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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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28일 (월) 11:44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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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Ritual House and Shrine of the Gwangsan Kim Clan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영문명칭 Ritual House and Shrine of the Gwangsan Kim Clan
한자 光山金氏齋舍및祠堂<齋舍3棟,祠堂>
주소 경북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28-1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지정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5동
웹사이트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재사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묘(祠廟) 옆에 지은 집을 말한다.

광산 김씨 재사와 사당은 광산 김씨 가운데 오천리에 처음 들어온 조상인 김효로(金孝盧, 1454~1534)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536년 손자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이 후손들과 함께 세웠다. 김부필의 스승이었던 이황(1502~1570)이 김효로의 묘비명을 직접 써주었는데, 그에 따르면 김효로는 ‘과거시험에 매이지 않고 깨끗하고 바른 품행으로 스스로 학문을 닦으며,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고,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 자손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시 영남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가 순절한 김해(金垓)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재사는 원래 예안면 오천리 낙동강 근처에 있었는데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19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ㅡ’자형 건물 두 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 오른쪽에는 창고로 쓰는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사당은 재사 뒤편 왼쪽에 있다.

영문

Ritual House and Shrine of the Gwangsan Kim Clan

This Ritual House and Shrine were built to prepare the memorial service and keep the ancestral tablet of Kim Hyoro (1454-1534), the first member of the Gwangsan Kim Clan who settled in Ocheon-ri. The buildings were built under the direction of Kim Hyoro's grandson, Kim Bupil (1516-1577), together with other clan members.

Although Kim Hyoro attained a high standard of scholarship, he did not enter official service, enjoying country life instead. After his death, Kim's tablet was enshrined along with that of Yi Hwang's grandfather, Yi Gyeohyang, in the Hyanghyeonsa Shrine. (이 문장은 빼도 될 듯)

The Kim Clan shrine also contains the spiritual tablet of Kim Hyoro's great-grandson, Kim Hae (1555-1593), to memorize his contribution and sacrifice as a leader of voluntary army units in fighting against the Japanese during their invasion of Korea in 1592. Kim Hae also passed the government civil examination and was recommended as a member of the National Academy, Hallim.

The two aligned buildings with a storage place between them were used for preparation of ancestral memorial services; the shrine is the independent building. All the buildings were moved from Ocheon-ri to their current location in 1975 due to construction of a dam.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광산김씨 가운데 오천리에 처음 들어온 조상인 김효로(金孝盧, 1454~1534)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재사와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1536년 손자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이 후손들과 함께 건립하였다.

김부필의 스승이었던 이황(1502~1570)이 김효로의 묘비명을 직접 써주었는데, 그에 따르면 김효로는 ‘과거시험에 매이지 않고 깨끗하고 바른 품행으로 스스로 학문을 닦으며,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고,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 자손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김효로의 증손자인 김해(金垓, 1555~1593)도 사당에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김해는 학문이 뛰어나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에 추천된 인재였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영남 지역의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하였다.

재사는 원래 예안면 오천리 낙동강 근처에 있었는데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19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ㅡ’자형 건물 2개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배치되어 있고, 안마당 오른쪽에는 창고로 쓰는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사당은 재사 뒤편 왼쪽에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