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시장 번영회
기본 정보
| 이름 | 양동시장 번영회 |
|---|---|
| 한자명 | 良洞市場 繁榮會 |
| 경도(longitude) | 126.8996159 |
| 유형 | 지역 상인 자율 단체 |
| 설립자 | 양동시장 상인 |
| 출범/해체시기 | 미군정기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
정의 및 개요
특징
- 양동시장 번영회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시장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조직한 단체이다.
- 양동시장 번영회의 초대 최장은 한정섭(韓正燮), 부회장은 손영관(孫永寬)이며 업종별로 책임자가 있었다.
- 조직 이후 가장 먼저 업종별, 품목별로 점포를 배열했다. 그 다음으로 광주광역시 당국과 합의에 따라 자체 자금으로 시장점포를 증축하되 이를 시에 기증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상인들은 증축기금을 갹출하여 3단계로 나누어 20칸씩 목조 점포 60칸을 새롭게 증축했다. 또, 시장 질서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 양동시장은 조선 후기 오일장이었던 큰 장과 작은 장을 식민지시기에 합병하여 만들었다. 1925년 광주면의 도시계획에 따라 사정시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40년대 초반에는 천정공설시장(泉町公設市場)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의미관계망
지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간행물 | 단행본 | 박선홍, 『광주1백년①』, 금호문화, 1994. | |
| 간행물 | 논문 | 정경운, 「일제강점기 식민도시화 정책과 오일장 변화과정 -광주 양동시장을 중심으로-」, 『국학연구론총』 vol 17, 택민국학연구원, 2016. | http://kiss.kstudy.com.ssl.openlink.aks.ac.kr:8080/Detail/Ar?key=3447630 |
| 웹리소스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광주 양동시장(光州 良洞市場) |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9857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사전 | 양동시장 | http://aks.ai/GC60002496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양동시장 번영회 | 한정섭 | 양동시장 번영회의 초대회장은 한정섭이었다. | ||
| 양동시장 번영회 | 손영관 | 양동시장 번영회의 초대부회장은 손영관이었다. | ||
| 양동시장 번영회 | 양동 | 양동시장 번영회는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었다. | ||
| 양동시장 번영회 | 양동시장 | 양동시장 번영회는 양동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 ||
| 양동시장 | 사정시장 | 양동시장은 1931년 사정시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 ||
| 양동시장 | 천정공설시장 | 양동시장은 1940년대에 천정공설시장으로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