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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제일교회는 감리교회 예배당으로 1931년 준공되었다. 2012년 새 예배당을 지은 후 2018년부터는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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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제일교회는 충청남도 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 미국 감리교 충청도 선교의 중심이었다.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 1859~1918)과 이용주 전도사가 1903년 하리동(지금의 옥룡동)에 초가 2채를 구입해 선교 활동을 벌이면서 설립되었고, 1931년 신도들이 헌금을 모아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고 이 예배당을 새로 세웠다. 명선여학교와 영명학교 등 근대교육기관을 세운 선교사들의 활동 거점이었으며, 1919년 충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와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 1872~1939) 목사가 섬기던 교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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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의 폭격으로 크게 손상되었지만, 남아있던 반지하층과 측면 벽 등을 중심으로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여 1956년에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좌측 모서리에 있던 종탑도 이때 정면 중앙으로 옮겼다. 1979년에 다시 증축하면서 종탑 부분 아래에 포치를 설치했고, 포치의 좌우의 창과 내부 강단 뒷벽에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이남규(1931~1993)의 초기 작품으로, 삼위일체의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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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제일교회는 개축과 증축 등을 거치면서도, 한국 초기 교회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고딕 양식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5월 13일 (목) 02:56 판


공주 제일교회
Jeil Church, Gongju
공주 제일교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공주 제일교회
영문명칭 Jeil Church, Gongju
한자 公州 第一敎會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 7-4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제472호
지정일 2011년 6월 20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종교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공주 제일교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공주 제일교회는 1892년 미 감리회에서 스크랜튼(M.F.Scranton) 선교사를 한강 이남 지역 관리자로 임명하면서 공주지역 선교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902년 초가 1동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림으로 남부지역 최초의 감리교 교회로 창설되었다. 현 예배당은 1931년 건립되어 영명학원과 영아관을 운영하여 인재양성과 사회적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며, 충청지역 감리교 선교의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전쟁 당시 상당부분 파손되었지만 남아있는 벽체, 굴뚝 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교회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특히 교회 벽면에는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고 이남규 선생의 초기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전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공주 제일교회는 수원이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첫 감리교회이다.

1892년 미 감리회에서 공주를 충청도 선교 거점으로 확보하려는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1896년 스크랜톤(W. B. Scranton) 선교사가 수원·공주구역의 관리자로 임명되면서 공주지역의 선교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898년 수원·공주구역 관리자로 임명받았던 스웨러(W. C. Swearer) 선교사가 1902년 초가 1동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림으로서 남부지역 최초의 감리교 교회가 창설되었다. 이어, 1903년 원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과 이용주 전도사가 와서 하리동(현 옥룡동)에 초가 2동을 구입하고 전도활동을 펼쳤는데, 초가 하나는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하나는 진료소 및 교육시설로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맥길의 예배당이 지금 제일교회의 초시가 된다. 공주는 충청 지역의 선교 중심지였고, 그 중에서도 공주 제일교회는 선교 거점이자 독립운동을 지원한 곳이다.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가 공주 영명학교에 재학 당시 이 교회를 다녔다.

문화재로 등록된 공주제일교회의 건물은 1931년 11월에 건립되었다. 6·25전쟁 때 예배당건물이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손되었으나 건물의 벽제와 굴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1956년 파손된 부분만을 수리하여 교회 건물을 복원하였고, 1979년 증축하였다. 교회 벽면에는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고 이남규 선생의 초기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전하고 있다.

지상 2층 붉은 벽돌의 예배당은 한국 초기 교회양식을 띠고 있어 근대 종교(기독교) 건축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처음부터 교회로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물은 공주제일교회(감리회)가 유일하다.

초고 수정

이 건물은 1931년에 준공된 공주 제일교회의 예배당으로 쓰였던 곳으로, 2018년부터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주제일교회는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과 이용주 전도사가 1903년 하리동(현 옥룡동)에 초가 2채를 구입해 선교활동을 벌인 것에서 시작되었다. 1909년 '협산자 예배당'을 지어 운영하다가, 1931년 신도들이 헌금을 모아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고 새롭게 세운 예배당이 지금의 박물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때의 폭격으로 크게 손상되었지만, 남아있던 건물의 벽과 굴뚝을 중심으로 1956년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여 복원하였으며, 이때 종탑을 정면 중앙으로 옮겼다.

