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 방언
목차
개요
현황
지역
함경도
인구
특징
(1) 대체로 함경남·북도를 그 구획에 넣고 있지만, 그 남쪽 경계는 도계가 아니고 함경남도 영흥과 정평 사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 동북 방언 내에서도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육진 지역의 방언을 육진방언이라 하는데, 이 방언은 함경도 내의 다른 방언과 약간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 방언은 지리적으로 중앙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사방이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3) 대체로 어휘적으로는 동북방언과 큰 차이가 없으나 음운체계와 종결어미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여 동복방언의 한 하위 방언권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독립방언권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지역적 특성
동으로는 동해와 접해 있고 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중국 및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서쪽에는 낭림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평안남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옛부터 관북으로 통하는 주요한 교통로는 추가령지구곡과 함남 남부의 안변 또는 문천을 잇는 곳으로 발달하였다. 이렇게 삼면이 고립되고 또 정치·문화의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동북 방언은 자연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언어적 특성
어휘
문법
발음 및 억양
역사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 이후에 그에 복속되었던 말갈족의 일파가 남진함에 따라, 고려 시대에는 정평 이북 지방이 여진족의 독무대가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금도 함경도에는 ‘두만강’의 ‘두만’을 비롯하여 ‘나단(산)’, ‘주을’, ‘아오지’, ‘백안(수소)’, ‘쌍개’와 같은 여진말에서 유래한 소지명이 남아 있다.고려 시대에는 몽고의 침략을 전후해서 고려의 통치가 미치지 않던 이곳으로 적지 않은 유이민 옮겨 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조 이안사가 전라도 전주를 떠나 함경도 지역으로 집단 이주했던 사실이 그 한 예이다. 때문에 여말 선초에는 이미 상당수의 고려인이 함북의 두만강 하류 지방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조 태조 때에는 이 지역의 왕조가 발원한 ‘조기지지’라 하여 돌보고 여진 지명을 현재의 지명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오도리, 우디거, 오랑캐와 같은 여진족과 마찰이 잦았는데, 세종이 그들을 제압하고 두만강 유역에 육진을 설치하였다. 함경도가 명실공히 국토의 일부가 된 것은 이때부터다. ‘동북 방언권’, 즉 정평 이북 지방은 고려 시대에는 평북 의주와 함남 정평 부근의 도련포를 잇는천리장성의 북쪽에 위치했던 곳이다. 그리고 ‘육진 방언권’은 바로 세종 때에 개척되고 관의 사민정책에 따라 길주 이남의 함경도인과 하삼도 주민이 대거 이주한 곳이다.
매체에서의 등장
(1) 정도전 (2) 웰컴 투 동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