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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700420000 어은정 및 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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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어은정 및 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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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Eoeunjeong Pavilion and Ritual House
 
|한자=漁隱亭 및 齋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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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북 안동시 정상동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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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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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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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건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로 후능참봉(厚陵參奉)을 지낸 어은(漁隱) 이용(李容)이 조선 선조(宣祖) 3년(1570)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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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정은 고성이씨 가문의 어은(漁隱) 이용(李容)이 선조 3년(1570)에 지은 정자이며, 후에 도곡재사(道谷齋舍)가 설치되면서 규모도 늘었다. 원래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어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사랑방과는 별도의 정자이며 2칸의 온돌방과 4칸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6칸의 ‘口’자형 구조이다. 부속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와룡면 도곡동에서 이 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현재 정자에는 명호서원의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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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李增, 1419~1480)의 증손자이고, 반구정을 지은 이굉(李肱)의 아들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였으며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으나, 더 이상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어은정을 지어 유유자적한 은거생활을 즐겼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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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내에는 어은정, ㅁ자형 구조의 재사, 부속건물 1동이 있다. 어은정 정면에는 명호서원(明湖書院)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명호서원은 이증의 아버지인 이원(李原, 1368~1429)과 이증의 손자인 이주(李冑, 1468~1504)를 기리기 위해 정조 14년(1790)에 창건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초고====
 
어은(漁隱) 이용(李容)이 지은 정자와 재사이다. 재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을 말한다.
 
  
1570년(선조 3)에 건립하였다. 본래 월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와룡면 도곡동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이용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로서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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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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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eunjeong Pavilion and Ritual House'''
  
어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각이 진 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2칸의 온돌방과 4칸의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정자에는 철폐된 명호서원(明湖書院)의 현판이 걸려 있다.
+
Eoeunjeong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570 by Yi Yong (pen name: Eoeun) of the Goseong Yi Clan. A ritual house, where ancestral rituals are prepared, was later added at an unknown time. The buildings were originally located in Dogok-ri, but were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4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옆에 있는 재사는 각이 4개의 진 기둥을 쓰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6칸의 ㅁ자형건물이다. 부속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
Yi Yong was the great-grandson of Yi Jeung (1419-1480), the first person of the Goseong Yi Clan to settle in Andong, and the son of Yi Goeng, who is known for having built Bangujeong Pavilion. He was a student of the renowned scholar Yi Hwang (1501-1570) and served as a tomb keeper for Hureung Royal Tomb. However, he retired early and built Eoeunjeong Pavilion where he lived a free and quiet life.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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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ddition to the pavilion and the ritual house, there is also one auxiliary building in the complex.
어은정은 고성이씨 가문의 이용(李容)이 선조 3년(1570)에 지은 정자이고, 재사는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원래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용은 고성이씨 가운데 안동에 처음 들어온 이증(李增, 1419~1480)의 증손자이고, 반구정을 지은 이굉(李肱)의 아들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였으며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다. 어은정은 이용의 호를 따서 이름 지어졌는데, 강호에 은거하며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살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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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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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정은 고성이씨 가문의 이용(호: 어은)이 1570년에 지은 정자이다. 이후 선조의 제사를 준비하는 재사가 추가로 지어졌다. 원래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경내에는 어은정, ㅁ자형 구조의 재사, 부속건물 1동이 있다. 어은정 정면에는 명호서원(明湖書院)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명호서원은 이증의 아버지인 이원(李原, 1368~1429)과 이증의 손자인 이주(李冑, 1468~1504)를 기리기 위해 정조 14년(1790)에 창건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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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1419-1480)의 증손자이고, 반구정을 지은 이굉의 아들이다. 이황(1501-1570)의 제자였으며 후릉참봉을 지냈으나, 더 이상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어은정을 지어 유유자적한 은거생활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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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내에는 어은정, 재사, 부속건물 1동이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2021년 9월 24일 (금) 11:52 기준 최신판

어은정 및 재사
Eoeunjeong Pavilion and Ritual House
어은정 및 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어은정 및 재사
영문명칭 Eoeunjeong Pavilion and Ritual House
한자 漁隱亭 및 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51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지정(등록)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어은정 및 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어은정은 고성이씨 가문의 어은(漁隱) 이용(李容)이 선조 3년(1570)에 지은 정자이며, 후에 도곡재사(道谷齋舍)가 설치되면서 규모도 늘었다. 원래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이용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李增, 1419~1480)의 증손자이고, 반구정을 지은 이굉(李肱)의 아들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였으며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으나, 더 이상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어은정을 지어 유유자적한 은거생활을 즐겼다.

현재 경내에는 어은정, ㅁ자형 구조의 재사, 부속건물 1동이 있다. 어은정 정면에는 명호서원(明湖書院)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명호서원은 이증의 아버지인 이원(李原, 1368~1429)과 이증의 손자인 이주(李冑, 1468~1504)를 기리기 위해 정조 14년(1790)에 창건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영문

Eoeunjeong Pavilion and Ritual House

Eoeunjeong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570 by Yi Yong (pen name: Eoeun) of the Goseong Yi Clan. A ritual house, where ancestral rituals are prepared, was later added at an unknown time. The buildings were originally located in Dogok-ri, but were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4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Yi Yong was the great-grandson of Yi Jeung (1419-1480), the first person of the Goseong Yi Clan to settle in Andong, and the son of Yi Goeng, who is known for having built Bangujeong Pavilion. He was a student of the renowned scholar Yi Hwang (1501-1570) and served as a tomb keeper for Hureung Royal Tomb. However, he retired early and built Eoeunjeong Pavilion where he lived a free and quiet life.

In addition to the pavilion and the ritual house, there is also one auxiliary building in the complex.

영문 해설 내용

어은정은 고성이씨 가문의 이용(호: 어은)이 1570년에 지은 정자이다. 이후 선조의 제사를 준비하는 재사가 추가로 지어졌다. 원래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이용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1419-1480)의 증손자이고, 반구정을 지은 이굉의 아들이다. 이황(1501-1570)의 제자였으며 후릉참봉을 지냈으나, 더 이상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어은정을 지어 유유자적한 은거생활을 즐겼다.

현재 경내에는 어은정, 재사, 부속건물 1동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