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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위에 남겨진 의로운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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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장로 광주우체국 =
  
 
== 학습 주제 ==
 
== 학습 주제 ==
  
광주의 제봉로·충장로·금남로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호남 의병장 고경명, 김덕령, 정충신의 삶과 정신을 살펴봅니다. 금남로가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지가 되며 호국과 민주를 함께 상징하게 된 과정을 이해합니다. 너릿재, 돌고개, 의병길과 같은 공간을 통해 의병 활동의 흔적과 광주 도로 명칭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배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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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우체국의 공간 변천과 전보, 우편, 전화로 이어진 통신 수단 변화의 역사를 탐색합니다.  
  
 
== 이야기 ==
 
== 이야기 ==
  
광주의 구도심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면, 유독 인물의 이름이나 호(號)를 딴 길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이름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호남의 의병장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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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광주에 처음 현대식 우체국이 문을 열었을 때 광주우체사는 서문거리의 작은 관아를 빌려 업무를 보았습니다. 1912년 우체국은 충장로 2가로 옮겨 단층 서양식 석조 건물로 새 단장을 했고, 창구 유리 너머로 우표와 전보 용지가 오가는 우체국의 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전해야할 소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편과 전신 창구 앞으로 모여들었고 도심 한복판 우체국 앞 사거리는 약속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접수한 전보는 광주역으로 달려가 철도망을 타고 퍼져 나갔고, 저녁이면 답신이 도착해 등잔불 아래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제봉로(霽峯路)는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으나, 예순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금산 전투에서 순국한 고경명의 호에서 따왔다. 충장로(忠壯路)는 담양 출신의 젊은 의병장 김덕령의 시호(諡號)다. 그는 뛰어난 용맹으로 큰 공을 세웠음에도, 훗날 역모 혐의를 받아 억울하게 옥사했다. '충장'이라는 시호는 그의 사후에 복권되며 내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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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같은 자리에 들어선 3층 현대식 청사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규모와 시설이어서 구경 온 시민들로 북적였고, '우다방'이라 불리는 우체국 앞마당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붉은 가방을 멘 우체부가 골목마다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전했고, 전화 교환대가 들어오자 “여보세요”가 창구를 가득 채웠습니다.  
  
광주의 중심인 금남로(錦南路) 역시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에서 활약한 무장 정충신이 받은 군호(君號), '금남군'에서 유래했다. 흥미롭게도,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켰던 장군의 길 '금남로'는 훗날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금남로는 호국(護國)의 의미에 더해 민주(民主)의 상징성을 겹쳐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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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의 작은 관아에서 1912년 석조 청사, 1963년 현대식 청사로 이어진 광주우체국은 오랜동안 광주 사람들의 소식터이며 만남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의 흔적은 도심의 도로뿐만 아니라, 광주 외곽의 옛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화순으로 통하는 너릿재나 도심의 돌고개 같은 고갯길들은 당시 의병들의 이동로이자 백성들의 삶이 묻어나는 통로였다. 무등산 자락에 조성된 의병길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당시 의병들이 활동했던 경로를 오늘날 사람들이 걸으며 되새길 수 있도록 조성한 길이다.
 
 
광주의 길 이름들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지에 대한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다. 따라서 광주를 걷는다는 것은, 도시가 길의 이름으로 담담하게 남겨놓은 역사적 가치와 사실들을 확인하는 경험이 된다.
 
  
 
== 스토리 그래프 ==
 
== 스토리 그래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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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금남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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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광주우체국 || ||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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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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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L010 | 소식을 전하는 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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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057| 경양도의 찰방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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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058| 충장로 광주우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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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L059| 스마트도시 광주 ]]
  
  
 
[[분류:Story]] [[분류:이야기 조각]] [[분류:류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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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수) 15:05 기준 최신판

충장로 광주우체국

학습 주제

광주우체국의 공간 변천과 전보, 우편, 전화로 이어진 통신 수단 변화의 역사를 탐색합니다.

이야기

1897년, 광주에 처음 현대식 우체국이 문을 열었을 때 광주우체사는 서문거리의 작은 관아를 빌려 업무를 보았습니다. 1912년 우체국은 충장로 2가로 옮겨 단층 서양식 석조 건물로 새 단장을 했고, 창구 유리 너머로 우표와 전보 용지가 오가는 우체국의 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전해야할 소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편과 전신 창구 앞으로 모여들었고 도심 한복판 우체국 앞 사거리는 약속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접수한 전보는 광주역으로 달려가 철도망을 타고 퍼져 나갔고, 저녁이면 답신이 도착해 등잔불 아래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1963년 같은 자리에 들어선 3층 현대식 청사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규모와 시설이어서 구경 온 시민들로 북적였고, '우다방'이라 불리는 우체국 앞마당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붉은 가방을 멘 우체부가 골목마다 이름을 부르며 편지를 전했고, 전화 교환대가 들어오자 “여보세요”가 창구를 가득 채웠습니다.

1897년의 작은 관아에서 1912년 석조 청사, 1963년 현대식 청사로 이어진 광주우체국은 오랜동안 광주 사람들의 소식터이며 만남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해설 디지털광주문화대전 광주우체국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64041
기사 드림투데이 광주우체국이 걸어온 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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