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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장유물이 발견된 시점과 계기 확인 필요. 복장유물들이 현재 소장되어 있는 곳 확인 필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는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고만 하였음.
 
* 복장유물이 발견된 시점과 계기 확인 필요. 복장유물들이 현재 소장되어 있는 곳 확인 필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는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고만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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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왕사 목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이 앉아있는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의 제작 시기는 알 수 없고, 이곳 수왕사에서 줄곧 모셔온 불상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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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왼손이 사라져 정확한 손모양은 알 수 없지만, 오른손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선은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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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불상 내부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의 경전류와 다라니, 후령통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의 내력을 적은 발원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복장유물들은 ***에서 보관하고 있다. ''''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5월 13일 (목) 01:30 판


완주 수왕사 목조여래좌상과 복장유물
완주 수왕사 목조여래좌상과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완주 수왕사 목조여래좌상과 복장유물
한자 完州 水王寺 木造如來坐像과 腹藏遺物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246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6호
지정일 2018년 3월 9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건 일괄(7점)
웹사이트 완주 수왕사 목조여래좌상과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수왕사의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을 나타낸 것이다.

불상의 왼손이 사라져 정확한 손모양은 알 수 없지만, 오른손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선은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불상 내부에서 불교 경전류와 다라니, 후령통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의 내력을 적은 발원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불상은 수왕사에서 줄곧 모셔온 것이라고 전하나, 실제로는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사찰이 중창되었을 때인 17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왕사는 고구려 보장왕 때 백제로 망명한 보덕(普德)이 680년(문무왕 20)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선조 37년(1604)에 승려 일옥(一玉, 1562-1633)이 중창한 바 있으며,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당시 공비[빨치산]를 토벌할 때 불에 타 사라졌던 절을 1953년에 다시 지었다. 예로부터 피부병이나 신경통·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석간수가 흘러나와 본래 ‘물왕이절’ 또는 ‘무량이절’이라고 불렀으나 한자로 옮기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 복장유물이 발견된 시점 및 계기 확인 불가
  • 문화재청 사진은 왼손이 없는 불상임. 불상이 복원된 것인지, 대웅전에 소장되어 있는 불상(석가모니불이라고 설명되어 있음)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맞는지 등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함.
  •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와 송죽오곡주(松竹五穀酒)는 수왕사의 전통주로서 승려들이 고산병과 편식을 막기 위해 즐겨 마셨다고 한다.

1차 수정

수왕사 목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이 앉아있는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의 제작 시기는 알 수 없고, 이곳 수왕사에서 줄곧 모셔온 불상이라고 전한다.

불상의 왼손이 사라져 정확한 손모양은 알 수 없지만, 오른손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선은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0000년 불상 내부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의 경전류와 다라니, 후령통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의 내력을 적은 발원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복장유물들은 000에서 보관하고 있다.


  • 문화재 지정 후 불상이 보수되었는지 (특히 왼손 부분) 확인 필요.
  • 복장유물이 발견된 시점과 계기 확인 필요. 복장유물들이 현재 소장되어 있는 곳 확인 필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는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고만 하였음.

자문의견

2차 수정

수왕사 목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이 앉아있는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의 제작 시기는 알 수 없고, 이곳 수왕사에서 줄곧 모셔온 불상이라고 전한다.

불상의 왼손이 사라져 정확한 손모양은 알 수 없지만, 오른손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선은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년' 불상 내부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의 경전류와 다라니, 후령통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의 내력을 적은 발원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복장유물들은 ***에서 보관하고 있다. '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완주_수왕사 Place 완주_수왕사
정유재란 Event 정유재란(1597)
보덕 Actor 보덕(普德)
일옥 Actor 일옥(一玉,_1562-1633)
한국전쟁 Event 한국전쟁(1951)
물왕이절 Concept 물왕이절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 Object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_복장유물 Object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_복장유물
송화백일주 Object 송화백일주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 완주_수왕사 currentLocation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_복장유물 완주_수왕사 currentLocation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_복장유물 완주_수왕사_목조여래좌상 isRelatedTo
완주_수왕사 보덕 founder
완주_수왕사 일옥 renovator
완주_수왕사 정유재란 isDamagedBy
완주_수왕사 한국전쟁 isDamagedBy
완주_수왕사 물왕이절 hasOldName
송화백일주 완주_수왕사 isRelatedTo


