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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구룡암 사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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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13일 (목) 01:31 판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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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구룡암 사법어
완주 구룡암 사법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완주 구룡암 사법어
한자 完州 九龍庵 四法語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산67-1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63호
지정일 2019년 12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권 1책
웹사이트 완주 구룡암 사법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사법어(四法語)』는 조선시대의 승려 혜각 신미(慧覺 信眉, 1403-1480)가 중국 및 고려 고승들이 불교의 정법을 설명한 법어(法語) 네 편을 모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것이다.

모두 10장 정도의 분량으로,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불교 경전의 국역과 간행사업을 위해 설치된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과 같은 책의 뒷부분에 합철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법어에 구결을 달아 원문을 먼저 싣고 번역을 보이는 체재로 되어 있다.

판본에 따라 출입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네 편이 중심이 된다. 네 편 모두 13세기 중국 원나라의 임제종을 대표하는 고승인 몽산화상 덕이(蒙山和尙 德異, 1231-1308 추정)와 관계되어 있다.

구룡암에 소장되어 있는 『사법어』는 1562년 간행된 언해본으로, 동일본이 발견되거나 소개된 사실이 없는 유일한 판본이다. 중종 12년(1517) 충청도 연산의 고운사(孤韻寺)에서 중간(重刊)한 것을 저본으로 삼아 복각한 것으로 추정되며, 앞표지에 묵으로 '법어'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 환산 정응선사 시 몽산 법어(皖山 正凝禪師 示 蒙山 法語) : 정응선사(正凝禪師)가 몽산 덕이에게 무자(無字) 화두를 열심히 탐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내용.
  • 동산 숭장주 송자 행각 법어(東山 崇藏主 送子 行脚 法語) : 숭장주(崇藏主)가 행각(行脚)을 떠나는 제자에게 깨달음을 완성해 가라고 당부한 글
  • 몽산화상 시 중(蒙山和尙 示 衆) : 몽산 덕이가 대중에게 행한 설법
  • 고담화상 법어(古潭和尙 法語) : 고려 수선사(修禪社) 10세(世) 사주(社主)인 혜감국사(慧鑑國師) 만항(萬恒, 1249-1319)의 설법.(만항에게 아호(雅號)인 고담(古潭)을 지어 준 사람도 몽산 덕이라고 함.)
  • 이 책의 여러 판본은 국어사자료로 이용된다.

1차 수정

『사법어』는 고승 4인의 법어(法語), 즉 부처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에 대해 설명한 글을 조선시대의 승려 신미(信眉, 1403~1480)가 모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사법어』는 한문본 30종과 언해본 10종 등 40여 종이 전한다. 판본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래 네 편이 중심이 된다.

  •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 정응선사(正凝禪師)가 몽산화상 덕이(蒙山和尙 德異)에게 무자(無字) 화두를 열심히 탐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내용.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 숭장주(崇藏主)가 행각(行脚)을 떠나는 제자에게 깨달음을 완성해 가라고 당부한 글.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 덕이가 대중에게 행한 설법
  •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 고려시대의 승려인 혜감국사 만항(慧鑑國師 萬恒, 1249~1319)의 설법.

구룡암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법어』는 1562년 간행된 언해본으로, 동일본이 발견되거나 소개된 사실이 없는 유일한 판본이다. 1467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최초의 한글 판본과 비교할 때, 편찬체제가 다르고 훈민정음의 표기법이 달라 조선시대 불서 간행과 중세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자문의견

2차 수정

『사법어』는 고승 4인의 법어(法語), 즉 부처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에 대한 글을 조선시대의 승려 신미(信眉, 1403~1480)가 모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사법어』는 한문본 30종과 언해본 10종 등 40여 종이 전한다. 판본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래 네 편이 중심이 된다.

  •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 정응선사(正凝禪師)가 몽산화상 덕이(蒙山和尙 德異)에게 무자(無字) 화두를 열심히 탐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내용.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 숭장주(崇藏主)가 행각(行脚)을 떠나는 제자에게 깨달음을 완성해 가라고 당부한 글.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 덕이가 대중에게 행한 설법
  •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 고려시대의 승려인 혜감국사 만항(慧鑑國師 萬恒, 1249~1319)의 설법.

구룡암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법어』는 1562년 간행된 언해본으로, 동일본이 발견되거나 소개된 사실이 없는 유일한 판본이다. 1467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최초의 한글 판본과 비교할 때, 편찬체제가 다르고 훈민정음의 표기법이 달라 조선시대 불서 간행과 중세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사법어 Record 사법어(四法語)
완주_구룡암_사법어 Object 완주_구룡암_사법어
완주_구룡암 Place 완주_구룡암
신미 Actor 신미(信眉,_1403-1480)
목우자수심결 Record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간경도감 Actor 간경도감
덕이 Actor 덕이(德異,_1231-1308)
연산_고운사 Place 연산_고운사
1562년_간행본 Object 1562년_간행본
만항 Actor 만항(萬恒,_1249-1319)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사법어 덕이 contributor
완주_구룡암_사법어 완주_구룡암 currentLocation
사법어 신미 translator
사법어 목우자수심결 isRelatedTo
목우자수심결 간경도감 publisher
사법어 연산_고운사 publisher
완주_구룡암_사법어 1562년_간행본 isRelatedTo
사법어 만항 contributor


