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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 주제 ==
 
== 학습 주제 ==
  
광주 수피아여학교가 배유지와 벨 마가렛 부부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설립된 과정과, 학교의 이름과 관련된 Jennie Speer와 수피아홀 건립의 역사를 이해합니다. 엄언라, 마정원, 김아각, 유화례 등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 교장 및 교사 김함나, 김마리아, 남궁혁 등 인물들이 학교 발전에 기여한 내용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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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수피아여학교가 배유지와 벨 마가렛 부부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설립된 과정을 이해합니다. 엄언라, 마정원, 김아각, 유화례 등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 교장 및 교사 김함나, 김마리아, 남궁혁 등 인물들이 학교 발전에 기여한 내용을 살펴봅니다.
  
 
== 이야기 ==
 
== 이야기 ==
  
광주에 위치한 [[수피아여학교]]는 수많은 인물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설립되고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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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아여학교]]의 설립은 미국 선교사 [[배유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는 아내 벨 마가렛과 함께 한국의 기독교 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수피아여학교는 Jennie Speer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는 미국 남장로회의 스턴스 부인이 여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기부한 금액으로 ‘수피아홀’이 건립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학교의 설립은 [[배유지]]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미국의 선교사로, 그의 아내 벨 마가렛과 함께 한국의 기독교 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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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사로는 김함나가 있었고, 그의 동생 김마리아는 연동여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에 수피아여학교 교사가 되어 2년간 봉직했습니다. 김함나의 남편 남궁혁은 숭일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수피아여학교는 Jennie Speer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는 스턴스 부인이 여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기부한 금액으로 수피아홀을 건립한 것으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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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장 엄언라는 학교의 기틀을 세웠으며, 마정원(1924년)과 김아각(1926년)은 이후 교장으로 취임해 학교의 방향을 이끌었습니다. 유화례는 1933년부터 여러 차례 교장을 맡아 중요한 전환기에 학교를 지켰습니다.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에 교사로서 일했던 인물로 김함나가 있으며 김마리아는 그의 동생으로  연동여학교를 졸업한 후 1910년에 수피아여학교의 교사가 되어 2년간 일했다. 김함나의 남편은 남궁혁이며  남궁혁은 숭일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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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흥종은 [[배유지]]와 김윤수의 영향을 받아 수피아여학교 교육 활동에 헌신했으며, 그의 딸 최숙은 김윤수의 딸 김명은과 함께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 학생으로 재학했습니다. 이처럼 수피아여학교는 많은 이의 노력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엄언라는 초대 교장으로 수피아여학교를 이끌었고 마정원과 김아각은 각각 1924년과 1926년 교장으로 취임하며, 학교의 방향을 이끌었다. 유화례는 1933년부터 여러 차례 교장으로 임명되어 학교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들은 모두 학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최흥종은 배유지와 김윤수의 영향을 받아 교육에 헌신하게 되었으며, 그의 딸 최숙은 김윤수의 딸 김명은과 함께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이처럼 수피아여학교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교육의 요람이었다.
 
  
 
== 스토리 그래프 ==
 
== 스토리 그래프 ==

2025년 10월 1일 (수) 11:18 판

수피아의 초창기를 이끈 인물들

학습 주제

광주 수피아여학교가 배유지와 벨 마가렛 부부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설립된 과정을 이해합니다. 엄언라, 마정원, 김아각, 유화례 등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 교장 및 교사 김함나, 김마리아, 남궁혁 등 인물들이 학교 발전에 기여한 내용을 살펴봅니다.

이야기

수피아여학교의 설립은 미국 선교사 배유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는 아내 벨 마가렛과 함께 한국의 기독교 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수피아여학교는 Jennie Speer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는 미국 남장로회의 스턴스 부인이 여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기부한 금액으로 ‘수피아홀’이 건립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기 교사로는 김함나가 있었고, 그의 동생 김마리아는 연동여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에 수피아여학교 교사가 되어 2년간 봉직했습니다. 김함나의 남편 남궁혁은 숭일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초대 교장 엄언라는 학교의 기틀을 세웠으며, 마정원(1924년)과 김아각(1926년)은 이후 교장으로 취임해 학교의 방향을 이끌었습니다. 유화례는 1933년부터 여러 차례 교장을 맡아 중요한 전환기에 학교를 지켰습니다.

또한 최흥종은 배유지와 김윤수의 영향을 받아 수피아여학교 교육 활동에 헌신했으며, 그의 딸 최숙은 김윤수의 딸 김명은과 함께 수피아여학교의 초창기 학생으로 재학했습니다. 이처럼 수피아여학교는 많은 이의 노력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해설 디지털광주문화대전 김마리아 http://aks.ai/GC60002022
해설 광주숭일고등학교 학교연혁 http://soongil.gen.hs.kr/sub/page.php?page_code=intro_04_01
단행본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수피아 90년사 http://speer.gen.hs.kr/data_files/images/alumna/90/3.pdf
해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학교연혁 http://speer.gen.hs.kr/sub/page.php?page_code=intro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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