참고자료

  • 완주 수왕사 목조여래좌상과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502560000&pageNo=1_1_1_1 → 완주군 수왕사의 목조여래좌상이다. 사중의 전언에 의하면 이 곳 수왕사에서 줄곧 모셔온 불상이라고 한다. 수왕사에서 발견된 ‘수왕암(水王庵)’명 기와에는 강희(康熙) 25년, 즉 1686년의 제작연대가 있어 수왕사의 연혁을 살피는데 도움을 준다. 불상 내부에서는 각종 경전과 다라니,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불상조성 발원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복장물은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데, 복장유물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제1, 『선문염송(禪門拈誦)』 권제26, 27,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권제4, 『선원제전집도서서(禪源諸詮集都序敍)』 등 경전류와 다라니, 그리고 후령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 수왕사, 디지털완주문화대전 http://wanju.grandculture.net/wanju/toc/GC07000910 → 수왕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고구려 보장왕 때 백제로 망명한 보덕(普德)이 680년(문무왕 20)에 수도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본래 ‘물왕이절’ 또는 ‘무량이절’이라고 불렀으나 한자로 옮기면서 현재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 1125년(인종 3)에 숙종[1095~1105]의 넷째 아들인 징엄(澄嚴)이 중창했고,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4년(선조 37)에 일옥(一玉)[1562~1633]이 중창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공비[빨치산]를 토벌할 때 5칸짜리 인법당, 산신각, 조사전 등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953년에 석진(錫辰)이 중건했다.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벽안 스님이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모악산 입구에서 수왕사까지는 약 2㎞ 정도의 거리이다. 수왕사는 매년 음력 10월 28일은 진묵대사[1562~1633]의 열반제를 지낸다. 초파일 연등행사 및 기도발원을 시행한다. 수왕사의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진묵영당(震默影堂)·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석가모니불상이 전한다. 석가모니불상은 현재 대웅전에 있는데, 절을 창건할 때부터 있었다고 하나 일옥이 중창할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묵영당 옆 바위틈에서는 예로부터 피부병이나 신경통·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수왕사약지(水王寺略誌)』에는 이 약수가 옛날 선녀가 마시던 물로 나온다. 또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신라 진덕여왕 때 영희(靈熙)와 영조(靈照)가 수도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이 약수로 곡차를 빚어 마셨다고도 한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와 송죽오곡주(松竹五穀酒)는 수왕사의 전통주로서 승려들이 고산병과 편식을 막기 위해 즐겨 마셨다고 한다. 1994년 8월 수왕사의 주지 벽암(碧岩)이 민속주 명인 제1호로 지정된 바 있으며, 현재는 외부 판매를 위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벽암 스님이 주지이며, 신도는 약 100여 명 내외다. 한편 요사채 뒤쪽 바위에는 ‘’무량굴(無量窟)’이라는 암각서(巖刻書)가 있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 유학자로서 전국 명승지를 유람하며 바위에 글씨 새기기를 즐겼다는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1874~1948]의 글씨라고 한다. 수왕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향토술담그기[송화백일주]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4호로, 2018년에 3월에 완주 수왕사목조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 전북완주여행, 모악산 중턱이 있는 허름한 사찰 ‘수왕사’, 국내여행 맛집전문 여행중독의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2017.5.25. https://blog.naver.com/seosanpark/221013443956 → 법당(대웅전) 내 불상 사진 있는데, ‘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본존불의 얼굴도 문화재청의 공식사진(왼손 없음)과 다른 것으로 보임. 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혹시 박물관으로 옮겨진 건지) 확인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