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목사
기본 정보
| 이름 | 광주목사 |
|---|---|
| 법령 |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 |
| 유형 | 지방 수령 |
정의 및 개요
- 광주목사는 광주지방에 설치한 목을 관장하는 지방 수령이다. 목사의 품계는 대부분 정3품이였다
수행 배경(계기)
- 광주목은 여러 사회적 사건에 따라 그 지위가 군, 현으로 6회 강등되었다가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1896년(고종33)에 13도제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 광주목사는 조선 개국 이후부터 1905년까지 기록하는 주체에 따라 차이가 있다. 광주읍지는 194명이라 했고, 광주향교지에는 241명이라고 기록했는데, 권기중(2020)의 연구에는 213명이라고 한다.
관련 인물/단체/사건/작품 등
- 조선시대 최초의 광주목사는 유호(柳灝)이다. 1397년 8월 14일 태조실록에 ‘전 광주목사 유호를 경사[1]에 파견하였다’ 라는 기록에 의하면 유호는 1397년 8월 이전에 광주목사로 재임하였다.
- 광주목사 중 광주에 특이한 흔적을 남긴 수령들을 살펴보면, 조선 최초 수령 구타 사건으로 읍호강등 원인을 제공한 신보안(辛保安), 조선 대표적 효자이자 청백리인 송흠(宋欽), 면앙정가 등 조선 시가문학에 크게 기여한 송순(宋純), 청백리 상징인 백비 주인공 박수량(朴守良), 이치·행주대첩을 이끈 권율(權慄), 이임 10년 뒤 복룡마을 주민들이 ‘불망비’를 세워준 신석유(申錫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홍난유(洪蘭裕) 등이 있다.
- 또 광주목사 전구생(全俱生)은 태종 때인 1422년경 부임했는데, 아들인 전자명(全自明)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이들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장동마을에는 숭모재가 있다.
제도의 가치 및 의의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목사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634 |
| 간행물 | 단행본 | (재)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광주읍성』, 심미안, 2013 | |
| 간행물 | 단행본 |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광주선생안』, 경성문화사, 2024 | |
| 기타 | 연구논문 | 권기중, 「조선시대 전라도 수령의 출신성분과 재임실태」, 『조선시대사학보 94』, pp.7~46, 2020년. |
주석
- ↑ 한 나라의 도읍을 말하는데 당시 명나라 수도를 지칭한다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광주목사 | 신보안 | 광주목사 신보안은 읍호강등 원인제공자이다 | ||
| 광주목사 | 송흠 | 광주목사 송흠은 청백리이다 | ||
| 광주목사 | 박수량 | 광주목사 박수량은 청백리이다 | ||
| 광주목사 | 신석유 | 광주목사 신석유에게 불망비를 세워 주었다 | ||
| 광주목사 | 홍난유 | 광주목사 홍난유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