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t

dh_edu
Ec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1월 12일 (수) 17:44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

Visualization


중국 사신을 배웅하기

칙사 접대 절차

중국에서 오는 사신은 보통 칙사(勅使)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황제의 조서(詔書)나 칙서(勅書) 또는 예부 자문(禮部咨文)이나 요동도사 자문(遼東都司咨文)을 가지고 조선에 왔다. 중국 사신들은 우선 중국 황실의 변동 사항을 알리기 위해서 조선을 방문하였다. 즉 황제가 사망을 했거나, 새 황제가 등극하였을 때, 또는 청년이었던 황제가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을 때이다.황제뿐만 아니라 황태자를 책봉하거나 황태후를 책봉하였을 때에도 황 제의 조서를 가지고 왔다.다음은 우리나라의 일로 왔다. 즉 조선 국왕의 즉위를 승인하거나 조선 왕세자의 책봉, 왕후의 책봉을 승인하는 황제의 명을 받들고 방문하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왕실 식구들에 대한 시호(諡號)나 고명(誥命)을 내릴 때에도 방문하였다. 이 밖에도 표류인 송환(漂流人送還), 도래인 송환(渡來人送還), 월경인(越境人) 문제, 처녀 진헌, 여러 가지 물품 청구 등의 참으로 다양한 임무를 띤 중국 사신들이 왔다. 중국 사신 일행은 주로 상사(上使)와 부사(副使) 밑에 서반(序班), 두목(頭目), 군관(軍官), 의원(醫員), 사자관(寫字官), 주자(廚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서반이 통역을 담당하였으며, 물화의 운반과 관리를 담당하는 두목은 대개 북경과 요동의 상인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조선에 들어서면 조선 상인들과 교역하는 데 힘썼으며, 이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역 활동은 실제로 조선 산업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명나라 사신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에 자주 왔으나, 인조반정과 정묘호란을 겪은 이후로 줄어들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명나라 사신 대신 청나라 사신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또한 고구마, 옥수수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인류를 기아의 공포에서 구제한 고마운 작물이기도 하다.

원산지는 남미 안데스 지역인 페루와 북부 볼리비아로 알려져 있으며, 예로부터 든든한 한 끼로도 손색이 없는 주식(主食)이며, 부식으로도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다.

정탁의 경험 중심으로

배경

주요인물