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전투

dh_edu
Romano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3일 (수) 17:21 판 (배경)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개요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시기인 1592년과 1593년에 각각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를 가리키며, 이 전투는 일본군의 서부 지역 공세와 조선군의 방어 의지가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

2차 진주성 전투.jpeg

배경

진주성은 경상우도 중심부에 위치하여 육로와 수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경상우병영이 설치된 군사적 핵심 지점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진주를 주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부산포 상륙 이후 한양을 향해 신속히 북상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상·전라 지역의 주요 성곽을 공격하며 점령 범위를 넓혀 갔다. 일본군이 전국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가운데 조선군은 남해안과 서부 내륙의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진주성을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특히 전라도는 조선 수군의 보급 기반이자 국가의 식량 공급지였기 때문에 일본군이 진주성을 점령하는 것은 조선 전체의 전략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 조정과 경상우도 방어 책임자들은 진주성을 중심으로 방어망을 구축하고자 하였으며, 김시민은 성곽 보수와 무기 정비, 의병 연합을 통해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할 준비를 갖추었다.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승리를 거두자 일본군은 그 패배를 만회하고 조선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한 해 뒤에 대군을 동원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하였다. 따라서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일본군의 보복전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전라도 진출을 위한 전략적 시도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군사적 배경 속에서 진주성 전투는 두 해에 걸쳐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임진왜란의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전투 상황

1차 진주성 전투

제1차 진주성 전투는 1592년 10월 일본군이 약 3만 명에 이르는 병력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맞선 조선군은 김시민을 중심으로 한 정규군 약 3,800명과 진주 지역의 의병 및 민병이 합류하여 총 4천명가량에 불과했지만, 철저한 성곽 보수와 화포 배치, 지형 활용 등을 바탕으로 만반의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일본군은 사다리를 이용한 성벽 등반, 성문 파괴, 조총 사격, 화살 및 화포 집중 공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을 공략하였으나, 조선군은 화차와 총통을 비롯한 화포 전력을 집중적으로 운용하여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김시민은 전투 중에 중상을 입으면서도 지휘권을 유지하며 수비 체제를 정비하였고, 성 안의 주민들은 물자 운반과 성벽 보수 등에 참여하며 군사적 대응을 적극 지원하였다. 결국 일본군은 공격 실패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퇴각하였고, 조선군은 큰 병력 열세 속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전황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2차 진주성 전투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593년 6월 일본군 약 10만 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세로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전년도 패배를 보복하고 진주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성을 전면 포위하고 화공, 지뢰전, 성벽 파괴 등을 반복적으로 시도하였다. 당시 조선군 수비병력은 약 3천 명에 불과하였고, 외부의 지원 세력은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한 채 접근조차 어려웠다. 성 안에 있던 조선군과 민간인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방어에 힘썼으나, 병력 부족과 탄약 고갈, 성벽 붕괴 등으로 수세에 몰렸다. 일본군의 집중 공격으로 성문의 일부가 무너지고 일본군이 성 안으로 진입하자 전투는 급격히 불리하게 전개되었고,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성 내에 남아 있던 군·관·민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학살되는 비극을 맞았으며, 이 과정에서 기생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의암에서 투신하여 순국했다는 이야기가 형성되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는 조선군의 지역 방어선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으나, 진주성에서 끝까지 항전한 결연한 저항정신은 후대에 충절과 희생의 상징으로 기억되었다.

매체에서의 등장

- 유튜브 채널 ‘KBS역사저널 그날 ’
코미디언 김대희의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1946년생 꼰대 컨셉의 부캐. 컨텐츠 '밥묵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김대희는 서울특별시 태생이고, 대구에서 업무로 8년 간 머문 경험으로 사투리를 사용하다 보니 부산 사투리보다 대구 사투리에 가까우며, 에스파의 윈터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이 점을 지적했다.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일본은 왜 징비록에 집착했나? (KBS_2022.11.06.방송)

- 박경리 <토지>
4c71a5e9aebaedbcad5c36cfccabfcc9171019.jpg
“왜놈한테 잡혀가고 싶지요?” “머, 머라카노!”
“미친놈 다 보겄네 말도 가이방해야 대꾸를 하지”
“보자보자하니 해도 가이방해야지 그래, 가라오라 대관절 판술아베가 먼데 그려요?”


-

1) 블루베리 스무디

평범한 단어인 ‘블루베리 스무디’에 경상도 억양을 과하게 적용해 특이한 리듬을 만들었다.

“블↘루↗베↘리↗~ 스↗무↘디↗↘”

활용: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회 유튜브 스케치코미디 ‘뻔대 능력 테스트’ 부산 출신 신입생 학번 대표에게 ‘블루베리 스무디’ 밈을 시켜 캐릭터성을 부각함.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회 유튜브 스케치코미디 ‘뻔대 능력 테스트’


2) 이의 이승

표준어로 발음했을 때는 e와 2의 발음이 같지만, 동남방언으로 발음했을 때는 성조가 달라서 ‘e의 2승’, ‘e의 e승’, ‘2의 2승’ ‘2의 e승’을 구분 가능함

3) 가가가가

“걔가 걔야?”라는 의미로 ‘그 애’를 뜻하는 ‘걔’도 ‘가’로 표현하고, 의문사가 없는 의문법어미로 ‘가’ 사용되어 나타나게 된 말. 성조방언이라는 특성 덕분에 각 ‘가’가 의미하는 바가 구분 된다는 점에서 경상도인들의 성조를 통한 소통법이 화제가 되어 밈화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