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박용원 고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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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큰 규모의 농가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 헛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1864년에 지어졌고, 사랑채와 아래채는 20세기 초에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민가는 ‘ㅡ’자 또는 ‘ㄱ’자 형태로 구성되는데, 이 집은 건물들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구조를 이룬다. | 이 집은 큰 규모의 농가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 헛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1864년에 지어졌고, 사랑채와 아래채는 20세기 초에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민가는 ‘ㅡ’자 또는 ‘ㄱ’자 형태로 구성되는데, 이 집은 건물들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구조를 이룬다. | ||
− |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온돌방, 대청,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는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사당을 따로 두지 않고 안채 대청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두었다. 또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대들보 위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대공을 하나의 큰 조각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나무로 받치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민가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스러운 구조이다. | + |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온돌방, 대청,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는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사당을 따로 두지 않고 안채 대청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두었다. 또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대들보 위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대공을 하나의 큰 조각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나무로 받치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민가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스러운 구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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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래 그림의 포대공 | ||
=='''갤러리'''== | =='''갤러리'''== |
2024년 4월 13일 (토) 14:05 판
제천 박용원 고택 Bak Yong-won’s House, Je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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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제천 박용원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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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ak Yong-won’s House, Jecheon |
한자 | 堤川 朴用元 古宅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305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37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3필지/2,249㎡ |
웹사이트 | 제천 박용원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이 집은 안채에 있는 상량문*을 통해 1864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가는 ‘ㅡ’자부터 ‘ㄱ’자형태로 발전되어 가는데 이 고택은 ‘ㄱ’자 안채, ‘ㅡ’자 사랑채, 아래채, 헛간을 두어 튼 ‘ㅁ’자 구조를 이루는 큰 규모의 농가이다.
이 집의 특별한 점으로 안채의 대청 쪽으로 문을 두고 마당 쪽으로 창을 낸 광이 있다는 점과 보 위에서 마루대를 받치는 대공이 하나의 큰 조각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나무로 받치는 구조인 포대공을 사용한 점을 들 수 있다. 포대공은 민가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스러운 구조이다. 사당을 따로 두지 않고 안채 대청마루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두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지역의 제천 후산리 고가에서도 대청마루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포대공을 확인할 수 있다.
기타 사랑채와 아래채는 원래 초가집으로서 20세기 초에 건축되었다.
- 상량문(上梁文):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까닭과 날짜 등을 적은 글이며 주로 마루대 아래 놓는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큰 규모의 농가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 헛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1864년에 지어졌고, 사랑채와 아래채는 20세기 초에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민가는 ‘ㅡ’자 또는 ‘ㄱ’자 형태로 구성되는데, 이 집은 건물들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구조를 이룬다.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온돌방, 대청,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는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사당을 따로 두지 않고 안채 대청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두었다. 또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대들보 위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대공을 하나의 큰 조각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나무로 받치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는 민가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고급스러운 구조이다.
- 아래 그림의 포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