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순
기본 정보
| 이름 | 최원순 |
|---|---|
| 한자명 | 崔元淳 |
| 생몰년도 | 1896년~1936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대한민국 |
정의 및 개요
- 최원순(崔元淳, 1896~1936)은 광주 출생의 독립운동가이다.
특징
- 호는 석초(石蕉), 석아(石啞)이다. 1919년 2.8독립선언의 주역이며,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한 언론인이다.
- 일본 유학시절 2.8독립선언을 주도하였으며, ‘조선청년독립단’ 결성을 통해 활동조직을 규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7년 2월 서울에서 안재홍 등과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였으며, 『동아일보』에 「횡설수설」이라는 제목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글을 실어 옥고를 치렀다.
- 1923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그 해 6월 16일 동경 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의 현덕신(玄德信)과 서울 종로 중앙예식장에서 김창준(金昌俊) 목사의 주례로 혼인식을 올렸다
- 최원순은 몇차례의 옥고로 얻은 폐결핵 치료를 위해 1928년 광주로 돌아왔다. 요양을 위해 무등산 자락에 집을 짓고 ‘석아정(石啞亭)’이라 했는데, 나중에 최흥종 목사가 거처하면서 ‘오방정’이라 했고 광복 후 개축하여 허백련춘설헌이 되었다. [1]
- 요양을 위해 광주로 돌아와서도 계유구락부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의 변혁과 빈민구제 활동을 하다가 1936년 41세에 사망하였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2·8독립선언 (二八獨立宣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354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최원순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2185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최원순 | 2.8독립선언 | 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