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3-00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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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공명한 광주의 종교 》구한 말 저항의 기록, 시대정신의 계보로써 동학농민운동

Story

  • 전남지역을 총괄하던 동학지도자 손화중은 농민군을 이끌고 1894년 12월 덕산에 머물렀다. 거듭된 나주 공략이 연거푸 수포로 돌아가고, 북쪽에서는 전봉준의 농민군이 관군에게 패했다는 소식이 연일 날아들었다. 나주 공략에 있어 접전은 고막원천에서 절정에 달했다. 농민군보다 수가 적지만 화력이 더 셌던 수성군의 은밀한 접근이 용이했단 지역이다보니 농민군은 단숨에 완패했다. 거듭된 실패 끝에 12월 어느 밤 남산리에서의 결전에서도 패배한 농민군은 사방이 확 트인 광주의 덕산에 다시 모였다. 이것이 영산강 유역에서 농민군의 마지막 유진이었다.
  • 광주·전남에서의 의병은 1907년 9월 장성 출신 기삼연(奇參衍,1851~1908)이 일으킨 ‘호남창의회맹소’부터 시작한다. 호남창의회맹소 대장 기삼연이 1908년 1월 2일(음력) 광주천에서 순국하자, 그 뒤를 김태원·김율 형제가 이었고, 김태원·김율 형제가 광주 어등산에서 또 순국하자 심남일, 안규홍, 전해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양진여와 양상기는 부자(父子)가 의병장이었고, 김태원과 김율, 김원국과 김원범은 형제 의병장이었다. 이들이 이끈 의병부대가 전라남도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타격을 주었다. 따라서 광주 어등산을 비롯한 광주·전라남도는 어디도 의병 항쟁지 아닌 곳이 없다.
  • 무돌 제5길에는 독수정과 백남정재란 이름이 붙은 길은 무돌길 전체 구간 중 가장 가파른 길이다. 이곳은 동학농민운동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우국지사와 의병들이 전략적 요충지로 관군과 왜적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수백 명이 넘어 다니던 길이라는 뜻에서 '백남정재'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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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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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광주드림 동학농민운동, 마지막 희망과 불안(2013-08-06, 조광철 기자)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48041
참고 디지털광주문화대전 외세에 저항한 구한말의 의병활동 http://www.grandculture.net/gwangju/index/GC60005032
참고 우리역사넷 동학의 설립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m71_0070_0020_0030_0030
참고 전북도민일보 5.18광주민주항쟁과 1894동학농민혁명(2016-05-17, 이윤 기자)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9347
참고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무돌길 http://gjstory.or.kr/sub.html?pid=11&formtype=view&code=33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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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일제, 『전남폭도사』, 1909추정
단행본 황현, 『매천야록』,1909 추정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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