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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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진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18일 (수) 16: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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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九人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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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3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문학단체" 이다.

내용

1933년 8월이종명, 김유영의 주도로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이태준, 조용만, 김기림, 정지용 등 9인이 결성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이종명·김유영과 이효석이 탈퇴하고 그 대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가입하였으며, 그 뒤 또 유치진·조용만 대신에 김유정, 김환태가 보충되어 언제나 인원수는 9명이었다.

특별히 주장한 목표는 없었지만, 경향주의 문학에 대항하여 ‘순수예술추구’를 취지로 하면서 약 3∼4년 동안 월 2∼3회의 모임과 서너 번의 문학강연회, 그리고 『시와 소설』이라는 기관지를 한 번 발행하였다. 활동이 활발한 편은 아니었지만, 당시 신인 및 중견작가로서 이들이 차지하는 문단에서의 역량 등으로 인해 ‘순수예술옹호’라는 문단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태준은 서정성이 높은 문장과 미의식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경지를 펼쳤다고 평가받는다. 정지용의 시에 있어서도 상실감에 관한 정서의 표현은 독보적이었고, 감각의 예리성과 섬세함에 기반하여 사상파(寫像派)의 효시가 되었다.

의의

조연현에 따르면, ‘구인회’는 시문학파에서 유도된 순수문학의 흐름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1930년대 이후의 민족문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근대문학의 성격을 현대문학의 성격으로 전환, 발전시킨 점에서 그 문학사적 가치를 보유한다고 평가받는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대백과사전,「구인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990.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