붉은 벽돌을 이용해 2층으로 지어진 건물의 정면은 고대의 성을 연상시키는 형태인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당한 역사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979년에 다시 증축하면서 정면 종탑 부분 아래로 포치를 설치했고, 포치의 측면과 내부의 예배당 강단에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만들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이남규(1931-1993)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삼위일체의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건물은 한국 초기 교회양식을 띠고 있는 건물의 기존 구조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근대 기독교 건축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처음부터 교회로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공주제일교회는 수원 이남 지역에 처음 세워진 감리교회로, 유관순(柳寬順_1902-1920) 열사와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_1872-1939) 목사가 섬기던 교회이기도 하다. 이 교회는 명선여학교와 영명학교 등 근대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운 선교사들의 활동 거점이었으며, 1919년에 충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동쪽에 있는 건물은 기존의 예배당 건물이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2012년에 새로 지은 교회의 예배당이다.


  1. 공주는 1896년 스크랜톤(W. B. Scranton) 선교사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충청 지역의 선교 거점이 되었다.
  2. 건물 주위에 있는 동상은 캐나다 출신의 샤프 선교사와 9대 목사로 부임했던 신홍식 목사의 것이다. 샤프 선교사는 1903년 한국으로 파견되었으며, 1900년부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사애리시[史愛理施, 1871-1972, 미국 이름 Mrs. Alice. H. Sharp/Alice. J. Hammond]와 1905년에 결혼한 후 공주로 부임했고, 충청도 지역에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1906년 발진티부스에 걸려 이듬해에 죽었다. 사애리시는 1905년 공주 근대교육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명선여학교를 창설하였으며, 남편의 죽음으로 귀국했다가 1908년 다시 방한해 명선여학교의 교장을 맡았다. 그녀는 1913년 충청남도 천안 지방 선교여행에서 12세의 유관순을 만나 수양딸로 삼고, 서울 이화학당으로 보내기 전까지 영명 학교에서 공부시켰다.
  3. 공주 제일 교회는 1919년 충청도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다.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신홍식 목사는 훗날 공주 제일 교회 9대 목사로 부임하기도 했다. 1941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교회 폐쇄령으로 인해 문을 닫기도 했다.
  4. '협산자 예배당'은 공주 제일 교회의 옛 이름으로서, ‘우산을 옆구리에 낀 사람의 예배당’이라는 뜻이다.1900년대 중반 성전 건축을 위한 거액의 헌금을 한 익명의 희사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5. 윤애근 목사는 건축된 지 80년이 지난 예배당을 2011년 등록문화재 472호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문화재 옆에 새 예배당을 건축했다.
  6. 공주에는 여학생을 위한 명선여학교와 남학생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는데 ‘영명학교’(永明, Eternal Brightness)다. 1906년 10월, 공주제일교회에서 전도사역을 하던 윌리암스(禹利岩, Rev. Frank Earl Cranston Williams. 1883-1962)에 의해 창설되었다.

1차 수정

이 건물은 공주 제일교회의 예배당으로 1931년 준공되었다. 2012년 새 예배당을 지은 뒤 2018년부터는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주 제일교회는 충청남도 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 미국 감리교 충청도 선교의 중심이었다.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 1859~1918)과 이용주 전도사가 1903년 하리동(지금의 옥룡동)에 초가 2채를 구입해 선교 활동을 벌이면서 설립되었고, 1931년 신도들이 헌금을 모아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고 이 예배당을 새로 세웠다. 명선여학교와 영명학교 등 근대교육기관을 세운 선교사들의 활동 거점이었으며, 1919년 충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와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 1872~1939) 목사가 섬기던 교회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의 폭격으로 크게 손상되었지만, 남아있던 반지하층과 측면 벽 등을 중심으로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여 1956년에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좌측 모서리에 있던 종탑도 이때 정면 중앙으로 옮겼다. 1979년에 다시 증축하면서 종탑 부분 아래에 포치를 설치했고, 포치의 좌우의 창과 내부 강단 뒷벽에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이남규(1931~1993)의 초기 작품으로, 삼위일체의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공주 제일교회는 한국 초기 교회의 기본 구조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근대 기독교 건축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최초 건축된 건물을 개축, 증축하며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이 건물은 공주 제일교회의 예배당으로 1931년 준공되었다. 2012년 새 예배당을 지은 뒤 2018년부터는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공주 제일교회는 감리교회 예배당으로 1931년 준공되었다. 2012년 새 예배당을 지은 후 2018년부터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 공주 제일교회는 한국 초기 교회의 기본 구조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근대 기독교 건축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최초 건축된 건물을 개축, 증축하며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공주 제일교회는 개축과 증축 등에 과정을 거치면서도 초기 한국 교회건축에 특징 중 하나인 서양식 고딕양식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받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 기타 사실관계에 대한 부분은 최종 문안 확정 전 다시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음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한국 초기 교회의 기본 구조 -> 어떤 것을 뜻하는지.. (혹시 1층(지하)에 사무기능, 각 부서실 등이 있고 2층(1층?)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바실리카식 예배실로 사용하는 것?아래층의 사진을 보면 나무기둥으로 윗층 바닥을 받치고 있는데 윗층 바닥도 목조마루였을 가능성이 있어 보임..)
    • 현장 확인과 해당교회의 연혁에 접근(창립....주년 기념 역사책이 있을 것임)하여, 보다 정확한 서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없음.

