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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광주읍성 북쪽, 오늘의 북구 우산동 383번지 일대에는 조선시대 경양역이 자리했습니다. 경양역은 경양도의 본역으로 덕기, 가림, 인물, 창신, 검부, 대부, 오림, 광리 등 여덟 역을 관할하며 광주에서 곡성, 동복, 능주, 담양, 순창으로 뻗는 역로를 묶었습니다. | |
| − | + | 여기서는 공문서와 급보, 사람과 물자가 밤낮으로 오갔고, 종6품 찰방이 말을 대고 숙식을 제공하며 통문을 관리했습니다. 찰방은 관할 관리의 비리나 역모 정황을 수집·보고하고, 국사범의 수감·이송까지 맡아 ‘길 위의 관청’ 역할을 했습니다. | |
| − | + | 1896년 역제가 폐지되며 경양역도 사라졌지만, 효죽동 일대에 여러개의 찰방비가 남아 있어 한동안 ‘비석거리’로 기억되었습니다. 이후 도로 개설로 인하여 찰방비는 광주공원으로 옮겨지고 2003년 우산동 주민들은 복원추진위원회를 꾸려 소공원을 조성했습니다. 우산동 표지석 앞에 서면, 연기와 통문, 역마와 파발이 오가던 조선의 통신망이 오늘의 시간 위로 겹쳐 올라오는 듯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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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S2024-L010 | 통신 수단의 변화철길 ]] | ||
| + | ** [[E2024-L057| 경양도의 찰방역 ]] | ||
| + | ** [[E2024-L058| 광주송정역에 닿는 호남고속철도 ]] | ||
| + | ** [[E2024-L059| 광주의 도시철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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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수) 11:35 판
경양도의 찰방역
학습 주제
광주 경전선과 광주역·남광주역·효천역의 변화를 통해 도시 철도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봅니다. 남광주역 부지의 시장화와 폐철도의 푸른길공원 조성을 통해 철도 유산의 재생과 활용을 이해합니다.
이야기
광주읍성 북쪽, 오늘의 북구 우산동 383번지 일대에는 조선시대 경양역이 자리했습니다. 경양역은 경양도의 본역으로 덕기, 가림, 인물, 창신, 검부, 대부, 오림, 광리 등 여덟 역을 관할하며 광주에서 곡성, 동복, 능주, 담양, 순창으로 뻗는 역로를 묶었습니다.
여기서는 공문서와 급보, 사람과 물자가 밤낮으로 오갔고, 종6품 찰방이 말을 대고 숙식을 제공하며 통문을 관리했습니다. 찰방은 관할 관리의 비리나 역모 정황을 수집·보고하고, 국사범의 수감·이송까지 맡아 ‘길 위의 관청’ 역할을 했습니다.
1896년 역제가 폐지되며 경양역도 사라졌지만, 효죽동 일대에 여러개의 찰방비가 남아 있어 한동안 ‘비석거리’로 기억되었습니다. 이후 도로 개설로 인하여 찰방비는 광주공원으로 옮겨지고 2003년 우산동 주민들은 복원추진위원회를 꾸려 소공원을 조성했습니다. 우산동 표지석 앞에 서면, 연기와 통문, 역마와 파발이 오가던 조선의 통신망이 오늘의 시간 위로 겹쳐 올라오는 듯합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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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사이버광주읍성 | 경양역 | http://gjstory.or.kr/sub.html?pid=147 |
| 해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역사문화자원1000 | 경양역 비석거리 |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2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