임한 바 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추파고택은 의성김씨 가문의 추파 김정락(楸坡 金貞洛, 1830~1893)과 그의 아들이었던 독립운동가 김병식(金秉植, 1856~1936)이 대를 이어 살았던 살림집이다. 이 집이 위치한 천전리는 14세기 말 김만근(金萬謹, 1446~1550)이 입향하면서 의성김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850년 이후로 추정되며, 후대에 몇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제450호) 안에 지어졌었는데, 후에 종손의 동생이었던 김정락이 분가하면서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집은 ‘ㄷ’자형의 몸채,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된 사랑채와 중문간채, 바깥마당에 딸려 있는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중문 왼편에 있는 사랑채 전면에는 낮은 난간을 세운 툇마루를 덧달았다. 사랑채에 접한 왼쪽 날개채에는 벽감을 시설한 감실이 있고, 안방과 이어진 오른쪽 날개채에 부엌이 있다.

추파고택은 19세기 건립 당시의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의성김씨 구성원들이 살았던 전통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어 문화적 가치가 있다.

  • 분가 시점, 행랑채 건립 시기 알 수 없음.
  • '최근의 보수' 시점이 애매함 ; 2009년 보수중인 사진이 게시되어 있는 블로그가 있으나, 가장 최근의 보수인지는 알 수 없음
  • 김정락은 의성김씨 종손의 동생이었다. / 김병식은 1907년 안동에 세워진 근대 교육 기관 협동학교(協同學校)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바 있으며, 이후에도 독립운동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차 수정

추파고택은 의성김씨 가문의 추파 김정락(楸坡 金貞洛, 1830~1893)과 그의 아들인 독립운동가 김병식(金秉植, 1856~1936)이 살았던 집이다. 김병식은 1907년에 설립된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협동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추파고택이 위치한 천전리는 14세기 말 김만근(金萬謹, 1446~1550)이 정착한 뒤로 의성김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19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되며 후대에 몇 차례 보수를 거쳤다. 처음에는 의성김씨 종택(보물) 안에 지어졌는데, 후에 종손의 동생이었던 김정락이 분가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집은 ‘ㄷ’자형의 몸채,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된 사랑채와 중문간채, 바깥마당에 딸린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중문 왼편에 있는 사랑채 전면에는 낮은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덧달았다. 19세기 건립 당시의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의성김씨 문중의 전통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어 문화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