참고자료

  • 구룡암 사법어 문화재 지정신청 구비서류.
  • 완주 구룡암 사법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502630000 → 사법어 언해본은 1467년 간경도감에서 '완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몽산화상시중', '고담화상법어' 등 고승의 법어를 국역하여 초간되었다. 완주 구룡암 소장 사법어는 1562년 간행된 언해본으로 5침 선장형태로 장정되어 있으며 앞표지에 '법어'라는 제목이 묵서되어 있다. 구룡암 소장 사법어는 1517년 충청도 연산 고운사에서 개판된 판본을 저본으로 복각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일본이 발견되거나 소개된 사실이 없는 유일한 판본이다.
  • 묘법연화경 권7(언해) 항목 참조 → ‘간경도감’ 설명 /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불교 경전의 국역과 간행사업을 위해 간경도감이 설치되었다.
  • 사법어언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648 → 조선전기 승려 신미가 법어 4편에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언해서. 4편의 법어는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이다. 권두에 ‘혜각존자역결(慧覺尊者譯訣)’이라 되어 있으므로 구결과 번역이 혜각존자 신미(信眉)에 의한 것이다. 모두 10장 정도의 책으로, 단행본으로 간행되지 않고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또는 『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에 합철되어 있다. 이 책 자체에는 간기가 없으나, 한글의 용법이 합철된 『목우자수심결』에 일치하므로 그 간년인 1467년(세조 13)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간본으로 보이는 책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의 『목우자수심결』에 합철된 것이다. 각 법어에 구결을 달아 원문을 먼저 싣고 번역을 보이는 체재로 되어 있다. 중간본은 위의 책을 1500년(연산군 6)경상도봉서사(鳳栖寺)에서 복각한 것을 비롯하여, 『몽산법어언해』와 합철하여 간행한 것이 전한다. 후자의 중간본은 합철된 『몽산법어언해』의 체재와 같이 법어를 대문으로 나누어서 번역하였는데, 1517년(중종 12)의 고운사판(孤韻寺版), 1543년의 중대사판(中臺寺版), 1577년(선조 10)의 송광사판(松廣寺版)이 그러한 책이다. 그 중에서 송광사판은 한자음표기에서 『동국정운』의 방식을 지양하고 현실화한 점 등이 다르다. 1973년 일사문고본의 『목우자수심결』을 저본으로 하여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에서 영인하였다. 국어사자료로 이용된다.
  • 천안사법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041 → 천안사 소장 『법어(法語)』는 1577년(선조 10)에 전라도 순천(順天)의 송광사(松廣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으로, 『법어』와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이 합철된 법어집이나, 『법어』의 뒤에 「시각오선인법어」가 부록되었다.『몽산화상법어약록』은 보통 『몽산법어약록』이라 부르는데, 고려 말의 승려 나옹 화상(懶翁和尙)이 1350년(충정왕 2) 여름에 중국 평강(平江) 휴휴암(休休庵)에 있던 원나라 고승 몽산 화상 덕이를 찾아보고 돌아온 후, 몽산의 법어(法語)를 약록(略錄)하여 엮은 책이다. 2011년 3월 26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되었고, 천안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법어』는 4편의 법어로 구성되었다. 즉「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인데, 이를 『사법어(四法語)』라고도 한다. 앞의 셋은 중국 승려들의 법어이고, 마지막은 고려 수선사(修禪社) 10세(世) 사주(社主)인 혜감국사(慧鑑國師) 만항(萬恒)의 법어이다. 그런데 만항에게 아호(雅號)인 고담(古潭)을 지어 준 사람도 몽산 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법어들은 모두 승려 덕이와 관계되었다. 또한 사법어 뒤에는 『몽산화상법어약록』의 부록인 「시각오선인법어보제존자(示覺悟禪人法語普濟尊者)」가 추가되었다.그 내용을 살펴보면,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은 정응선사(正凝禪師)가 몽산 덕이에게 신심(信心)을 가진 후에 계행(戒行)에 힘쓰고‚ 그런 후 다시 조주(趙州)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열심히 탐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글이다.「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는 숭장주(崇藏主)가 행각(行脚)을 떠나는 제자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한시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다듬고 무자 화두를 탐구하면 점차적으로 깨달음을 얻어가며 이때 자신보다 앞선 수행자를 보면 정성껏 청익하여 깨달음을 완성해 가라고 당부한 글이다.「몽산화상시중」은 몽산 덕이가 대중에게 행한 설법으로 세속의 번뇌와 모든 인연을 끊고 외출과 독서도 삼가한 채 일심으로 선수행을 하면 3년 이내에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는 내용이고, 「고담화상법어」는 고려 승려 만항의 설법으로 참선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방법을 버리고 오직 조주의 무자 화두만을 쉬지 말고 생각하면 점차 마음이 맑아지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글이다.『몽산화상법어약록』에는 몽산 덕이의 설법인 「시고원상인(示古原上人)」, 「시각원상인(示覺圓上人)」, 「시유정상인(示惟正上人)」, 「시총상인(示聰上人)」,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 수록되었다.
  • <참고> 보은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 참조 → 신미는 법주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불경은 물론 사서삼경을 두루 익혔으며,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에도 능통하였다. 세종(재위 1418-1450)의 총애를 받아 불경 언해 작업을 주도하였으며, 왕명으로 여러 사찰을 중창하였다. 1449년에 복천암을 중창한 후에는 수행과 후학 지도에 전념하였다. 세조(재위 1455-1468)가 신미를 존경하여 스승으로 여겼으며, 1464년에는 복천암에 행차하여 대법회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