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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30일 (토) 09:57 판
한산대첩 기념비 閑山大捷 紀念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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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
해설문
국문
한산기념대첩비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높이는 20미터로 거북선을 본뜬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다. 한산대첩기념비라고 쓴 정면의 제목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고, 비문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짓고 글씨는 우석 김봉근 선생이 썼다.
한산대첩기념비의 내용은 1592년 7월 8일과 10일에 있었던 한산대첩을 서사시 풍으로 표현한 것이다. 7월 8일에 왜적의 배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을 펴고 포와 화살을 쏘아 47척을 격침시키고 12척을 포획했으며, 7월 10일 새벽에는 안골포**에 머물고 있던 왜적선 42척을 불태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학익진(鶴翼陣):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원의 형태이기 때문에 적을 포위하면서 공격하기에 적합한 진법이다.
- 안골포(安骨浦):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동에 있었던 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