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ᐧ༚̮ᐧ
| 장르 | 고전 소설 (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 |
| 작가 | 김만중 |
| 시대 | 1687년 - 조선 후기 |
| 배경 | 불교, 도교 사상 |
장르
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이다. 이본이 다수 존재하며 어떤 것이 원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고전소설의 특성상 구운몽을 고전소설의 하위갈래 중 하나로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구운몽은 일반적인 고전소설과 비교하여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기에 단일 작품이 몽자류 소설, 영웅 소설, 전기 소설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 매우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그 영향력으로 인해 <옥루몽>, <옥련몽> 등의 몽자류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작가
| 출생 | 1637년 3월 6일 |
| 사망 | 1692년 6월 14일 |
| 호 | 서포(西浦) |
| 저서 | 구운몽, 사씨남정기 |
| 직업 | 소설가, 문신 |
김만중은 조선 시대의 소설가이자 문신이다. 숙종의 장인 김만기의 동생이며 1648년 12세에 이미 과문(科文)을 쓸 만큼 글재주가 향상되었고, 1650년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1653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665년 29세의 나이로 처음 관직에 올라 이후 사간원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校理)를 지냈다. 그 뒤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에 임명되었다. 1667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옮겼다가 문학(文學 : 세자 시강원의 정5품 벼슬)으로 전직되었고, 바로 홍문관 수찬(修撰)이 되기도 했다.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시찰했고 1672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의 사망으로 불거진 제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배하자, 서인이었던 김만중도 파직되어 처음으로 관직 생활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1679년에 복직하여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탄핵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1686년에는 장희빈 일가에 대해서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서 처음으로 선천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1687년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되면서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의 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