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향영역(안동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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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영역
Goto.png 종합안내판: 안동 병산서원



해설문

기존 국문

제향 영역은 향사를 지내는 공간과 이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서애 류성룡(1542~1607)과 그의 셋째 아들이자 제자인 수암 류진(修巖 柳袗 1582~1635)의 위판을 모신 존덕사(尊德祠)가 있다. 류진이 이곳에 추가로 배향된 것은 현종 3년(1662)이다.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며 위엄을 갖추어야 하기에 내삼문의 좌우로는 담장을 둘렀다. 경사진 지형에 서원을 짓고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또한 강학 공간은 선비 정신에 따라 검소하고 단아하게 꾸민 데 비해, 제향공간은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으로 장식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전사청(典祀廳)을 제사를 지내기 전날에 제수를 보관하던 곳으로, 평상시에는 제기와 제구를 보관한다. 사당과 같은 울타리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서원의 전사청은 별도의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의 동쪽에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음력 1일~10일 사이의 날 중 천간이 정(丁)으로 된 날에 향사를 지낸다.

수정 국문

초고

제향 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이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존덕사를 중심으로 내삼문과 전사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덕사는 제향의 핵심 영역으로 유성룡과 그 아들 유진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내부의 북쪽 벽에 주향(主享)인 유성룡을 모셨고 동쪽 벽에 종향(從享)인 유진을 모셨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순에 제사를 지냈다. 존덕사는 신성한 공간이므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두었으며 주변에 담장을 둘러 보호하였다.

내삼문은 존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 있다. 내삼문을 경계로 임원과 학생의 공간도 나뉜다. 제사를 주관하는 임원은 내삼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학생들은 내삼문 밖에서 제사를 참관했다.

전사청은 사당에 올리는 음식과 제기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보통 사당과 한 울타리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산서원은 사당인 존덕사와 전사청이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었다. 제사에 올리는 음식을 철저히 지휘 감독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1차 수정

제향영역은 제사를 지내고 이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을 구분하는 입구인 내삼문, 사당인 존덕사(尊德祠), 제사 음식과 제기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덕사에는 류성룡과 류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순에 제사를 지낸다.

위패를 모신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므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또한 입구인 내삼문에는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 주변에 담장을 둘러 제향영역을 보호하였다. 내삼문을 경계로 임원과 학생의 공간도 나뉜다. 제사를 주관하는 임원은 내삼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학생들은 내삼문 밖에서 제사를 참관했다.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은 보통 사당과 한 울타리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병산서원의 전사청은 별도의 담장을 둘러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었다. 제사에 올리는 음식을 철저히 지휘 감독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