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L060"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광주문화예술인문스토리플랫폼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__NOTOC__ = 시간을 달리는 광주 버스 = == 학습 주제 ==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차량 시위와 광전교통 기사들의 참여를 통해 버스와 운...)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__NOTOC__
 
__NOTOC__
= 시간을 달리는 광주 버스 =
+
= 전남일보 서두성 편집국장 =
  
 
== 학습 주제 ==
 
== 학습 주제 ==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차량 시위와 광전교통 기사들의 참여를 통해 버스와 운수 노동자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민주기사코스와 버스 518번 등 노선에 담긴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이해합니다. 금호고속과 유스퀘어를 중심으로 광주 교통사가 도시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워봅니다.
+
광주의 언론인 서두성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해방 후, 호남신문, 전남일보, 전남매일신문 등의 언론사에서 펼친 그의 언론 활동과 언론관을 알아봅니다.
 +
 
  
 
== 이야기 ==
 
== 이야기 ==
  
1980년 5월, 광주는 민주주의를 향한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다.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지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은 군사정권에 맞서 싸웠고, 그 역사적 순간에 광주 버스들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1907년 화순에서 태어난 서두성은 숭일중학교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외국어학교 전문부 불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듬해 연예통신 기자가 되어 활자와 현장을 익혔으며 잠시 쇼치쿠 영화사에서 조감독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광전교통과 같은 운수 회사 소속 기사들은 목숨을 걸고 5.18민주화운동 차량 시위에 참여하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키웠다. 이들의 용기를 기리고자 시민들은 당시 버스들이 다녔던 길을 상징적으로 민주기사코스라고 불렀다.
+
일본의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그는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에 깊이 공명했습니다.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은 조국을 향한 마음을 다잡는 그의 서가가 되었습니다. 서두성은 수필집 ‘시대보행’,'생활염불’을 통해 사유를 정리했고 '순풍에 돛을 달고’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작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광주 버스 노선에는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 버스 518번은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인 노선이다. 버스 419번과 버스 228번처럼,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리는 노선도 광주 거리를 함께 달리고 있다.
+
해방후, 서두성은 호남신문과 전남일보의 편집국장, 전남매일신문의 주필 등 여러 위치에서 언론인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언론은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개혁의 내연기관"이라는 신념으로 사설을 쓰며 낡은 관행을 걷어내려 노력했습니다.  
 +
 
 +
1965년 10월, 58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장례식은 전라남도언론인장으로 치러졌고 많은 동료와 시민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습니다.
  
현재 금호고속은 과거 여러 운수 회사를 통합하며 성장한 광주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유스퀘어와 같은 대형 터미널을 관리하며 현대 광주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의 버스들은 단순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역이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스토리 그래프 ==
 
== 스토리 그래프 ==
22번째 줄: 24번째 줄:
  
 
== 참고자료 ==
 
== 참고자료 ==
 +
 
{|class="wikitable" style="width:98%;word-break:break-all;"
 
{|class="wikitable" style="width:98%;word-break:break-all;"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 단행본 || 광주일백년 || 언론인 서두성 || ||
 +
|-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전남매일신문 ||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323
 +
|-
 +
|}
 +
 +
 +
==이야기 지도==
 +
 +
* [[S2024-L011 | 광주의 언론 ]]
 +
** [[E2024-L060| 전남일보 서두성 편집국장 ]]
 +
** [[E2024-L061| 광주일보의 창간 ]]
 +
** [[E2024-L062| 역사를 쓰고 문학을 품은 광주의 언론 ]]
  
  
 
[[분류:Story]] [[분류:이야기 조각]] [[분류:류현정]]
 
[[분류:Story]] [[분류:이야기 조각]] [[분류:류현정]]

2025년 10월 9일 (목) 17:05 기준 최신판

전남일보 서두성 편집국장

학습 주제

광주의 언론인 서두성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해방 후, 호남신문, 전남일보, 전남매일신문 등의 언론사에서 펼친 그의 언론 활동과 언론관을 알아봅니다.


이야기

1907년 화순에서 태어난 서두성은 숭일중학교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외국어학교 전문부 불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듬해 연예통신 기자가 되어 활자와 현장을 익혔으며 잠시 쇼치쿠 영화사에서 조감독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그는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에 깊이 공명했습니다.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은 조국을 향한 마음을 다잡는 그의 서가가 되었습니다. 서두성은 수필집 ‘시대보행’,'생활염불’을 통해 사유를 정리했고 '순풍에 돛을 달고’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작사하기도 했습니다.

해방후, 서두성은 호남신문과 전남일보의 편집국장, 전남매일신문의 주필 등 여러 위치에서 언론인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언론은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개혁의 내연기관"이라는 신념으로 사설을 쓰며 낡은 관행을 걷어내려 노력했습니다.

1965년 10월, 58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장례식은 전라남도언론인장으로 치러졌고 많은 동료와 시민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습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단행본 광주일백년 언론인 서두성
해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남매일신문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323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