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이성산성 직사각 건물터 (하남 이성산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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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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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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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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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주변에서는 8각 건물터, 9각 건물터, 사각 건물터가 1곳씩 확인되었다. 사각 건물터는 15×4칸 규모이며 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남아 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를 높이거나 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한 후 지었으며, 초석 역시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건물터 주변에서는 일부러 부러뜨려 묻어 놓은 17마리 분의 흙으로 만든 말과 철로 만든 말이 발견되었다. 건물 초석**에 동물 머리를 파묻는 것은 중국 고대부터 있던 풍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풍납토성에서 말머리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 중반 이후로는 이성산성에서 발견되는 것 같이 흙이나 철 등으로 작은 말 모형을 제작하여 묻었다. 또 토제벼루편, 돌화살촉, 돌도끼도 여러 점 발견되었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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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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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부: 건물의 기초가 되는 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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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석: 건물의 기둥 아래 괸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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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1차 수정====
 
이성산성에서는 총 11곳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성곽유적 내의 건물지이지만 무기류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행정이나 종교적 용도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 권역에서는 8각 건물지, 9각 건물지, 장방형 건물지가 1곳씩 확인되었다.
 
  
장방형 건물지는 15×4칸 규모로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였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 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를 높이거나 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하였으며, 초석 역시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주요 유물로는 격자문 기와 등이 있다.
 
  
====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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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 분야별 자문위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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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터 주변에서는 8각 건물터, 9각 건물터, 직사각형 건물터가 1곳씩 발견되었다.
#*이성산성에서는 총 11곳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성곽유적 내의 건물지이지만 <font color="red"><s>무기류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s>  소량의 무기류만 출토되는 것으로</font> 보아 대부분 행정이나 종교적 용도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방형 건물지는 15×4칸 규모로 <font color="red">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font>
 
#*<font color="red">(*이러한 서술에 대한 근거 보충 요망)</font>
 
# 분야별 자문위원 2
 
#*수정사항 없음.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1) 성곽유적 내의 건물지이지만 무기류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행정이나 종교적 용도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br/> ⇒ 성곽유적 내의 <font color="red">건물지지만</font> 무기류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행정이나 종교적 용도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장방형 건물지는 15×4칸 규모로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br/> ⇒장방형 건물지는 15×4칸 <font color="red">규모이며,</font> 창고로 <font color="red">사용되었을</font> 것으로 추정된다.
 
#*3) 주요 유물로는 격자문 기와 등이 있다. <br/> ⇒ 주요 유물로는 격자문 <font color="red">기와가</font> 있다.
 
  
====2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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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 건물터는 15×4칸 규모이며 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남아 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를 높이거나 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하고 지었다.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었다.  
이성산성에서는 총 11곳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성곽유적 내의 건물지지만 소량의 무기류만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행정이나 종교적 용도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 권역에서는 8각 건물지, 9각 건물지, 장방형 건물지가 1곳씩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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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터 주변에서는 흙으로 만든 말과 철로 만든 말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총 17마리 분을 일부러 부러뜨려 묻어 놓은 것이다. 건물터에 동물 머리를 파묻는 것은 중국 고대부터 있던 풍습으로, 한국에서는 백제의 성인 풍납토성에서 말머리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 중반 이후로는 이성산성에서 발견되는 것 같이 흙이나 철 등으로 작은 말 모형을 제작하여 묻었다. 이밖에 출토된 유물로는 토제 벼루 조각, 돌화살촉, 돌도끼 등이 있다.
 
 
장방형 건물지는 15×4칸 규모이며 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였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 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를 높이거나 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하였으며, 초석 역시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주요 유물로는 격자문 기와가 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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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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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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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10월 27일 (수) 20:55 판

하남 이성산성 동문지 권역 장방형 건물지
하남 이성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Goto.png 종합안내판: 하남 이성산성



해설문

국문

동문 주변에서는 8각 건물터, 9각 건물터, 사각 건물터가 1곳씩 확인되었다. 사각 건물터는 15×4칸 규모이며 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남아 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를 높이거나 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한 후 지었으며, 초석 역시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건물터 주변에서는 일부러 부러뜨려 묻어 놓은 17마리 분의 흙으로 만든 말과 철로 만든 말이 발견되었다. 건물 초석**에 동물 머리를 파묻는 것은 중국 고대부터 있던 풍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풍납토성에서 말머리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 중반 이후로는 이성산성에서 발견되는 것 같이 흙이나 철 등으로 작은 말 모형을 제작하여 묻었다. 또 토제벼루편, 돌화살촉, 돌도끼도 여러 점 발견되었다.


  • 기단부: 건물의 기초가 되는 단 부분
  • 초석: 건물의 기둥 아래 괸 돌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동문터 주변에서는 8각 건물터, 9각 건물터, 직사각형 건물터가 1곳씩 발견되었다.

직사각형 건물터는 15×4칸 규모이며 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남아 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를 높이거나 하지 않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하고 지었다.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었다.

건물터 주변에서는 흙으로 만든 말과 철로 만든 말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총 17마리 분을 일부러 부러뜨려 묻어 놓은 것이다. 건물터에 동물 머리를 파묻는 것은 중국 고대부터 있던 풍습으로, 한국에서는 백제의 성인 풍납토성에서 말머리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 중반 이후로는 이성산성에서 발견되는 것 같이 흙이나 철 등으로 작은 말 모형을 제작하여 묻었다. 이밖에 출토된 유물로는 토제 벼루 조각, 돌화살촉, 돌도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