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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셴(逸仙)
개요
이셴(逸仙)은 1931년 중화민국이 자국 기술력으로 처음 건조한 경순양함으로, 쑨원의 호인 ‘일선(逸仙)’을 따서 명명되었다. 선체 규모가 비교적 작아 구축함이나 건보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한 광둥어 발음을 따른 ‘얏센’(영어: Yat Sen)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원
| 항목 | 내용 |
|---|---|
| 건조 | 상하이 강남조선소 |
| 진수 | 미상 |
| 취역 | 1931년 |
| 침몰 | 1937년 9월 25일 |
| 인양 | 1938년 |
| 제적 | 1958년 6월 1일 |
| 해체 | 1959년 5월 19일 |
| 승무원 | 182명 |
| 전장 | 82m |
| 전폭 | 10m |
| 흘수선 | 3.8m |
| 배수량 | 1,650t |
| 출력 | 4000마력 |
| 추진기 | 왕복 엔진 2기 |
| 엔진 | 석탄 보일러 3기 |
| 최대속도 | 19 노트 |
| 기본 무장 | 152mm 단장포 1문, 140mm 단장포 1문, 75mm 단장 고각포 4문, 47mm 속사포 1문 |
| 일본군 노획 이후무장 | 120mm 단장포 1문, 40mm 2연장 기관포 2문, 25mm 기관총 5정, 7.7mm 기관총 6정 |
함생
1. 중일전쟁
1931년 취역한 이셴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중산, 닝하이, 핑하이 등과 함께 상하이에서 난징으로 올라가는 길목과도 같은 장인을 점령하고자 하는 일본군 해군을 중화민국 해군이 막기 위해 1937년 8월에 발발한 장인 해전(江阴海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37년 9월 25일, 일본군의 항공모함 카가의 함재기에 공격당해 닝하이, 핑하이와 함께 격침. 모래톱에 좌초되었다.
2. 일본군 해군의 함선. 아타다
아타다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해군에 재편된 이후의 이셴, 함미에 선미 갑판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38년, 일본군은 좌초된 이셴을 인양하였고, 동년 5월 12일부터 구레에서 이셴에 선미갑판 추가, 소나, 레이더 설치 등 장비 개수를 거친뒤 1939년 7월 29일, 아타다(阿多田)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해군에 취역해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
3. 반환과 국부천대
일본군 해군에 노획되어 운용되다 격침당한 다른 중화민국의 함선 닝하이, 핑하이, 융젠과는 달리 이셴은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았고, 중화민국에 반환되어 다시 이셴이라는 이름으로 취역했다.
국공내전 막바지인 1949년 제2함대 반란사건이 발생해 함선 다수가 공산당군에 귀순하거나 나포당했는데, 이셴은 투항하는 척하다가 도주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2차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중국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망명한 뒤로도 이셴은 중화민국 해군 소속으로 근해 경비를 맡았으며, 1958년 6월 1일 제적, 1959년 5월 19일 고철로 스크랩 처리되었다.
타임라인
지도
대중매체에서
마찬가지로 중국의 게임 벽람항로에 등장. 닝하이, 핑하이와 함께 출격하면 회피율 보정을 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얏센(벽람항로) 참조.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