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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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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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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흥무산(해발 454.7m)과 장군당(해발 378.8m)의 지맥이 뻗은 남서사면 구릉의 해발 1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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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5월 13일 (목) 03:25 판


사천사촌리도요지
사천 사촌리 도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사천사촌리도요지
한자 泗川沙村里陶窯址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사촌리 27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34호
지정일 2001년 5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관리자 사천시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2,714㎡
웹사이트 사천 사촌리 도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흥무산(해발 454,7m)과 장군당(해발 378.8m)의 지맥이 뻗은 남서사면 구릉의 해발 150m 정도에 위치하는 이곳은 속칭 ‘양달골’이라고 불리우는 일조량이 양호하며 물과 흙이 풍부한 곳으로 가까이에 있는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되어 있다.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학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는 확보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백자를 전문적으로 생산한 곳임은 알 수 있었다. 그릇의 종류는 사발과 접시, 종지 등으로 대부분 생활용기에 속하는 것이다. 출토된 그릇의 특징으로 미루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백자를 생산한 지방가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가마터가 있었다고 전해져 왔으며, 일조량과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가까이에 있는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해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2002년에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확인되어 이곳이 가마터임을 확인하였다. 발견된 유물들은 사발과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것이다.

가마의 흔적도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으로 유규의 훼손이 심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된 그릇의 특징으로 미루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백자를 생산한 지방가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자문의견

2차 수정

사촌리 도요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던 곳이다. 흥무산(해발 454.7m)과 장군당(해발 378.8m)의 지맥이 뻗은 남서사면 구릉의 해발 1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조량, 물,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며, 사천만을 통한 해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일찍부터 발달하여 가마터가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사 결과 가마의 흔적이 일부 발견되었으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이미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마의 위치나 구조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었던 도구, 백자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사발, 접시, 종지 등 생활용기에 속하는 다양한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문맥요소

ID Class Label Description
사천_사촌리_도요지 Place 사천_사촌리_도요지
J38-0234-0000 Heritage (경상남도_기념물_제234호)_사천_사촌리_도요지
2002년_시굴조사 Event 2002년_시굴조사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사천_사촌리_도요지 J38-0234-0000 isDesignatedAs
사천_사촌리_도요지 2002년_시굴조사 isRelatedTo


참고자료

  • 사천 사촌리 도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2340000 → 조선 후기의 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사촌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부터 가마터가 있었다고 전해져 왔던 곳이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했던 흔적과 갑발, 가마의 일부, 백자 조각 등이 확인된다. 도자기 조각은 완, 접시, 사발 등 기종이 다양하며 이 조각들로 미루어 볼 때 조선 후기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도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白磁의 産地 및 特性 分類를 위한 非破壞 X線螢光分析의 活用性 硏究, 김나영, 공주대학교 석사 논문, 2007. 2) ) 김윤희 외, 경남문화재연구원 결과보고서 내용 인용 ;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사촌리에 위치하는 사촌리 가마터는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2년 8월부터 9월까지 시굴조사한 유적으로 지표상에 드러난 다량의 백자편과 가마의 벽체편 일부 그리고 소토의 확인으로 가마터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현재 가마는 모두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출토유물은 접시, 잔, 완 등의 백자로, 태토는 정선된 백토이며 유약은 자기 내외의 전면에 다소 불량하게 시유되었다. 번조방법은 모래가 섞인 내화토 비짐을 사용하여 여러 개의 그릇을 포개구이 하였다. 사촌리 가마터는 수습된 백자편이 번조방법과 유약의 색조가 모두 유사하여 전문적으로 백자만 생산하던 가마터로 판단할 수 있으며 시유방법과 굽의 형태 그리고 번조방법을 미루어보아 관요 제작이 아닌 민수용의 지방 성격을 보이며 17 C에 조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기종이 한정되어 있으며 태토나 유약의 색이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 그리고 번조방법이 모두 동일하다는 점을 통해 조업 기간이 짧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경상남도 도요지 지표조사 보고서 1』(국립진주박물관, 2007) -> 열람 후 특이사항 있을 시 반영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