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san1221
목차
주제
기획의도
본 연구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외교 통역과 번역을 담당한 관청의 변천과 역할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통문관과 사역원
통문관
설립 배경
1276년 (충렬왕2)참문학사(參文學事) 김구(金坵)의 건의로, 당시 통역관인 설인(舌人)이 대부분 미천한 신분으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하고 또 통역할 때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등의 폐단이 있어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주요 인물
김구(金坵, 1211~1278)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무신집권기 후반부터 대몽항쟁기를 거쳐 원 간섭기 초기까지 관리로 활동하면서 몽골에 보내는 외교 문서 작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1274년 충렬왕 즉위 뒤에는 지첨 의부사(知僉議府事) · 참문학사(參文學事) ·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를 역임하였다. 당시 통역관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며 제대로 일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신들에게 한어(漢語)를 익히도록 통문관(通文館)을 설치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지포집(止浦集)』이 있다.
주요 역할
비서성(秘書省)·사관(史館)·한림원(翰林院)·보문각(寶文閣)·어서원(御書院)·동문원(同文院) 등 금내학관(禁內學官)의 6품 이하직에 있는 40세 미만자를 선발하여 한어(또는 몽고어)를 습득하게 함으로써 통역사무의 질적 향상을 꾀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관으로 원나라 있는 고려인이나 내주자(來住者)들이 역인으로서 대부분의 통역실무를 맡았으므로 통문관을 통한 역관교육의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사역원
설립 배경
사역원은[1393년(태조 2) ~ 1894년(고종 31) ]고려 · 조선시대 사대교린(事大交隣)에 필요한 외국어 및 통역 인재 등 양성을 위해 설립된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이다.
주요 역할
조선시대 사역원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사대교린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한어(漢語), 몽어(蒙語), 여진어(女眞語), 왜어(倭語) 등 외국어를 교육하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이다. 둘째는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 등을 맡아보는 일반 관부(官府)로서의 기능이다.
통문관지
통문관지 (通文館志)는 조선시대 통역 기관인 사역원(司譯院)의 연혁과 조직, 그리고 고대부터 외국과의 외교 및 통교 의례를 집대성한 대표적인 외교서이다.
구성 및 주요 내용:
| 권 | 주요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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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원의 관제, 직제, 인사 제도, 등급 제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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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의 선발·승진·시험제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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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행 절차, 사신 접대, 무역·예식 관련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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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마도와의 외교, 통신사, 서계·노정·접대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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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이 있는 역관들의 행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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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원의 제도, 물품, 문서·서적 목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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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외교 사건 정리 및 개항기 교섭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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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의미
통문관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공식 통역 교육기관으로, 언어를 매개로 한 외교 행정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의 사역원은 이를 계승하여 체계적 외국어 교육과 전문 통역 인재 양성을 담당하였으며,조선의 자주적 외교 수행과 국가 안보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두 기관은 한국 외교사의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고, 언어를 통한 국제 관계 형성의 역사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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