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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1210000 구암사의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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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龜巖寺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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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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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font color="red">태조의</font>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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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문구에 조선태조를 넣는 것이 문맥흐름이 자연스러움
 
#*※ 앞의 문구에 조선태조를 넣는 것이 문맥흐름이 자연스러움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다음과 같이 표현을 약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임
 
#*다음과 같이 표현을 약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임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조선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조선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조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조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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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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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곧고 건장하게 자라 나무의 크기가 높이 36m, 가슴높이 둘레 5m에 이른다. 한국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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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자리한 구암사는 7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태조 1년(1392)에 중창하였으며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불교계의 거두가 이 사찰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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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0일 (일) 20:30 판


구암사의 은행나무
구암사의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구암사의 은행나무
한자 龜巖寺의 은행나무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121호
지정일 2004년 9월 10일
분류 자연유산/천연보호구역/문화및자연결합성/경관및과학성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구암사의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 된 것으로 여겨지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던 일을 기념하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에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36m이고, 가슴둘레는 5m이며, 형태가 곧고 건장하다. 열매는 10월쯤 수확하며, 약용이나 약재로 사용한다. 6.25 한국전쟁 때 구암사 및 주변의 숲이 많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피해를 입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구암사 은행나무는 1392년(태조 1) 구암사의 중건과 무학 대사(無學大師)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수형(樹形)이 곧고 건장하게 자라, 그 크기가 높이 36m, 가슴 높이 둘레 5m에 이른다. 6.25 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암사 은행나무는 피해를 입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은행나무가 자리한 구암사는 636년(백제 무왕 37)에 창건되어, 1392년(태조1)에 중창하였으며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 했다는 설이 전승되고 있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불교계의 거두가 많이 배출되었다.

1차 수정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구암사 은행나무는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곧고 건장하게 자라 나무의 크기가 높이 36m, 가슴높이 둘레 5m에 이른다. 한국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은행나무가 자리한 구암사는 7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태조 1년(1392)에 중창하였으며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불교계의 거두가 이 사찰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수정문안의 세 번째 문단은 기념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별로 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안을 축약하여 두 번째 문단과 합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구암사의 은행나무→ 구암사 은행나무(요즘 제목에 ‘의’자를 거의 안쓰고 있음)
    • 구암사 은행나무는 태조 1년(1392)→구암사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1년(1392)
    • 조선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 ※ 앞의 문구에 조선태조를 넣는 것이 문맥흐름이 자연스러움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다음과 같이 표현을 약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임
    •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조선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 ‘조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2차 수정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구암사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1년(1392) 구암사의 중건과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곧고 건장하게 자라 나무의 크기가 높이 36m, 가슴높이 둘레 5m에 이른다. 한국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은행나무가 자리한 구암사는 7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태조 1년(1392)에 중창하였으며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불교계의 거두가 이 사찰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