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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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해세심사금동여래입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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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www.namhae.go.kr/tour/00007/00019/00119.web?amode=view&idx=323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남해문화관광, 남해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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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Gilt-bronze Standing Buddha of Sesimsa Temple, Nam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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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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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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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불교에서 ‘여래’란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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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U자형의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법의를 두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얼굴 부분은 닳고 없어진 곳이 있어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큰 귀와 코가 두드러지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신체 비례를 보여준다. 머리 위쪽에는 광배*는 없어 졌으며 그 형태도 알 수 없다.  
====초고====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규격이 작아 이동하기 쉬운 금동불상의 특성상 어디서 만들어졌으며 어디에 처음 모셔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귀꽃과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된 대좌에 서 있는 불상은 U자형의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법의를 걸친 채 양손의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해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올린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불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얼굴이 마모되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큰 귀와 코가 눈에 띄며,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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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배(光배):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머리나 등의 뒤에 빛을 표현한 것
  
불상의 머리 뒤쪽에 구멍이 있고 등에도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광배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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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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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t-bronze Standing Buddha of Sesimsa Temple, Namhae'''
  
''최근 진행된 보존처리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표면과 바탕층 금속성분이 명료하게 밝혀졌으며 수은 아말감으로 도금한 내용 등이 확인된다.''
+
This gilt-bronze statue depicts a buddh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9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보존처리 및 분석에 대한 근거 자료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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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ddha is standing on a pedestal elaborately adorned with floral designs. The statue has well-balanced body proportions, with the robe draping over both shoulders to create deep U-shaped folds. The facial features have been severely eroded apart from the prominent nose and ears. There is a hole at the back of the head which suggests that the statue once originally had a halo.
*어느 전각에 모셔져 있는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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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부처를 나타낸 이 금동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래는 귀꽃과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된 대좌에 서 있는 형태이며, U자형의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법의를 양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얼굴이 마모되어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큰 귀와 코가 눈에 띄며,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잡힌 신체 비례를 보여준다. 머리 뒤쪽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광배는 전하지 않는다.
+
귀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신체 비례를 보여주며, U자형의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법의를 양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얼굴이 심하게 마모되었지만 큰 귀와 코가 두드러진다. 머리 뒤쪽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전 문장 수정)'''''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귀꽃으로 장식된 연화대좌에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이 불상은 이동이 용이 한 크기이기 때문에 원제작자와 봉안처는 알 수 없다. <br/>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의 얼굴은 마모되어 뚜렷하지 않지만 비교적 원만해 보이는 상호를 나타내고 있으며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을 들어 일반적인 불상의 수인과는 반대되는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적이다. 불두의 뒷부분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미루어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분실되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br/>알맞은 신체 비례와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자연스러운 의습선의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로 미루어 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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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요소'''==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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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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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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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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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6월 7일 (월) 20:30 판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Gilt-bronze Standing Buddha of Sesimsa Temple, Namhae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남해문화관광, 남해군청.
대표명칭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영문명칭 Gilt-bronze Standing Buddha of Sesimsa Temple, Namhae
한자 南海 洗心寺 金銅如來立像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흥선로 767-28 (창선면)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0호
지정일 2017년 1월 5일
분류 유물/불교조각/금속조/불상
소유자 남해 세심사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불교에서 ‘여래’란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귀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U자형의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법의를 두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얼굴 부분은 닳고 없어진 곳이 있어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큰 귀와 코가 두드러지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신체 비례를 보여준다. 머리 위쪽에는 광배*는 없어 졌으며 그 형태도 알 수 없다.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불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광배(光배):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머리나 등의 뒤에 빛을 표현한 것

영문

Gilt-bronze Standing Buddha of Sesimsa Temple, Namhae

This gilt-bronze statue depicts a buddha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9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e buddha is standing on a pedestal elaborately adorned with floral designs. The statue has well-balanced body proportions, with the robe draping over both shoulders to create deep U-shaped folds. The facial features have been severely eroded apart from the prominent nose and ears. There is a hole at the back of the head which suggests that the statue once originally had a halo.

영문 해설 내용

부처를 나타낸 이 금동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귀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신체 비례를 보여주며, U자형의 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법의를 양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얼굴이 심하게 마모되었지만 큰 귀와 코가 두드러진다. 머리 뒤쪽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남해_세심사 Place 남해_세심사
남해_세심사_금동여래입상 Object 남해_세심사_금동여래입상
H38-0600-0000 Heritage (경상남도_유형문화재_제600호)_남해_세심사_금동여래입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0호로 지정되어 있다.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남해_세심사_금동여래입상 남해_세심사 currentLocation
남해_세심사_금동여래입상 H38-0600-0000 isDesignatedAs

참고자료

  • 경상남도 고시 제2017-1호, 경상남도 문화재 지정 고시, 2017.01.05.
  •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6000000 →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알맞은 신체비례와 도드라진 U자형의 옷주름, 귀꽃과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된 대좌,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올린 좌우가 바뀐 수인 등이 특징이다. 최근 진행된 보존처리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표면과 바탕층 금속성분이 명료하게 밝혀졌으며 수은 아말감으로 도금한 내용 등이 확인된다. 규격이 작아 이동하기 쉬운 금동불상의 특성상 원 제작지나 봉안처는 알 수 없으며 제작시기는 장식화 경향이 뚜렷해지는 9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세심사 금동여래입상은 광배가 없어졌고 얼굴은 많이 마모되었지만 통일신라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남해 세심사 금동여래입상, 경남 관광 길잡이 경상남도 문화재 DB https://www.gyeongnam.go.kr/index.gyeong?menuCd=DOM_000009404005001000&no=11688&page_no=7&reurl=DOM_000009404005000000 → 상세 확대사진(불상 머리 뒤쪽도 확인 가능)
  • <참고> 약사여래 방생기도도량 남해 세심사 http://www.sesimsa.kr/ → 불상 관련 정보는 확인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