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외암마을 참판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갤러리) |
(→갤러리) |
||
48번째 줄: | 48번째 줄: | ||
=='''갤러리'''== | =='''갤러리'''== | ||
<gallery mode=packed heights=600px> | <gallery mode=packed heights=600px> | ||
− | 파일:아산외암마을참판댁_배치도.jpg | 배치도<ref>"아산 외암리 참판댁(큰댁)", 『우리 옛 집 - 강원, 경기, 서울, 전라, 제주, 충청』, 도서출판 집, 2016, 341쪽.</ref> | + | 파일:아산외암마을참판댁_배치도.jpg | 큰댁 배치도<ref>"아산 외암리 참판댁(큰댁)", 『우리 옛 집 - 강원, 경기, 서울, 전라, 제주, 충청』, 도서출판 집, 2016, 341쪽.</ref> |
− | 파일:아산외암마을참판댁_배치도2.jpg | 배치도<ref>"아산 외암리 참판댁(작은댁)", 『우리 옛 집 - 강원, 경기, 서울, 전라, 제주, 충청』, 도서출판 집, 2016, 347쪽.</ref> | + | 파일:아산외암마을참판댁_배치도2.jpg | 작은댁 배치도<ref>"아산 외암리 참판댁(작은댁)", 『우리 옛 집 - 강원, 경기, 서울, 전라, 제주, 충청』, 도서출판 집, 2016, 347쪽.</ref> |
</gallery> | </gallery> | ||
2023년 4월 30일 (일) 20:47 판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Champandaek House in Oeam Village, Asan |
|
대표명칭 |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
---|---|
영문명칭 | Champandaek House in Oeam Village, Asan |
한자 | 牙山 外岩마을 參判宅 |
주소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42-15 (외암리)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195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12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8필지/7,171㎡ |
웹사이트 |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아산 외암리 참판댁은 구한말 규장각 직학사(直學士)와 궁내부 특진관, 시종원 부경 등을 지낸 퇴호(退湖) 이정렬(李貞烈, 1868~1950)이 고종에게 받은 집이다. 이정렬의 양부 이상규가 참판에 해당하는 내부협판에 추증*되어 참판댁으로 불린다.
참판댁은 외암마을 동쪽에 남서향으로 자리를 잡은 목조 기와집 두 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따로 지어진 집이다. 큰 집은 10칸의 ‘ㄱ’자 모양 안채와 5칸의 ‘ㅡ’자 모양 사랑채, 8칸의 ‘ㅡ’자 모양 문간채로 되어 있고, 작은 집은 6칸의 ‘ㄱ’자 모양 안채와 7칸의 ‘ㄱ’자 모양 사랑채로 되어 있다.
큰 집은 돌담장으로 집안의 공간을 구분하는 한편, 대문 앞에 돌담을 쌓아 아늑함을 주고, 작은 집은 사랑방 앞 대청 양쪽에 분합문(分閤門)**이 있는 고방(庫房)을 두어 과방(果房)***이나 툇마루 등 여러 용도로 이용하였다.
평면 구성은 대청이 안방 구들에서 꺾어진 중부 양식이지만 작은 집 사랑채는 대청이 한쪽으로 배치된 남부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추증: 나라에 공이 있는 벼슬아치나 그의 선조에게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 분합문(分閤門): 대청 앞에 다는 네 쪽 문. 여름에는 둘씩 접어들어 올려 기둥만 남고 모두 트인 공간이 된다.
- 과방(果房): 큰일을 치를 때 음식을 차려 놓고 내가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