2차 수정

공주 제일교회는 감리교회 예배당으로 1931년 준공되었다. 2012년 새 예배당을 지은 후 2018년부터는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주 제일교회는 충청남도 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 미국 감리교 충청도 선교의 중심이었다.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 1859~1918)과 이용주 전도사가 1903년 하리동(지금의 옥룡동)에 초가 2채를 구입해 선교 활동을 벌이면서 설립되었고, 1931년 신도들이 헌금을 모아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고 이 예배당을 새로 세웠다. 명선여학교와 영명학교 등 근대교육기관을 세운 선교사들의 활동 거점이었으며, 1919년 충청도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와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 1872~1939) 목사가 섬기던 교회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의 폭격으로 크게 손상되었지만, 남아있던 반지하층과 측면 벽 등을 중심으로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여 1956년에 복원하였다. 원래 정면 좌측 모서리에 있던 종탑도 이때 정면 중앙으로 옮겼다. 1979년에 다시 증축하면서 종탑 부분 아래에 포치를 설치했고, 포치의 좌우의 창과 내부 강단 뒷벽에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이남규(1931~1993)의 초기 작품으로, 삼위일체의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공주 제일교회는 개축과 증축 등을 거치면서도, 한국 초기 교회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고딕 양식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공주제일교회 Place 공주제일교회
유관순 Actor 유관순(柳寬順_1902-1920)
사애리시 Actor 사애리시(史愛理施,_1871-1972)
신홍식 Actor 신홍식(申洪植,_1872-1939)
3.1운동 Event 3.1운동(1919)
민족대표_33인 Actor 민족대표_33인
앨리스_샤프 Actor 앨리스_샤프(Alice._H._Sharp,_1871-1972)
협산자_예배당 Concept 협산자_예배당
한국전쟁 Event 한국전쟁(1950)
1979년_증축 Event 1979년_증축
공주제일교회_스테인드글라스 Object 공주제일교회_스테인드글라스
이남규 Actor 이남규(1931-1993)
맥길 Actor 맥길(William._B._Mcgill)
공주기독교박물관 Place 공주기독교박물관
명선여학교 Place 명선여학교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협산자_예배당 공주제일교회 hasOldName
공주제일교회 맥길 contributor
공주제일교회 공주기독교박물관 isNear
공주제일교회 사애리시 isRelatedTo
명선여학교 사애리시 founder
사애리시 유관순 isRelatedTo
명선여학교 유관순 isRelatedTo
3.1운동 유관순 isRelatedTo
민족대표_33인 신홍식 member
공주제일교회 신홍식 isRelatedTo
공주제일교회 유관순 isRelatedTo
공주제일교회 한국전쟁 isDamagedBy
공주제일교회 공주제일교회_스테인드글라스 hasPart
공주제일교회_스테인드글라스 이남규 creator
사애리시 앨리스_샤프 sameAs
공주제일교회 1979년_증축 isRelatedTo
1979년_증축 공주제일교회_스테인드글라스 isRelatedTo

참고자료

  • ‘공주제일교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3404720000
  • ‘공주제일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9942
  • ‘공주제일교회’,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941681&cid=40942&categoryId=37404
  • 『국가등록문화재 (시설물 분야) 정기조사 1』, 문화재청, 2020.
  • “곰나루 근현대사를 품다, 공주제일교회 구 예배당”,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2784
  • “공주 근대 기독교 유산의 보고(寶庫) 공주기독교박물관”, 뉴스파워, 2020.6.18. http://www.newspower.co.kr/46487 -> 1979년에 개축한 예배당 강단과 2층 출입구 양 벽에 스텐이드 글라스를 제작해 설치했다. 설계는 공주사대 이남규 교수가 맡았다. / 윤애근 목사는 건축된 지 80년이 지난 예배당을 2011년 등록문화재 472호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문화재 옆에 새 예배당을 건축했다. / 홍루디아 성도가 바친 토지 중 8,800평은 2011년, 공주제일교회 새 성전을 건축할 때에 20억원에 매각해 새성전 건축의 큰 기초가 되었다.”고 말했다. 교회는 홍누두 성도의 헌신을 기려 교회 마당에 기념비를 설치했다. / 공주에는 여학생을 위한 명선여학교와 남학생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는데 ‘영명학교’(永明, Eternal Brightness)다. 1906년 10월, 공주제일교회에서 전도사역을 하던 윌리암스(禹利岩, Rev. Frank Earl Cranston Williams. 1883-1962)에 의해 창설되었다.
  • ‘공주제일교회’,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806634&cid=42856&categoryId=42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