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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광주천]]에는 [[노지다리]]와 같은 [[흙다리]]가 있었으며, 이는 오횡묵의 기록에 ‘운교(雲橋)’로 전해진다. [[뽕뽕다리]]로 불린 [[발산마을_뽕뽕다리]]는 [[전남방직]]과 연결되어 산업 근로자들의 통로로도 기능했다. | 과거 [[광주천]]에는 [[노지다리]]와 같은 [[흙다리]]가 있었으며, 이는 오횡묵의 기록에 ‘운교(雲橋)’로 전해진다. [[뽕뽕다리]]로 불린 [[발산마을_뽕뽕다리]]는 [[전남방직]]과 연결되어 산업 근로자들의 통로로도 기능했다. | ||
2025년 9월 26일 (금) 21:41 기준 최신판
광주천 다리 이야기
이야기
광주천은 무등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도시하천으로, 다양한 다리가 연결되어 광주 시민의 삶과 역사 속에 자리해왔다. 이 하천을 가로지르는 광주천_교량에는 광주교, 광주대교, 부동교, 중앙대교, 남광보도교, 상무대교 등 다양한 교량이 포함된다.
광주교와 부동교는 1919년 3.1운동_만세시위의 주요 장소였으며, 부동교는 기삼연 의병장이 처형된 장소이기도 하다. 한편, 배고픈다리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_계엄군_재진입_저지 당시 시위대가 저항을 펼친 곳으로, 죽음의_행진의 일부 경로에 포함된다.
과거 광주천에는 노지다리와 같은 흙다리가 있었으며, 이는 오횡묵의 기록에 ‘운교(雲橋)’로 전해진다. 뽕뽕다리로 불린 발산마을_뽕뽕다리는 전남방직과 연결되어 산업 근로자들의 통로로도 기능했다.
광주천을 따라 놓인 다리들은 단순한 통행의 수단을 넘어, 항일운동, 민주화운동, 노동과 생업의 현장이자 기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